콩팥병은 관리할 수 있다

식습관 바꾸고 의사 지시 따라야

2002년은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오르는 쾌거로 온 나라가 들썩인 해였지만 박 모(50․여)씨에게는

인생에서 없었으면 하는 해일 뿐이다. 나이 마흔에 ‘만성콩팥병’이라는 불청객을

맞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남들처럼 실컷 먹을 수도,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었다.

그는 “서른 살 때 당뇨병 진단을 받고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나일까’라며

세상을 한탄했다”면서 “10년이 지나 만성콩팥병 3기 진단을 받았을 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죽을병도 아니고 관리만 잘 하면 남들보다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의사의 충고에 힘을 냈다. 식단에 신경 쓰고, 약을 꼬박꼬박 먹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들러 건강 상태를 점검했다.

박 씨는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고 건강의 중요성을 일찍 알게 된 것이

오히려 큰 행운이었다”며 “먹는 것에 항상 신경을 쓰고, 운동도 꾸준히 해 이제는

친구들보다 더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고 웃었다.

그에 반해 김 모(41) 씨는 지금 신장이식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2010년 6월 코피가

심하게 터져 서울 고덕동 강동경희대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혈압이 높은데다 소변에

피와 단백질이 섞여 나오는 등 콩팥 기능에 이상이 포착됐다. 의사는 신장내과에

들러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동네 병원에서 혈압약만 처방받아 복용했다. 그러는 동안

콩팥은 급속히 나빠졌다. 지난 1월 다리가 붓기 시작해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말기신부전으로 악화된 뒤였다. 김 씨는 투석으로 생명을 근근이 연장하며 유일한

희망인 신장이식만 기다리고 있다.

▲콩팥 기능 떨어지면 혈관질병 위험 높아져

콩팥의

사구체 여과율이 떨어지면 각종 혈관질병이 생기기 쉽다. 심장․ 뇌혈관 합병증이

가장 대표적이다. 특히 여과율이 25% 이하로 떨어지면 이들 질병으로 사망할 확률은

최대 8배까지 치솟는다.

대한신장학회가 2008년 실시한 말기신부전 환자 등록사업에 따르면 말기신부전

환자의  31%가 심혈관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기타 혈관질병으로 사망한 환자는

18%였다. 말기신부전 환자의 절반이 각종 혈관질병 합병증으로 숨졌다는 얘기다.

꾸준한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강동경희대병원 이상호 신장내과 교수(사진·42)는 “인체의 정수기에 해당하는

콩팥 사구체의 여과율이 문제다. 정상인은 노화현상으로 1년에 평균 0.8% 감소하지만

만성콩팥병 환자는 감소 속도가 더 빨라진다”면서 “여과율이 50% 이하로 떨어지면

대개 10년 내에 말기신부전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투석 시작하면 정상적인 삶은 끝

말기신부전 환자는 오폐물을 몸 밖에서 걸러내는 투석 치료를 꼭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각종 합병증으로 생명을 잃기 쉽다. 혈액과 복막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국내에는 혈액 투석을 받는 환자가 절대적으로 많다. 투석은 4시간이 걸리며 일주일에

3~4 차례 받아야 한다.

이 교수는 “꾸준하게 관리만 하면 만성콩팥병의 진행 속도를 상당히 늦출 수

있다”며 “하지만 관리를 하지 않아 투석을 받아야 하게되면 직장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삶의 질도 급격하게 나빠진다”고 말했다.

▲신장이식만이 유일한 살 길

투석 치료의 유일한 대안은 신장이식이다. 하지만 장기 기증에 대한 국민들의

잘못된 인식과 기증자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국내

말기신부전 환자 중 이식을 받는 환자는 5명 중 1명에 불과하다.

어렵게 이식을 받았다 하더라도 거부반응을 막으려면 면역억제제를 평생 복용해야

한다. 문제는 면역억제제의 독성이 이식된 콩팥을 해친다는 점이다.

이식된 콩팥의 평균 생존율은 10~15년밖에 되지 않는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평균 수명(여자 83.8세, 남자 77세)을 감안하면 50세 이전에 이식 받은

환자는 한 번 더 이식을 받거나 투석 치료를 받아야 할 가능성이 높다.

면역억제제의 부작용으로 각종 암에 걸릴 위험도 커진다. 신체의 면역력이 약해지는

탓이다. 대장암․ 폐암․ 위암은  2배, 방광암은 3배 높아지며, 피부암이나 림프종은

20배까지 높아진다.

이뿐 아니다. 심혈관계 손상을 유발하는 다양한 대사성 합병증을 유발한다. 면역억제제는

췌장을 망가뜨려 신장이식을 받은 환자의 30%에서 당뇨병이 발병한다. 고지혈증,

고혈압, 고요산혈증이 동반되는 경우도 흔하다.

이 교수는 “이식 받은 환자는 전보다 더 엄격하게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면서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언제 또 죽음의 문턱에 다다를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시기 놓치지 말고 자기관리 신경 써야

이 교수는 꾸준히 관리만 잘한다면 만성콩팥병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무관심과 게으름은 만성콩팥병 환자에게 치명적”이라며 “말기신부전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편이 투석의 번거로움이나 신장이식 뒤의 관리보다 훨씬

수월하므로 지금부터라도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식습관부터 고쳐야 한다. 수분을 적절히 섭취하고 염분은 적게 먹을수록

좋다. 만성콩팥병 3기 이상의 환자는 칼륨 성분이 많은 오렌지․ 바나나․ 토마토 등을

먹을 때 주의해야 한다. 인 성분이 많은 잡곡밥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혈액에

인 성분이 많으면 가려움증과 관절통이 생기며, 심할 경우 뼈가 약해질 수 있다.

육류 가공품․ 유제품․ 견과류․ 콜라 등에도 인 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

3기 이상 중증 환자는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초기

단계인 1, 2기에는 동네 병원에서 정기 검사를 받으며 약을 복용해도 충분하지만,

3기부터는 각종 합병증이 발병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3기 이상 중증에서는 염분감수성이 높아져 혈압과 체액이 증가하고,

조혈호르몬(피 생성을 촉진하는 호르몬) 감소로 빈혈이 나타나 심장에 많은 부담을

준다”며 “신장 기능이 떨어지지 않도록 전문의의 세심한 진료와 약물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만성콩팥병 치료는 결국 손상된 콩팥의 미세혈관을 얼마나 건강하게 만드느냐로

귀결된다”며 “충분한 경험을 가진 의사와 반드시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환자가

함께 노력해야 만성콩팥병을 다스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오현 기자 cartier1629@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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