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가슴 진화론

최근 미국 럿거스 대학의 심리학과 연구팀은 오르가슴을 겪는 여성의 뇌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촬영(fMRI)

장치로 연속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뇌의 거의 모든 영역이 극도로 흥분한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뇌가 이보다 격렬한 활동을 보이는 것은 오직 간질 발작 때뿐이라고

한다.

남성의 오르가슴은 사정할 때 짧은 순간 일어나며 사정은 임신에 기여한다. 하지만

여성의 오르가슴은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을까. 1967년 동물학자 데스먼드 모리스가

『털 없는 원숭이』에서 제시한 주장을 보자. 이에 따르면 남성 파트너와 육체적

친밀감을 높여 ‘남녀 한 쌍 관계를 강화’해주는 것이 주된 기능이다. 파트너가

인내심, 배려, 상상력, 지능 등을 갖추고 있어야 여성이 오르가슴이라는 쉽지 않은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그는 보았다. 오르가슴은 이런 자질을 갖춘 남성을 선택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많은 이론이 임신 가능성을 높인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예컨대 질의

크기가 30% 줄어드는 것은 남성 성기를 자극해 많은 양의 정자가 강하게 뿜어 나오게

만든다는 것이다. 1994년 미국 케이블TV ‘러닝 채널’은 여성의 질에 광섬유 카메라를

넣어 섹스 과정을 촬영했다. 오르가슴 때 골반 근육이 수축하면서 자궁 입구가 질

끝부분에 고인 정액에 여러 차례 적셔지는 현상이 확인됐다. 번식 가설을 뒷받침하는

사례다.

하버드대의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클리토리스가

배아(胚芽)의 동일한 부위에서 발달한 기관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클리토리스가

남성 성기의 흔적기관에 불과하며 따라서 오르가슴도 진화적으로 특별한 기능이 없다는

논리를 폈다. 다른 생물학자들은 오르가슴이 단순히 섹스를 자주 하고 싶게 만드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말한다.

과학자들을 가장 당혹스럽게 만드는 사실은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여성 3명 중 1명은 섹스를 통한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한다. 항상 느끼는

여성은 10명 중 한 명에 불과하다. 오르가슴에 뭔가 진화적 이익이 있다면 도달이

극히 쉬워야 자연스럽다.

도달은 쉽지 않지만 가장하는 일은 가능하다. 최근 미국 컬럼비아 대학이 여성

453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를 보자. 54%의 여성이 현재의 파트너와 오르가슴에 도달한

척 연기한 일이 있다고 응답했다. 주된 이유는 ‘파트너가 바람을 피울까 걱정해서’였다.

그런 연기를 많이 하는 여성일수록 파트너를 지키는 데 성공하는 일이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데스먼드 모리스가 주장한 ‘관계 강화’ 이론의 거꾸로 버전인 셈이다.

좋은 자질을 갖춘 남성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못한 남성을 붙들어두려는

전략이니까 말이다. 오르가슴의 기능은 아직도 진화론의 미해결 문제로 남아 있다.

조현욱 미디어 본부장·중앙일보 객원 과학전문기자 (poemloveyou@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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