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소송 모든 것, 책에 담았습니다”

신현호 변호사, ‘의료분쟁 조정·소송 총론’ 발간

1980년대만 해도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는 열에 아홉 꼴로 벙어리 냉가슴만 앓았다.

병원이나 의사와 소송이 붙었을 때 이길 확률은 10~20%에 불과했다. 유족은 의사를

원망하고,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을 저주하며 눈물 뚝뚝 흘리면서 장례를 치렀다. 물론

의사도 의료사고로부터 자유롭지만은 않았다. 일부 환자 가족은 병원에 과실이 없는데도

병원 현관에서 넉장거리를 하며 난장판을 벌였고 이른바 ‘깍두기들’이 의사를 협박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신현호 변호사(53. 사시 26회)는 이처럼 법 밖에 있는 의료사고를 법 테두리 안으로

들여온 주인공으로 평가받는다. 신 변호사는 1993년부터 의대 교수, 법조인 등 10여

명과 ‘의료법학포럼’을 조직해 의료법에 대해 공부하면서 국내에 의료법학이 뿌리내리도록

했다. 거의 매일 법학전문대학원, 보건대학원 등에서 의료법 강의를 해왔으며 경제정의실천연합의

보건복지위원장, 한국의료법학회 공동회장 등을 역임했다. 신 변호사가 없었다면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조정 등에 관한 법률’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의료법 강의가 ‘필수과목’이 되지 않았고, 서울변호사회에

‘의변(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이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신 변호사는

최근 동료이자 제자인 백경희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함께 20년 동안의료전문

변호사로서의 경험을 담은 《의료분쟁 조정·소송 총론》을 발간했다.

책은 의료분쟁에 관한 화해계약에서부터 의료민사조정, 의료민사소송, 형사, 행정,

헌법소송 등 법 이론과 판례, 절차 등을 총망라한 ‘의료소송 백과사전’이다. 이

책에는 의료전문 변호사 1호로서의 그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신 변호사는 1990년 소송에서 환자 본인에게서 수술 동의를 받지 않았을 때에는

비록 가족의 동의를 받았더라도 ‘의사의 설명 의무’를 위반했다는 판례를 끌어내

기존의 의료 관행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또 90년대 초 잇단 소송을 통해 환자 측에서

적극적으로 의사의 잘못을 입증하지 않아도 재판에서 의사의 과실을 인정받는 ‘과실

입증 완화론’을 국내에 뿌리내리도록 했다. 1993, 94년 병원에서 아기가 뒤바뀐

사건 6건의 소송을 맡아 당시로서는 생소하던 ‘유전자 감식법’을 통해 친부모를

찾아줬다. 2002년 이대 목동병원에서 환자 10여 명이 ‘슈퍼박테리아’에 집단 감염돼

이 가운데 2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소송을 통해 ‘병원 감염’의 중요성을

알렸다. 2008년 식물인간 상태로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서 인공호흡기를 떼도

좋다는 법원의 판결을 이끌어내 한때 ‘존엄사 변호사’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환자의 억울함을 푸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지만, 최근 변호사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의료소송에서 환자의 승소율이 낮아지고, 환자가 승소했더라도 과실상계

비율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 변호사와 서상수, 최재천, 이인재 등 동료 의료전문 변호사들이 노력해온 결과

1990년대에는 원고승소율이 60~70%까지 올랐고 과실상계 비율은 20~30%까지 낮아졌지만

2000년대 들어서 환자승소율 50%, 과실상계 50%로 변화하더니 최근에는 원고승소율이

30%까지 뚝 떨어졌고 과실상계가 60%까지 치솟았다는 것이다.

의사 출신 판사가 늘어나는 데다 2007년부터 ‘전문심리위원제도’가 도입돼 판사들이

재판 전에 전문가인 의사의 견해를 참고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배심원제도에서는 소송 당사자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을 배심원에서 제외시키는

‘자기재판금지의 원칙’이 있는데, 이는 전문성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한 장치입니다.

그런데 법원이 이 원칙을 스스로 팽개치고 있습니다. 의사 출신이 재판관이 되고,

판사가 의사들의 견해를 참고하면 아무래도 의사 편 판결이 나오기 쉽습니다. 사람들이

‘가재는 게 편’이라며 판결을 불신하면 법 정의가 위태롭게 됩니다.”

의료소송을 진행하는 판사들은 ‘전문심리위원제’가 판결의 참고사항일 뿐이라지만,

전문심리위원이 있는 의료전담부는 원고승소율이 10~20%에 그치고 있어, 일반 재판부의

60%에 비해 뚝 떨어진다는 것이 신 변호사의 설명이다.

신 변호사는 변호사로서 무모한 도전을 감행할 예정이다. 그는 조만간 전문심리위원제도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계획이다. 변호사가 법원의 권위에 도전하면 자칫 ‘괘씸죄’에

걸릴 수도 있지만, 그는 법원의 사법편의주의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것이 법 정신을

세우는 길이고, 불쌍한 환자의 원을 풀어주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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