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조종하는 기생충

기생충 중에는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숙주의 행태를 조작하는 종류들이 적지 않다.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에 소개됐던 창형흡충이 대표적이다. 양의 간에서 번식하는

이 벌레의 알은 양의 변을 섭취한 달팽이 속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부화한 유충은

달팽이의 점액을 먹은 개미에게 침투한다. 개미 속의 유충 100여 마리는 다음 단계로

성숙하지만 한 마리의 자살특공대는 그렇지 않다. 개미의 신경 계통에 침투해 그

행동을 ‘조종’하는 임무를 맡는다. 감염된 개미는 해질 무렵이면 무리에서 벗어나

풀잎 끝으로 올라가 아침까지 매달려 있게 된다. 풀을 뜯는 양에게 먹히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개미는 해가 뜨면 정상적으로 활동하다가 해질녘이면 다시 풀잎 끝으로 올라가는

행태를 되풀이한다.

달팽이의 기생충 가운데는 새에게 잡아 먹히도록 숙주를 조종하는 것도 있다.

새의 뱃속에서 번식하는 종이다. 그 알은 변을 통해 배출된 뒤 이를 먹은 달팽이의

몸 속에 들어간다. 알에서 깨어난 유충은 수천 마리가 모여 길쭉한 주머니 모양을

만든다. 이 주머니는 달팽이의 촉수 속으로 침입해 놀라운 행태를 보인다. 첫째,

원래는 그늘에 숨어서 돌아다니는 달팽이를 햇빛 속에서 나다니게 만든다. 둘째,

주머니 자체가 마치 새의 먹이인 애벌레처럼 밝고 다채로운 빛을 띠는데다 독자적으로

꿈틀거린다. 새는 달팽이를 애벌레로 착각해서 잡아먹는다.

지난 주엔 쥐로 하여금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게 만드는 기생충의 행태도 확인됐다.

미국 스탠포드 대학 연구팀이 저널 ‘플로스 원 (PLoS One)’에 발표한 연구결과다.

범인은 고양이의 내장 속에서 번식하는 단세포 생물인 톡소플라즈마. 여기에 감염된

수컷 들쥐의 뇌 세포는 고양이의 소변 냄새를 맡고는 발정 난 암컷 쥐의 냄새를 맡은

것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 기생충은 사람도 감염시켜 가벼운 감기 증세를 일으킨

뒤 뇌에 침입해 자리잡는다. 하지만 인체에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면역계에 이상이 있는 사람에게는 병을 일으키며 특히 태아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다행이라면 인간의 행태를 조종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라고 할까. 세계 인구의

20억 명 이상이 이 기생충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니까 말이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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