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자살, 우리의 우울한 미래

신현호의 의료와 법

작가 강풀이 그린 순정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노인부부의 사랑과 슬픔을

잔잔히 그리고 있습니다. 택시를 몰던 장군봉은 일흔이 넘으면서 운전대를 놓고 주차장관리원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2남 1녀를 키워 출가시켰으나 앞가림도 어려워 장 씨

부부를 1년에 한번 찾지도 못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치매를 앓던 처 조순이가 암말기로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자 친구 김만석에게 편지를 씁니다.

“나는 사실 그동안 참 외로웠어. 세월이 흘러가면서 자식들은 다 내 주변을 떠났고,

의지할 데라곤 오직 아내밖에 없었어. 새벽부터 자정까지 하루 종일 일을 해야만

했고, 몸은 늙어 매일 졸리기만 하고. 사람이 참 그리웠는데 자네와 송 씨는 나에게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을 주었다네… 늘 함께였던 우리부부가 병으로 인해서 따로

떨어지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네. 내 아내는 겁이 많아서 그 먼 길을 혼자 가기

힘들다네. 내가 같이 가줘야지. 우리는 함께 갈거야.”

장 씨는 마지막 편지를 쓴 후 창문을 테이프로 밀봉하고 연탄가스를 피워 부인과

동반자살을 합니다.

노인자살의 4대 원인은 건강악화, 경제적 곤란, 외로움, 상실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노인자살은 청소년자살과 중장년자살보다 많지만 사회적 관심은 낮습니다. 우리의

가장 슬픈 현실입니다.

2005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치매환자는 42만 명(남자 15만 3천명,

여자 27만7천명)으로 추정되고, 2020년에는 77만 명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009년 노인우울증으로 치료받은 환자가 14만8천명(2004년 8만9천명)이지만 실제

유병환자는 50만 명 이상이 넘어 노인 정신 건강이 우려된다고 합니다.

OECD국가의 노인 빈곤률 평균은 13%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45%이나 됩니다. 경제성장의

그늘아래 저축이나 연금가입은 생각도 못하다 노후를 맞이했습니다. 이제 파고다공원이나

무료급식소가 그들의 유일한 소일장소가 됩니다.

자식들이 떠나고 평생을 같이한 배우자를 잃으면 외로움은 극에 달합니다. 특히

공무원이나 교사와 같이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던 노인이 은퇴하면서 더 이상 이 사회에

필요 없는 존재라는 상실감과 소외감이 더해지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농촌노인은

농약이라는 자살수단을 얻기도 쉽습니다.

사회는 다양성을 갖추어야 유지되고 발전합니다. 어린이도 있어야 하고 노인도

있어야 합니다. 건강한 사람도 있지만 누군가 수발을 해주어야 하는 장애인, 노인도

있기 마련입니다. 동물사회에서는 질병이나 장애가 발생하면 죽는 시간만 기다리지만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이 인간다운 이유는 상대방을 이해하고 서로 기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약자인 노인에게 보내는 관심이 곧 우리의 선진척도입니다. 그분들은 우리의

미래모습이기도 합니다. 영화나 만화에서는 아름다운 죽음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노인 자살은 결코 미화되거나 방조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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