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20대가 타로에 빠진 까닭은?

“미래 불안한 세대에 위안 제공해줘”

“직장을 옮겨야 할까요?”-점치는 현장.

“지금 하는 일이 내게 맞는 건지 직장을 옮겨야 하는지 알고 싶어요”

25일 오후 3시 서울 강남역 부근의 타로 점집. 큰 길가의 인도 한 켠을 점거한

소형 컨테이너 박스에는 ‘타로’라는 작은 간판이 붙어있다. 고객은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긴 생머리의 여성. 타로 카드를 해석해주는 소위  ‘타로 마스터’는

30세가 조금 안돼 보이는 여성. 청바지에 반팔 차림이다. 벽에는 애정운, 직업운,

취업운, 공부운, 시험운 등의 메뉴가 붙어있다. 마스터가 고객에게 주문한다.  “이

직업에 나에게 맞을까를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서 평소 잘 쓰지 않는 손으로 카드를

7장 뽑아주세요”. 자신도 2장의 카드를 뽑은 마스터는 9장의 카드를 한 장씩

내려놓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첫장: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네요”

다음 한 장: “업무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도 받지만 아직 일을 하는 만큼 보상도

잘 따라주지 않고 대인관계에서도 스트레스가 있으시네요”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꼭 집어주는 마스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한동안 털어놓았다. 마스터는 남은 카드를 차례로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하지만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본인에게 매우 잘 맞는다고 나와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은 힘들지만 지금 회사에서 조금만 견디면 장기적으로는

본인에게 매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면서 “혹은 같은 직종의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자주 찾아오는 손님

가운데 비슷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다”며 “혹시라도 힘든 일이 있으면 연락해

이야기를 나눠보라”며 명함을 한장 쥐어주었다.

 가게 바깥에는 조금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5명의 고객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다. 대부분 20대 초중반 여성이고 애정운을 보려고 찾아온 앳돼 보이는

커플도 있다. 그 중 유일하게 정장을 갖춰 입은 20대 여성이 30여 분을 기다린 끝에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마스터가 질문한다. “어떤 내용이 궁금해서 오셨어요?”.

급증하는 타로 가게와 고객.

주로 대학가 주변에 많던 타로 점 가게들이 카페와 시내 중심가, 대형극장, 할인점은

물론 스마트폰에까지 진출했다. 강남역 부근 골목길에선  ‘사주’나 ‘타로’라는

간판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유명한 가게엔 많게는 20명 가까운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용산의 한 영화관 건물에는 아예 사주팔자, 관상, 손금, 타로점 등을 보는

복합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유료로 제공되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도 인기다.

 한 스마트폰 유저는 “원래 인터넷 카페를 통해 꾸준히 이용했었는데

이제는 컴퓨터 없이도 답답한 일이 있을 때마다 타로점을 볼 수 있어 편하다”며

“친구들에게 선물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타로 점을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의 여성이다.  이들에게 타로점은 이제 재미를

넘어 하나의 문화이자 생활양식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점집에서 위안을 얻는 사람들.

한 타로마스터는 “재미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고민이나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애정운”이라며 “최근 취업난이 계속되면서

취업운을 보는 사람도 많아졌으며 이직을 위해 직업운을 보는 사람들도 늘었다”고

덧붙였다.

 대학원생 윤 모씨(26)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갑갑할 때 타로 점을

본다”며 “점괘가 꼭 좋게 나오지 않더라도 오히려 기대를 덜 하게 돼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 모씨(27)는 “가격도 저렴하고 다른 것에 비해 가볍게 볼

수 있어서 자주 찾는 편”이라며 “조언이나 충고를 받을 수 있어 힘든 일이

있으면 타로 마스터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위안을 얻는다”고 전했다.

 대학생 임 모씨(20)는 “미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끔씩 생각한 것과 딱

맞게 떨어질 때가 있어서 종종 찾는다”며 “좋은 점괘가 나오면 실제로 잘 될 것

같아 기분도 좋아진다”고 말했다.

불안한 사회가 점을 부추긴다

노만희신경정신과 노만희 원장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보장되지 않고

대학원에 가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 등 결국 불안이 증가하는 사회가 점을 부추긴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호기심과 재미라는 측면도 있겠지만

젊은이들이 비용을 지급하면서 점을 보는 것은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며

 “점집이 일종의 정신과 진료소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 원장은 “자기 확신을 위해 점을 보고 점을 통해 자기 확신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런 사람들은 점괘가 자기 확신에 방해가 되면 다른 점집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는 점괘 때문에 남편을 의심하는

등 불안감이 생겨 정신과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면서 “남의 말에 쉽게 흔들리는

성향의 사람은 정신적인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권위가 해체되고 스승이자 조언자 역할을 하는

멘토가 없다는 점도 점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며 “멘토 대신에 점집을

찾고 점장이가 멘토 역할을 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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