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공포 닮아가는 방사능 공포

[칼럼] 박양명 기자

의료인 한 모 씨(40)는 지방 출장을 갔다가 아내로부터 “방사능 비가 오니 꼭

우산을 쓰고 다녀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 한편으로는 고맙고,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자신의 건강을 챙겨주는 것은 고마웠지만 이번 봄비가 해로울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의료정보회사 이 모 대표(46)는 아침에 고1년인 딸로부터 “방사능 비 때문에

경기도에서는 교장 재량으로 학교 안가도 된다”는 말을 듣고 “그럴 리가 없다”고

타일렀다가 나중에 딸의 말이 맞은 것을 확인하고 황당했다.

하루 종일 TV에서는 ‘방사능 비’의 피해를 줄이는 ‘친절한 뉴스’들이 흘러나왔다.

인터넷에서는 ‘비에서 방사능 냄새가 난다’ ‘방사능 비를 맞으면 잘 때 코피가

흐른다’ ‘극미량의 방사성 물질에도 DNA가 파괴돼 암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비를

절대 맞지 말라’ 등 온갖 괴담이 돌아다녔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이번 비에는 극미량의

방사능이 포함돼 있으므로 안전하다고 알리고 있지만 우산, 우의, 모자, 마스크가

불티나게 팔렸다.

가장 황당한 일은 교육현장에서 벌어졌다. 경기도교육청은 6일 밤늦게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원장 재량 휴교를 지시하는 공문을 보냈다. 40여개의 초등학교와 80여개의

유치원이 방사능 비 때문에 휴교했다. 온라인에는 휴교령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펼쳐졌다. 전북도교육청과 전남도교육청도 7일 이 같은 내용의 공문을 보냈고 일부

학교가 실제 휴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의 일부 학부모도 “우리 애들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걱정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과학적 시각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은 지금 ‘방사능 병’이 번지고 있다. 그러나

방사능에 의한 피해보다 방사능 스트레스로 국민 건강이 찌들고 있는 듯하다.

과학자들이 파악하는 현재의 방사능에 대한 진실은 자명하다. 사람은 자연 상태에서도

방사능 물질에 노출되고 있으며 일본에서 방사능 물질이 날아와도 그 양은 극히 적다.

따라서 지금 당장은 사회가 혼란에 빠질 정도의 공포심은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대한방사선방어학회는 6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국내 방사선 영향’이라는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열고 “현재 일본의 원전으로 인해 검출되는 방사선량은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국민의 과도한 공포심이 해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나선호 전 방사선안전본부장은 이 자리에서 “개인마다

방사성 물질에 대한 우려가 있더라도 평상시와 같은 개인청결에 의한 예방의학 차원의

대응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황사가 오면 황사먼지 흡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야외 활동을 줄이며, 외출 후에는 먼지를 털어내고 황사에 노출됐던

몸을 청결히 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이재기 교수도 “현재 방사능 물질은 극미량이고 앞으로도

큰 영향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국민의 과도한 불안을 덜어줘야 한다”며 “그러나

100% 확실한 것은 없기 때문에 정부와 전문가들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대학병원 핵의학과 교수도 “현재 검출되고 있는 방사능 물질 양은 병원에서

X-레이, CT를 한번 찍을 때마다 노출되는 것보다 훨씬 적은 양”이라며 “광우병

사태 때와 같이 과장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 이번 ‘방사능 공포감’는 2008년 ‘광우병 사태와’ 비슷한 점이 많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진실보다는 온라인에 떠도는 괴담과 일부 언론보도에 휩쓸려서

온 나라가 홍역을 치렀다. 당시에도 과학적 진실을 말하는 과학자들이 대중의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당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개인 블로그를 통해 과학적

실체를 알리려고 고군분투했던 양기화 박사는 “광우병 사태는 정부, 의사, 과학자,

언론이 제 역할을 다했다면 그렇게까지 비이성적으로 번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 정부는 방사능 공포가 시시각각 번지고 있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데에는 손을 놓았다. 정부는 평소 원자력의 안전을 홍보하는 원자력안전기술원에게

국민 설득을 일임하다시피 했다. 광우병 때 미국과의 협상담당자인 농림수산부에

일임한 것과 어찌 이렇게도 닮았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 전체가 움직여야 했고

특히 보건당국인 보건복지부가 적극 나서서 인체 유해성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설명해야

했지만 ‘느림보 행태’ ‘관망 행정’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일부 언론과 이른바

‘비판적 지식인’의 무책임한 공포감 조성도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다르지가 않다.

광우병 사태, 천안함 사태 등을 거치며 우리사회에서 ‘사이비 과학 논쟁’이 벌어질

만도 했지만 과학 담론에 대한 천착과 반성 없이 정치적 이슈로 덮어버리니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들 언론과 ‘사이비 과학자’들은 ‘의무적 비판의

함정’에서 벗어나고 과학의 원리와 전문가들을 존중하는 자세를 갖기를 빈다.

이번에는

여기에다 일부 교육청까지 가세했다. 과학은 과학자들의 합의와 토론 과정인데 이를

무시하고 휴교를 결정했다. 교육계가 과학을 무시하고 여론에 따른다면 도대체 과학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학문은 곧 과학인데 무엇을 가르친단 말인가?

국민들의 우려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관계부처가 모여 ‘원전 및

방사능 관련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열고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리기로 했다. 그러나

“인체에 무해하니 걱정하지 말고, 비를 맞은 후에는 깨끗이 씻으면 된다”는 말만

되풀이 하는 정부의 안이한 목소리가 너무 낮게만 들린다. 결국 이번에도 과학자들의

의견이 무시되고, 홍역을 치르고 나서야 깨닫게 될까? 과학이란 무엇인지를. 아니면,

이번에도 과학의 원리를 깨닫지 못하고 진통만 겪고 헐뜯긴 상처를 봉합할 것인가?

    박양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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