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 환자, 예방요법으로 정상 삶 가능”

김효철 원장, 송파에 전문의원 열어

“어려서부터 예방요법으로 치료하면 충분히 정상인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보통 아이들처럼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거나 하는 작은 상처는 알아서 낫기도 하지요.

물론 권투나 격투기처럼 과격한 운동은 힘들겠지만, 상처 없이 떳떳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됩니다.”

서울 송파구 풍납동에 혈우병 전문의원을 연 김효철 원장(68, 전 아주대의료원장)의

목소리에는 흐뭇함이 실렸다. 1994년 아주대병원이 개원할 때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미국에서 건너온 그는 혈우병에 대한 관심을 아주대병원에 정착시킨 주인공이다.

국내에 그 수가 2천여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혈우병 환자들이 혈우재단병원을

제외하고 갈 수 있는 곳은 두 군데의 대학병원이 전부였다. 그 중 하나가 김 원장이

몸담았던 아주대병원. 2006년 아주대병원에는 혈우병 환자들을 위한 지혈혈전센터가

생겼다.

김 원장은 국내에서 혈우병 환자를 위해 이뤄지는 지원 가운데 예방요법을 으뜸으로

꼽았다. 예방요법은 외상을 입거나 몸 안, 특히 관절에서 출혈이 있을 때 피를 멎게

하는 후처치가 아니라 평상시에 꾸준히 치료제를 맞는 방법. 어린 환자들의 관절이

망가지는 것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어려서부터 일주일에 한두 번 미리 치료제를 주사한다.

치료제를 쉽게 구할 수 없었던 20년 전에는 몸 속 관절 부위에 피가 나고 잘 멎지

않아서 관절이 변형되고 몸 안에 흉터가 생겨 관절이 잘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고통

받는 환자들이 많았다. 이제 40대가 된 환자들은 어려서 치료를 잘 받지 못해 몸이

불편한 사람도 많다.

83년 이후에 태어난 환자들이 맞을 수 있는 유전자 재조합제제는 간염균이나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의

위험이 없어 안전하며 보험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환자의 부담도 적다. 김 원장은

혈우병 환자들을 위한 체계가 갖춰지는 데 한국혈우재단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전했다.

“한국의 희귀병 진료 상황은 전에 비해 매우 나아진 상태입니다. 특히 혈우병은

우리나라에서 선진국 수준과 비슷한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고 김 원장은 설명했다.

2009년 아주대병원에서 퇴임한 김 원장은 지난 2월 혈우병 환자들을 위한 ‘김효철

내과의원’을 열었다. 그는 “같은 건물에 있는 정형외과, 재활의학과와 피부과,

옆 건물의 치과에서 적극적으로 협진 의사를 밝혀 환자들을 보는 일이 한결 수월했다”고

말했다. 혈우병 환자는 치과 치료를 받더라도 피가 잘 멎을 수 있도록 적절한 양의

치료제를 우선 맞아야 하기 때문에 잘 갖춰진 협진 시스템이 중요하기 때문.

김 원장이 혈우병 환자들을 돌본 지는 어느덧 40년이 훌쩍 넘었다. 미국 뉴저지

주에 있는 로버트 우드 존슨 의과대학에서 혈액종양을 전공하던 때부터 혈우병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1975년 미국 연방정부가 혈우병을 희귀병 모델 중 하나로 지정하고

치료제, 환자들의 사회진출 등 포괄적인 지원을 약속하면서부터.

1980년대, 혈우병 환자들 사이에 거대한 두려움이 밀어닥쳤다. 오염된 혈액제제

때문에 간염이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 걸리는 혈우병 환자들이 속속 나타났던

것.

“80년대에는 에이즈에 걸린 혈우병 환자들이 급한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실려 오곤 했습니다. 심폐소생술을 빨리 해야 하니까 구강 대 구강법(mouth to mouth)으로

인공호흡을 했는데, 나중에야 에이즈 환자라는 걸 알았죠.”

지금은 웃으며 기억에 남는 일화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많은 혈우병

환자들이 병 때문에 치료제를 주사하고 치료제 때문에 오히려 목숨을 잃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당시 치료한 미국인 변호사와는 아직도 이메일로 안부와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

‘환자를 돌보면서도 강의와 연구까지 해야 했던 대학병원에서 일할 때에 비하면

개인의원 생활이 조금 더 여유롭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언제

환자가 찾아올지 모르니 진료시간에는 늘 자리를 지켜야 하고 진료 외에 다른 관리도

해야 하는 요즘이 오히려 더 바쁘다고 했다.

그는 아내인 김현주 전 아주대병원 교수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아주대병원에서 의학유전 교수로 있다가 함께 퇴임했다. 근육위축병을

비롯한 희귀병을 전공해 지금은 한국희귀질환연맹 회장을 맡고 있으며 김 원장을

도와 병원에서 일주일에 2번씩 혈우병 환자들의 유전상담을 하고 있다.

    유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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