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 ‘소송’대신 ‘조정’으로 해결

23년만에 의료분쟁조정법 국회 통과

의례 2~3년이 걸렸던 환자와 의료진 간의 의료분쟁이 빨리 풀릴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와 함께 분만사고 의료분쟁은 의료진의 과오가 없어도 환자는 일정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국회는 11일 본회의를 열고 ‘의료분쟁조정과 피해구제를 위한 제정법’(의료분쟁조정법)을

재적의원 233명 가운데 찬성 223명, 반대 1명, 기권 9명으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1988년 대한의사협회가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을 건의한 후 23년 만에 국회에서

처리됐다.

이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는 의료사고가 발생할 때 의료진과 환자 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소송을 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그 동안 진행된 의료소송

진행기간은 평균 26개월이 넘어 환자와 의료진 모두 시간과 비용에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또 환자 측에서 의료과오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승소율도 60%대에

머물렀다.

의료분쟁조정법은 소송이 아닌 조정을 통해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고

이를 전담하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설립하는 것이 핵심이다. 의료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한 환자 측이 중재원에 구제 신청을 하면 중재원은 전문의와 비영리단체

임원 등으로 구성된 ‘의료사고 감정단’이 의료진의 잘못여부와 환자 피해 정도 등을

조사한다.

이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판사,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의료조정위원회’가 중재에

나서는데 어느 한 쪽이 중재안을 거부하면 의료소송으로 넘어간다. 조정 절차는 120일

안에 이뤄지며 환자 측이 원하면 중재 없이 바로 소송으로 갈 수도 있다. 중재원이

의료사고를 조사할 때 감정위원이 해당 의료기관을 방문해 관련 문서를 열람 또는

복사할 수 있으며 사고의 원인이 된 의료행위를 할 당시 환자의 상태와 행위를 선택하게

된 이유 등을 의사가 서면 또는 구두로 소명할 수 있다.

또한 의료사고의 범위에 의약품 처방·조제 행위에서 발생한 피해도 포함됐으며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의료분쟁 중재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해외 환자

유치 과정에서 일어난 의료분쟁도 소송 없이 이루어질 수 있어 해외환자 유치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으로 보인다.

의사의 책임을 묻기 어려운 무과실의료사고는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이라는

조항으로 포함돼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하는 의료사고도 정부가 피해금액을 예산범위에서

지원한다. 특히 의료과실을 따지기 어려운 분만 사고로 인한 의료 피해는 의료진의

과오가 입증되지 않더라도 사고로 봐 환자들이 일정부분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무과실의료사고의 보상 비용 가운데 구체적인 분담비율이나 보상 범위, 보상금

지급 기준과 절차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당초 논의에서는 정부가 5000만원 한도에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법안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아 세부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보상재원 문제가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피해자에게 신속하고 충분한 배상을 하기 위해 손해배상금 ‘대불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조정이 성립되거나 조정절차 중 합의가 이뤄지면 의사가

업무상 과실치상죄를 범했더라도 피해자가 의료진에 대한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이 특례는 현행법상 진료거부를 할 수 없는 의료진에게 안전정인 진료환경을 조성하고

의료인이 적극적으로 조정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의료과오 입증 책임 소재를 환자와 의료진 중 어느 쪽에 둔다는 규정이

빠져 특례만 있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경실련은 “조정제도는 당사자 간의 합의를 종용하는 식으로 사건 해결에만

주안점을 두게 되어 의료사고의 실체적 진실은 규명되기 어렵다”며 “환자들의

실질적인 보상은 뒷전으로 밀리고 형식적인 조정에만 초점을 맞춰 피해구제의 실익이

불투명해 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실련은 이어 “환자에게 입증책임을 부담시키면서 의사에게 형사책임특례를

허용함으로써 의료 과실과 관련된 사회적 비용까지 국민들이 부담하게 된다”며

“조정의 대가로 형사특례조항을 법에 명시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적인 평등권을

침해하고 환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의료분쟁조정법이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국무회의 심의 통과가 예상되는

오는 4월경 공포되고 1년 후인 내년 4월부터 본격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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