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가 엉뚱한 얘기하며 고집피우는 까닭?

英 연구진 “새 대상을 익숙한 것으로 착각”

뇌가 손상당하면 그저 기억이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새 대상을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치매나 뇌졸중에 걸린 사람이 엉뚱한 얘기를

하면서 고집을 피우거나 남을 괴롭히는 이유에 실마리가 생긴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심리학자 리사 사크시다 박사팀은 컴퓨터 모의실험에서

일부러 ‘후각주위피질’을 손상시킨 쥐와 정상 쥐를 대상으로 기억력 실험을 전개했다.

뇌 중간 부위에 있는 후각주위피질은 뇌로 유입되는 정보를 감각과 분리시켜 기억을

형성하고 대상의 복잡한 형태를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이 부위는 기억상실이나 치매에

걸리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영역으로 손상되면 복잡한 대상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연구진은 인위적으로 후각주위피질을 손상시킨 쥐와 정상인 쥐를 대상으로 기억력에

대한 실험을 시작했다. 우선 두 그룹의 쥐들을 모두 1시간가량 우리에 가둬둔 뒤

작은 정원용 장식이나 플라스틱 장난감 기차와 같이 작고 복잡하며 색깔이 화려한

물체와 친근해질 수 있는 시간을 3분씩 줬다.

그 결과 평범한 쥐들은 새로운 물체를 탐색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오래되고

친숙한 물체에는 시간을 덜 쏟았다. 반면 뇌손상을 입은 쥐는 새로운 물체 탐색에

더 적은 시간을 보냈는데 이는 쥐가 새로운 물체를 친숙한 것처럼 대한다는 신호다.

만약 쥐들이 단순히 예전 물체를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잊은 거라면 예전 물체와

새로운 물체 모두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을 것이다.

연구진은 뇌손상을 입은 쥐들이 실험 시작 전에 1시간 정도 기다리는 동안 본

비슷한 물체와 같은 것이라고 착각해 새로운 물체를 익숙하게 봤다고 추측했다. 그래서

쥐들이 착각할 수 있는 다른 물체들을 보지 못하도록 어두운 곳에 한 시간 가량 가둬둔

후 다시 이 실험을 반복했다. 그러자 뇌손상을 입은 쥐도 보통 쥐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물체를 탐색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크시다 박사는 “대상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단순한 특성, 예를 들어 특정한

선이나 곡선이 많은 것은 다른 물체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며 “뇌손상을

입으면 복잡한 형태를 인식하지 못해 전에 봤던 물체와 비슷한 단순한 모습으로 혼동해

기억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인간은 쥐처럼 선별적인 뇌손상을 경험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후각주위피질

손상이 기억에 혼란을 가져오는 것은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며 “하지만 후각주위피질뿐만

아니라 뇌의 다른 부분까지 손상됐을 때의 증상은 아직 설명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연구결과는 세계적 과학잡지 ‘사이언스(Science)’에 3일 발표됐으며 미국

폭스뉴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 온라인판 등이 같은 날 보도했다.

    박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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