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 오니 좋은 것 같아요”…항상 모호한 표현

확실한 정보 및 생각, 자신감 떨어져 가나?

“조퇴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유가 뭔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중소기업 직원 김상훈(32, 가명) 씨가 조퇴를 신청하면서 부장과 나눈 대화다.

부장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은 크게 가슴 아픈 일이지만 김 씨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잠깐 역정이 날 정도였다. ‘조퇴를 해야 한단 말인가,

안 해도 된단 말인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단 말인가, 살아계신단 말인가?’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사실이거나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인 것 같다’는 불확실하고 애매모호한 표현이 넘쳐나고 있다. 딱 잘라서

이야기를 하면 괜히 버릇없어 보일까봐 눈치를 보게 된다고 한다.

“요즘, 장마철이라서 비가 너무 많이 내리는 것 같아.”

“그러게 말이야. 근데 네가 입은 옷 대따 멋진 것 같아. 새로 샀어?”

“응, 어제 백화점 갔다가 너무 예쁜 것 같아서 샀어.”

여기에도 애매모호한 표현뿐이다.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오는 것은 당연한데 비가

많이 내리는 것 같다는 유보적 표현을 하고 있다. 또 옷을 사는 본인 눈에 예쁘니까

샀을 텐데 모호한 표현을 쓰고 있다. 이때에는 “장마철이라서 비가 너무 많이 온다”

“멋져 보인다” “참 예뻐서 샀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올바르다.

국립국어원 정희창 연구관은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가정하거나 정보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인 것 같아요’ 표현을 쓰면 문제가 없지만 확실한데도 습관적으로 모호한

표현을 쓰는 것은 우리말 체계를 문란하게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저자인 김혜남 정신분석연구소 소장(정신분석 전문의)은

“불확실한 표현을 자주 쓰는 것은 모두 자신에 대한 확신이 적은 것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김혜남 소장은 “요즘 젊은이들은 전반적으로 쿨하다(멋지다, 깔끔하다의 영어적

표현)는 평가들을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느낌이나 생각이 다른 사람과 다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크고 자기 확신이 적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겉모습은 당당하고 모자람이

없으면서도 어떤 경우에든 항상 여지를 만들어놓는 유보적인 말투가 버릇이 돼가는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 일각에서는 영어 교육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영어식 표현이 넘치게 사용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다. ‘~인 것 같다’로 번역되는 영어의 ‘It seems like~’라는

표현은 불확실하지만 자기 생각을 비교적 확고하게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이

번역 투 표현이 잘못 자리 잡으면서 아무 상황에나 ‘~인 것 같다’는 표현을 쓴다는

것이다.

정희창 연구관은 “영어적 표현의 영향에 대해선 그럴듯한 심증은 있다는 전문가들이

상당하지만 학술적으로 증명된 바 없어서 뭐라 단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일상생활에서 애매모호함을 안겨주는 표현이 남발되면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우유부단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언어는 정신의 얼굴’이라고 한다. 말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고 비로소 다른 사람과 소통한다. 확실한 정보가 있고 자기 생각을 드러낼

때는 분명하고 또렷하게 표현하는 것이 맞다.

* 이 기사는 독자 김상현, 김세은 님 등의 의견을 반영했습니다.

    박양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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