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증상 3징후,’ 방사선 멀쩡해도 골관절염

환자와 의사, 함께 걷는 자세로 병 퇴치

이제

마흔을 갓 지난 듯 보이는 여성이 조심스럽게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리 살찌지

않은 몸매에 하얀 얼굴,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에 가벼운 발걸음에서 병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내가 처음 만나는 환자에게 건네는 첫마디는 언제나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인데, 오늘은 정말 말 그대로 이 환자는 과연 어디가 불편해서 온 것일까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이윽고 환자의 대답이 떨어진다. “저…무릎이 아파서요”

의사들은 누구나 ‘환자의 첫마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가 환자의 처지라면

의사를 찾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갈등을 할까? 가까운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기도 하고, 친척과 이웃에게 비슷한 증상의 치료에 대해 묻기도 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가 정말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중한 상태인지, 며칠만 지나면

저절로 낫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고민의 시간을 지나

예약을 하거나 시간을 내 병원을 찾기 까지는 다시 한번 갈까 말까 망설였을 것이다.

진료 당일에는 접수와 대기 과정에서 새 고민이 시작된다. ‘의사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야 짧은 시간에 내 몸의 아픈 곳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할 수 있을까?’ 그런

깊은 생각 끝에 나오는 것이 환자의 첫 마디인 것이다.

실제로 진단과 치료는 환자의 첫 마디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옳다. 그러나 의사는

환자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정보수집을 시작한다. 마치 ‘명탐정 코난’처럼

말이다. 환자의 생김새, 살집과 복장, 걸음걸이와 눈빛에 이르기까지 물샐틈 없는

스캐닝을 끝낸 상태에서 의사는 환자의 첫 마디를 기다린다.

환자의 입에서 의사가 예상했던 증상이 흘러나올 때 의사는 기다렸던 듯 환자의

알리바이를 따져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전혀 예측하지 못하던 증상이 환자에게서

흘러나오면 의사는 정신을 가다듬고 증거를 다시 수집해나간다. 코난이 증거를 찾기

위해 사건현장을 샅샅이 또 뒤지는 것처럼.

방사선 검사가 모든 것은 아니다

요즘 부쩍 의사의 눈으로 스캐닝하는 증거와 들어 맞지 않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앞서의 정갈한 여성 환자처럼 말이다. 우리가 아는 무릎 골관절염 환자는 약간 나이가

많고 몸무게가 좀 나갈 것 같고, 일을 많이 했을 것 같고, 뒤뚱뒤뚱 걸어 들어오는

환자의 모습이다.

실제로 그런 환자 유형이 많다. 이들은 방사선 검사를 하면 골관절염으로 분명히

드러나는 편이다. 그러나 날씬하고, 나이도 많지 않으며, 걸음걸이조차 문제가 없는

환자는 방사선 검사를 통해도 들추어 내기가 쉽지 않다. 물증이 없으면 심증으로

치료하게 된다. 물증은 없고 심증만 있을 때 의사가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초기’라는

말이다.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너무나도 안전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초기 관절염은 관절염인가, 아닌가? 분명히 임상적인 증상은 있는데

방사선 검사를 해보면 나타나지 않는다. 객관적 증거가 없는 것이다.

방사선검사 정상이라도 3증상 3징후는 관절염

2009년 유럽류마티스학회에서는 “3개의 증상과 3개의 징후가 있으면 99% 골관절염이며,

방사선 검사가 정상일 때도 그러하다”고 했다.

세 가지 증상이란 △통증 △아침에 뼈가 뻣뻣해지는 짧은 조조강직 △관절의 기능제한

등이다. 세 가지 징후는 △관절을 움직일 때 두둑 소리가 나는 염발음 △운동제한

△뼈의 성장과 확장이다.

이런 여섯 가지 단서가 충족되면 골관절염이라는 진단이 가능하다. 그 동안 골관절염을

진단할 때 너무 객관적 자료수집을 강조한 나머지, 증상보다는 방사선 검사에만 의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방사선 검사에서 무언가 있으면 환자를 이해시키고

설득하기에 무엇보다 좋은 자료이긴 하지만.

한편 치료는 어떠한가? 아파서 의사를 찾았으면서도 환자들은 아픔을 다스리는

‘진통제’ 처방을 가장 회피한다. 대신 관절을 ‘보호’하거나 이른 바 연골을 ‘재생’한다는

치료를 선호한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기능식품시장은 날로 성장하고 의사의 처방

약은 몸에 해로운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까지 있다.

하지만 아픔을 줄이는 치료가 환자의 삶의 질에는 매우 중요하다. 관절을 보호하는

근육량과 운동 능력을 유지시키려면 아픔을 줄이는 치료는 꼭 필요하다.

어느 병이 그렇지 않을까만 관절염의 진단과 치료는 환자와 의사 사이에 진정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환자의 호소는 뒤로한 채 방사선 검사만으로 골관절염

여부를 판정하고, 의사의 충고를 무시한 채 진통제 처방에는 고개를 젓던 시대는

갔다. 환자의 고통과 원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하고 환자로 하여금 처방 약을 왜 먹어야

하는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충분히 설명할 때 우리는 비로소 ‘골관절염’이라는

범인을 제압할 것이다.

성윤경(한양대 류마티스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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