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도 ‘국가대표’ 있었네

간 이식 받은 37세 스노보더

미국에도 우리나라 스키나 봅슬레이 대표와 같은 ‘국가대표’가 있었다. 스노보드를

타기에는 할아버지 격인 37세의 나이. 게다가 간 이식을 받고 재활을 위해 몸부림쳤다.

미국스키스노보드협회의 예산 지원을 받을 수 없자 스스로 후원자를 모집하고 훈련에

매달렸다. 그에게는 스노보드에 대한 지독한 사랑과 함께 “장기이식을 받은 환자도

남들과 똑같이 활동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알려야 할 사명감이 있었다.

주인공 크리스 클러그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끝난 지금 미국 대표팀의 피겨 남자

금메달리스트인 에반 라아사첵과 쇼트트랙의 안톤 오노, 스노보드 금메달리스트인

세스 웨스콧, 숀 화이트 못지않은 감동의 여운을 퍼뜨리고 있다.  

클러그는 어릴 적부터 각종 국제대회를 휩쓸어 스노보드의 황제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러나 1998년 스노보드가 첫 종목으로 채택된 나가노 동계 올림픽에서 6위에 머물렀다.

당시 희귀한 퇴행성 담관질환인 원발성 경화성 담관염으로 투병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 병은 간 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 2000년 체력이 크게 떨어지고 황달까지

나타나 죽음의 문턱에 있던 그는 마침내 기증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클러그는 수술에 대비해 헬스클럽에서 자전거를 타고 역기를 들어 올리는 등 몸만들기에

열중했다. 이식 수술에서 회복한 뒤 담당의인 콜로라도 대학 병원의 이갈 캠 박사에게

던진 첫 물음은 “다시 스노보드를 탈 수 있는가?”였다.

그는 수술 한 달 만에 재활 훈련을 시작했다. 강도 높은 운동과 함께 이식 부분의

조직이 잘 움직이도록 정기적으로 복부 마사지를 실시했다. 4주 반 동안은 자전거를

탔고 7주 뒤 복부 강화훈련을 가볍게 시작했다. 8주 만에 그는 스노보드를 다시 탈

수 있었다.

클러그는 1년 반 뒤인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다.

그는 장기 이식자 중 올림픽 메달을 가져간 유일한 선수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그러나 2006년 미국스키스노보드협회의 대표선수에서 탈락한다. 협회는 “많은

선수를 지원할 예산이 없다”는 군색한 변명을 했다. 클러그는 백방으로 뛰어서 자신을

후원하는 팀을 꾸린다. 그리고 다시 도전했다. 올해 1월 퀘벡에서 열린 올림픽 예선에서

세계 8위를 하자 협회도 대표선수단에 합류시켰다.

그리고 2월27일 그는 세 번째로 올림픽에 도전했다. 밴쿠버 동계 올림픽 남성

알파인 스노보드 경기에 출전한 것이다. 그러나 클러그는 두 번의 회전에서 1위에게

1.5초씩 뒤져 아쉽게 7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는 “스노보드를 계속 타고 세 번 올림픽에 참가한 것은 생명을 살리는

장기 기증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한 귀중한 기회”였다며 “나는 무엇보다

스포츠를 사랑하고 그것이 내가 여기 있는 이유”라고 밝혔다.

한때 간이식은 뇌사자가 생겨야만 가능했지만, 최근에는 살아있는 사람의 간 일부를

절제해서 환자에게 이식하는 ‘생체부분간이식’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간 이식 환자의 사망률은 3%를 넘지 않으며 이식받은 환자가 이전처럼

회복해서 1년 이상 생존하는 비율은 90%에 육박하며 상승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서울대병원 서경석, 삼성서울병원 조재원 교수 등 이 분야 의사들은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간 공여자가 건강을 잃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단지 꺼림칙하다는 이유와 헛소문 등에 현혹돼 기증을 꺼리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장기 이식으로 살 수 있는 환자가 뇌사자의 공여순서만 기다리다가 숨지고 있다.

한편 클러그처럼 간 이식을 받은 사람은 적극적으로 삶을 펼치고 있다. 국내에서

간 이식을 받거나 기증을 한 이들로 이루어진 ‘히말라야 생명나눔 원정대’는 2008년

12월 히말라야 등반에 성공하기도 했다.

    정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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