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기획] 피어 리뷰 vs 기술보호(하)

피어 리뷰는 부담, 기자회견은 OK?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송명근 교수는 20일 오전 11시 반 서울프라자호텔에서

’50년간 지속된 심장판막치환술의 심각한 문제점을 해소한 대동맥 판막 및 승모판막

성형술의 완성’이라는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송 교수는

종합적 대동맥판막 성형술(CARVAR)을 소개하며 그동안의 ‘뛰어난 수술 성적’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상당수 흉부외과 및 심장내과 의사들은 동료들의 피어리뷰는

거부하고 언론 브리핑을 진행하려는 방식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연구결과를 언론을

통해 발표하면 일반인에게 더 빠르게 새 수술법을 소개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과장되기 쉽다. 초기 임상시험 단계에 있는 신약이나 의료기기의 개발 내용이 언론에

먼저 나오면 사람들은 그것이 벌써 치료에 쓰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황우석 박사도 복제 소 영롱이, 복제 개 스너피가 태어났을

때 학술지보다는 언론에 이 사실을 먼저 공개했다. 줄기세포로 난치병을 곧 고칠

수 있게 되리라는 헛된 희망을 심은 것도 언론을 적절하게 관리한 황 교수와 이를

맹목적으로 보도한 언론이었다.

이화여대 의대 권복규 교수는 “동료를 통한 연구 성과의 검증보다는

언론의 파워를 먼저 찾는다면 진정한 과학, 진정한 의학발전은 뒷전이 되기 쉽다”고

말했다. 검증과정이란 비판받는 무대이기도 하지만 자기 연구 결과를 동료 학자들에게

당당하게 인정받는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과학과 의학세계에서 데이터 공개를 기반으로 한 피어 리뷰는

검증의 기본 과정이다. 서울대 의대의 한 교수는 “연구자는 본인의 연구에서 오류나

실수를 제대로 짚어내기 어렵기 때문에 객관적인 관점에서 나오는 동료 연구자들의

의견과 비판에 대해 겸허하게 검토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피어 리뷰가

새로운 이론이나 수술법에 관한 오류나 문제점을 수정 보완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라는

말이다.

특히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에서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제3자에 의한 검증이 필요하다. 송 교수 재직 시절 서울아산병원 동료들이 제기했던

수술법 검증 요구나 흉부외과 학회의 장기 성적 검증 요구는 필수적인 피어 리뷰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저명한 과학비평가 칼 세이건은 “과학자들은 언제나

틀릴 수 있기에 최대한 여러 의견을 폭넓게 수용해야 하며 무자비할 정도로 자기

비판적 태도를 갖는 것이 의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내 과학계에서는 검증이나 비판 자체를 적대시하는

전근대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일부 과학자는 동료의 비평이나 검증 시도를 비난이나

모욕으로 여긴다. 송 교수의 한 지인은 “국내 최초로 심장이식에 성공한 대가인

송 교수가 다른 의사의 검증요구를 자신에 대한 시기와 해코지로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선진국 과학계에서는 자신만이 확신하고 밀어붙이는 연구 결과는

상상하기 힘들다. 송 교수가 자기 아이디어를 도용한 사람으로 지목한 프랑스의 엠마누엘

랑삭 박사는 프랑스의 30개 병원이 참가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2010년까지

새로운 수술법으로 100명, 기존 심장판막 치환수술로 100명 씩 각각 수술해 5~10년간

장기 데이터를 축적해 가며 어떤 수술법이 환자에게 더 유리하고 좋은 결과를 낳는지

연구하고 있다. 과학자가 제3자의 검증이 가능하도록 스스로 학계에 요청한 셈이다. 

랑삭 박사는 ‘수술 중 사망자’ ‘부작용 발생률’ ‘재수술

케이스’ 등을 모두 공개해 다른 의사들이 참고하도록 하고 있다. 랑삭 박사가 이렇게

공개 연구를 진행하는 이유는 ‘피어리뷰-논문발표-재연’이라는 과학의 검증 절차를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다. 랑삭 박사가 제3자 검증이라는 원칙을 택한 반면 송 교수는

개발자 자신이 자기 성과를 스스로 검증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학적 검증시스템이 제자리를 못 잡고 있는데 선진국을

모델삼아 송 교수만 비판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도 있다. 특히 송 교수가 CARVAR에

대한 동물실험, 임상시험 단계일 당시에는 우리 의학계에 이에 대한 제대로 된 기준도

없었고 ‘과학의 룰’에 대해 관심을 쏟는 사람도 없었다는 것. 정부의 연구 지원조차

‘환상적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는 마당에 이상적인 룰을 따르라는 것은 가혹하기까지

하다는 주장이다.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의 한 교수는 “송 교수를 희생양처럼

몰아갈 것이 아니라 우리 과학, 의학계의 객관성을 세우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송 교수도 동료들의 검증시도를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연구 결과를

더 확고히 하는 과학 의학자 집단의 공동노력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과학, 의학자들의 새로운 이론이나 수술법에 대한 합의나 검증과정은

‘빨리빨리’에 익숙한 일반인의 시각과는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학적

논란에 대해 감정적으로 접근했을 때, 특히 ‘국익’ 이라는 허울 앞에서 이성적인

판단은 쉽게 마비되는 것을 황우석 사태와 광우병 사태는 보여주었다. 생명과 직접

관련이 있는 의학은 다른 어느 학문보다 철저하고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의학에서

과학적 객관적인 검증이 빠지면 그것을 사이비 의학이나 돌팔이와 구분할 방법이

난감하기 때문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근무하다 귀국한 한 과학자는 “우리

사회는 과학자를 단순 기술자로 만들기 보다는 과학의 철학과 원리를 아는 교양인으로

키우는 교육이 절대 필요하다”며 “송 교수가 뛰어난 의술을 갖추려고 노력한 만큼

과학의 전제와 원리에 천착했다면 이런 논란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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