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합병증 거푸 이겨낸 ‘무균실 보이’

“친구들 경쟁률과 싸울때 전 생존율과 싸웠어요”

올해

22살인 이상우(경기도 안양 거주) 군은 의사마저도 절망하려던 순간에 슈퍼맨처럼

암을 이겨낸 기적의 주인공이다. 지난 5년간 그를 치료해온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혈액종양내과 민유홍 교수는 그에게 ‘슈퍼맨’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민 교수님이 몇 번씩 고비마다 그랬어요. 꼭 낫게 해 준다고. 그 말을 믿었어요.

가능성 1%를 100%로 만든 저 보고 교수님이 슈퍼맨이래요.”  

허리 아파 병원 갔다가 백혈병 진단

또래 아이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은 15살 때 찾아왔다. 상우는 2003년

12월 극심한 허리 통증으로 가까운 정형외과에 갔다. 허리 치료를 열흘 정도 받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이어 한달 뒤 한 번 더 큰 통증으로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 정밀검사 결과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상우는 백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몰랐다. 중학생 상우가 충격 받을까

봐 가족들이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브란스병원 무균실을 자주 드나들면서

일반 병실과 너무 다른 환경에 큰 병이 아닌지 불안해했다. 백혈병이라고 안 순간

상우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병이잖아요. 머리가 빠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주인공들

모습이 하나씩 떠오르는 거에요. 제가 그 병이라니. 눈물이 미칠 듯이 흘렀어요.

진단이 잘못 된 것 아닐까 의심도 들었고 무조건 부정하고 싶었죠.”

힘든 항암 치료가 시작됐다. 급성이라 진단 직후 바로 1차 항암 치료에 이어 2차,

3차, 4차까지 이어갔다. 가족과 상우 특유의 긍정적 마음 때문인지 결과가 좋았다.

백혈구 수치도 좋아져 항암 치료가 아닌 유지 요법만으로 치료가 가능한 시점까지

갔다. 치료가 거의 완료됐던 것이다.

한번의 재발과 서너번의 고비…기적 같은 생존

하지만 그해(2004년) 연말, 상우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고 병은 재발했다. 다시

그 힘든 치료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찢어놓았다. 심리적 고통이

더 커 우울증까지 왔었다. 다시 친구들을 만날 줄 알았는데, 못한 공부도 하고, 학교에

다시 다닐 줄 알았는데…. 하고 싶은 것도 많은 학창 시절을 그는 그렇게 학교가

아닌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또래 친구들이 입시, 취업 경쟁으로 경쟁률과 싸울 때 저는 생존율과 싸워야

했어요. 저 자신에게 매일 100%의 희망을 불어넣어야 했어요.”

쉽지 않았다. 재발은 상우를 더욱 끔찍한 상태로 몰아갔고, 긍정적이고 웃음도

잃지 않던 그도 이번에는 어려웠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대한골수협회가

골수가 맞는 사람을 연결해 줘 골수 이식까지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합병증이

나타났다. 남의 골수를 이식받았기 때문에 남의 세포가 생착하는 과정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장 숙주반응도 왔다. 장이 망가진 상태까지 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4개월간

금식했다. 망가진 장은 물 한 방울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힘든 시간을

다시 이겨냈다.

2006년 12월 또 한 번의 절망이 다가왔다. 좋아진 줄 알았던 숙주반응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상우는 한 순간 의지를 잃었다. 한

번도 약한 생각을 하지 않던 그였지만 이번에는 가망이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떨어진 의지를 몸이 알아챈 것일까? 그의 상태는 더 악화됐다. 백혈구 수치가 급격히

떨어졌고 합병증도 심해졌다.

다시 100%의 믿음이 필요했다. ‘꼭 낫게 해 줄게!’ 의사 선생님의 말과 엄마의

간호는 상우를 다시 웃게 했다. 고통을 넘어서는 웃음과 함께 그의 상태는 다시 호전되기

시작했다.

‘숨 멎으면 안돼…’ 아들 가슴에 귀대고 잠든 어머니

몇번의 고비 앞에서도 상우가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한결 같은 엄마가 큰 힘이

됐다. 어머니 한민구(49) 씨는 상우가 병마에 빠진 뒤 “또래 학생만 보면 눈물이 절로 나왔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활달하게 거리를 누볐어야 할 아들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에게만은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울면 아들이 절망에

빠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상우 아빠와 밖으로 나가 목 놓아 울지언정 상우 앞에서는

울지 않고 웃었다.

매일 웃고 다니는 엄마를 보고 병원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이라고도 했다. 아들은

다 죽게 생겼는데 웃는 엄마라고. 하지만 그녀는 말했다. “아들은 100% 낫는다고

생각하니 웃어지더라”고.

어머니는 상우를 휠체어에 태워 바람 쐬어 줄 때도 또래들의 하교 시간은 피했다.

혹 마음에 상처를 받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지난 5년간을 아들 옆에서

잤다. 혹 자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봐 어머니는 아들 가슴에 귀를 대고 숨 쉬는지

확인하다가 잠에 떨어졌다.

투병 틈틈이 공부해 유학길 오를 슈퍼맨

연거푸 닥쳐온 재발을 그때마다 이겨낸 상우의 생존력은 의료진까지 놀라게 만들었다.

상우 군이 이렇게 까지 호전을 보일 줄을 몰랐던 것이다. 1%의 가능성을 100%로 바꾼

상우와 가족의 의지는 ‘꼭 낫게 해 준다’는 민유홍 교수의 약속이 지켜지게 했다.

지난해 거의 정상인처럼 상태가 호전된 상우에게 민 교수는 투병기를 써보라고

권했다. 급성 림프구 백혈병 환자에게 생길 수 있는 거의 모든 합병증과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겨가며 이겨낸 상우의 경험은 다른 백혈병 환자에게 지도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 1년간 상우는 투병 생활을 회상하며 책을 썼다. 그리고 그의 책 ‘상우의

무균실 일기’는 책 속의 책 형태의 ‘백혈병 가이드북’까지 합쳐져 2편으로 출간됐다.

이제 그는 당당한 꿈을 꾼다. 곧 미국 유학길에 올라 아픈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초학문인 생물학을 공부할 예정이다. 초등학교 때 반장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그지만 병 때문에 학교는 제대로 못 다녔다. 그래도 그는 투병 틈틈이 공부해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얼마 전에는 토플 시험에서도 고득점을 받았다.

어머니는 “우스갯 소리로 그러죠, 그 동안 항암 치료 받느라 뇌세포도 많이 죽었을 텐데 어떻게 영어

점수가 이렇게 높게 나왔냐고” 그러면서 멋지고 자랑스러운 슈퍼맨 아들에게 미소를

보였다.

상우 군은 6월4일 오후 3시 세브란스병원 은명대강당에서 열리는 ‘암 환자 행복

가꾸기’ 행사 중 한 순서로 출판 기념회를 갖는다. 이 행사에는 이철 세브란스 병원장을

비롯해 유인촌 문화부장관이 참석하고 쥬얼리 등 인기 가수 공연도 펼쳐질

예정이다.

정은지 기자 jej@kormedi.com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http://kormedi.com)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Share with Kakao

댓글을 달아주세요.

귀하의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