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로 독설엔 ‘완벽남 불안’ 숨어있다

불안 잠재우기 위해 정반대의 과격한 발언?

일본 야구 대표팀의 최고 스타 스즈키 이치로. 야구 한일전 때마다 그의 독설은

큰 주목을 받는 대상이다. 최고의 스타이면서도 항상 독특한 발언과 몸짓 등으로

주목의 대상이 되는 그의 정신세계를 전문가들의 조언으로 들여다 보자.

경희의료원 정신과 박건호 교수는 이치로의 독설에 대해 “마음 한 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마음 속 생각과는 정반대의 과격한 말을 하는 반동형성(反動形成)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즉 한일전을 앞두고 긴장되고 불안해지는 마음을 그대로 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의 마음을 제어하려는 욕망이 독설로 바뀌어 나타난다는 해석이다. 지난 2006년

제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회 한일전을 앞두고 그가 뱉어낸 ‘한국이 앞으로

30년간 일본을 이길 생각을 못하도록 하겠다’는 발언은 이러한 해석에 잘 들어맞는다.

반동형성은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마음을 정반대 행동으로 풀어내는 것으로,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를 괴롭히고야 마는 남자아이의 행동에서 잘 드러난다. 반동형성은

보통 두 단계를 거친다. 처음은 받아들일 수 없는 충동을 마음 속으로 억압하는 단계며,

그 다음은 마음과는 반대되는 행동을 의식적 차원에서 표현하는 것이다.

이치로 입장에서 보자면 ‘한일전을 앞두고 긴장된다’는 자신의 속마음을 도저히

그대로 드러낼 수 없어, 얼토당토않게 ‘앞으로 30년간 절대로…’라는 발언이 튀어나오는

식이다.

일본인의 집단적 우월의식의 표현일 수도

이치로의 독설을 일본인이 한국인에 대해 갖는 우월감의 표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림대 의대 한강성심병원 정신과 서국희 교수는 “일본 사회가 갖고 있는

우월주의적 성향과 이치로 발언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다”며 “공인이 하는 말은

상당한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이치로의 발언에서 일본 사람들은 통쾌한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거친 표현과 독기 서린 말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고, 상대방을 흥분시켜 마음을 흩트려 놓는 일석이조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이 상당히 의도된 발언이며, 일본인이 한국인에 대해 하고 싶었던 말을

공인의 입을 통해 대대적으로 퍼뜨리는 효과도 있다는 해석이다.

이치로는 그의 말이나 행동만큼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 스스로가 자신의

단점으로 “타인에게도 엄하게 대하는 것”을 꼽았을 정도다. 자신에게는 물론 타인에게도

극도로 엄격한 기준을 들이댄다는 소리다.

“나 자신과의 약속 어긴 적 없고, 다른 이에게도 엄격”

야구코치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혹독한 야구 훈련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년에 노는 날이라고는 하루 이틀밖에 없었고, 매일

아버지와 함께 배팅과 수비 훈련을 했다고 한다. 연습을 게을리하면 아버지에게 혼나고

매를 맞았다고 한다.

“나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단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는 그의 말에서 외골수적

성격과 엄격함, 완벽주의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완벽주의적 성격에 대해 을지의대 을지병원 정신과 이규영 교수는 “자신에게

엄격한 강박적 인격 성향이 보이지만 이런 성향과 독설과는 꼭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며 “청소년기에 가정이나 학교에서 대인관계 기술을 제대로 된 쌓지 못한

경우 자신의 생각을 걸러내지 않고 그대로 말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일 쿠바를 꺾은 뒤 일본 대표팀의 하라 감독은 “(안타를 치고 기뻐하는 이치로의

모습을 보고) 그도 인간이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라 감독 역시 이치로에게서

평소 인간적인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는 실토이기도 하다.

4강에 나란히 진출한 한국과 일본이 결승전에서 다시 맞붙을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는 이번 대회에서 그가 자신의 어록에 또 어떤 말을 추가할지 기대된다.

▽WBC 한일전 관련 이치로 발언 일지

△“한국이 앞으로 30년간 일본을 이길 생각을 못하도록 하겠다” (2006년 3월

제1회 WBC 예선리그 한일전을 앞두고)

△“이런 결과에 만족한다면, 나는 야구를 그만둬야 한다. 오늘의 패배를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 우리들이 할 일이다.” (2006년 3월5일 WBC 아시아지역 1차

리그에서 한국에 2-3으로 진 뒤)

△“나의 야구 인생에 있어서 가장 굴욕적인 날이다. 불쾌하다. (기분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걸릴 지도 모르겠다.” (2006년 3월16일 제1회 WBC 아시아지역 2차 리그에서

한국에 1-2로 진 뒤)

△“1점 차라도 진 것은 진 것이다. 졌다는 사실에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 (2009년

3월9일 제2회 WBC 1라운드 1-2위 순위 결정전에서 한국에 0-1로 패한 뒤)

△“한국과의 맞대결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헤어진 여자 친구를 길에서 운명처럼

자주 만나는 것과 같다.” (2009년 3월17일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훈련을 마친

뒤)

    이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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