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못 믿을 건 나의 뇌?

안본 것 봤다고 하고, 기억 뒤섞고…“뇌는 컴퓨터 아냐”

최근 운동 경기에서 비디오 판독이 점점 더 보편화되고 있다. 흔히 비디오가 ‘부족한

눈’을 도와주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비디오가 도와주는 대상은 ‘인간의 부족한

뇌’인 경우가 더 많다. 뇌는 보지 않고도 봤다고 믿는 착각을 시시때때로 해내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대 정신의학교실 애런 넬슨 교수가 집필한 ‘치매 예방과 최적의 기억력(조윤커뮤니케이션

펴냄)’이

이대목동병원 신경과학교실 최경규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이 책에는 ‘기억의

7가지 착각’이 소개돼 있다.

▽ 착각 1: 틀린 정보를 만들어내는 뇌

초등학생 축구 시합에서 ‘볼이 손에 닿았네, 안 닿았네’ 라며 양쪽 선수들과

학부모, 심판이 한 덩어리가 돼 싸운다. 모두 “분명 내 눈으로 봤다”고 주장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자신의 ‘목격 사실’을 말하기에 다툼은 더

치열하다.

이런 일은 왜 발생할까. 바로 ‘뇌가 영상을 만들어내는 능력’, 즉 뇌의 암시

가능성 때문이다. 순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확히 보지 못했으면서도 “분명 손에 닿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뇌는 공이 손에 닿는 영상을 순식간에 만들어낸다. “안 닿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안 닿는 영상을 창작해 입력시킨다.

바로 뇌의 이러한 특징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운동 경기에서 카메라 판독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한 실험에서, 자동차 충돌 장면을 보여주면서 ‘자동차가 부딪혔을 때’와

‘자동차가 박살났을 때’로 단어를 살짝 바꿔 물어보니 응답자들이 추정하는 차의

주행 속도는 ‘박살났을 때’로 물었을 때 더 높았다. 이렇게 사람의 뇌는 암시만

줘도 쉽게 속는다.

‘암시에 의한 뇌의 착각’은 과거 일을 회상할 때도 작동된다. 법정 등에서 상대편

변호사가 교묘하게 질문하면 그에 맞춘 대답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에서는 1990년

에일린이란 여자가 “내 아버지가 21년 전에 8살짜리 여자아이를 강간, 살해한 장면을

본 것이 이제야 기억난다”고 증언해 아버지가 유죄 판결을 받게 했다. 그러나 그녀의

회상은 21년 전 읽은 신문 기사를 자신의 본 것처럼 기억한 것으로 드러났다.

머리에 떠오른다고 다 믿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바로 이 뇌에 ‘착각 1’ 때문이다.

▽ 착각 2: 철석 같이 믿었는데 알고 보니 잘못 기억했네

옆가게 남자와 논쟁이 붙었다. 시장통 치킨집이 폐업한다는 소식을 분명 가게에

걸린 안내문을 보고 알았는데, 옆가게 주인은 동네신문에 기사가 났다고 주장한다.

말다툼 끝에 치킨집까지 뛰어가 물었더니, 안내문을 내건 적이 없단다. 아니, 이렇게

황당할 수가.

이런 상황을 기억의 착오라 부른다. 분명 동네신문을 보고 그 소식을 알았지만

어느덧 뇌는 ‘문에 안내문을 걸려 있었지’라고 기억하는 식이다. 우리 뇌는 종종

이런 착오를 일으킨다. 다른 책이나 노래 가사에서 따온 내용을 “분명 내가 창작해냈다”고

철석 같이 믿는 것도 같은 원인 때문이다.

착오는 모든 연령대에서 일어나지만 나이가 들면서 더 자주 일어난다. 하지만

착오가 일어난다고 해서 기억에 장애가 생긴 것은 아니다.

▽ 착각 3: 분명히 함께 봤는데 왜 정반대로 기억할까

가족 모임을 두 사람이 동시에 참석하고 나중에 회상하는데 한 사람은 “그때

참 대단히 싸웠지”라고 기억하고, 다른 사람은 “그때 참 활발하게 토론했지”라고

기억한다. 너무나 다른 기억 내용에 한 사람은 자신의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닌가

해서 정신과 병원을 찾는다. 그러나 이 사람은 미치지 않았다.

함께 목격해도 기억은 다 다르다. 다른 게 오히려 정상이다. 똑 같은 장면이라도

각자의 입장, 기분, 동기, 기대치 등에 따라 다른 내용으로 기억되는 까닭이다. 뇌

연구자들은 그래서 “우리 기억은 우리의 지문처럼 각자 다르다”고 말한다. 저 사람의

기억이 나와 똑같을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사람의 뇌는 사진기나 캠코더가 아니며, 그래서 사진기나 캠코더가 필요한 것이다.

▽ 착각 4: 잊고 싶은데 왜 잊혀지지 않을까

잊으려 노력하는 기억은 더 생생히 떠오른다. 끔찍한 기억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 심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원치 않은 기억이 지속적으로 침입하는 데서

비롯된다. 나쁜 기억을 무시하려 할수록 뇌의 고집은 더 심해진다.

해결책은 굳이 잊으려 애쓰지 않는 것이다. 전문적 치료는 기억에 대한 감정적

반응을 줄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줄여 준다.

▽ 착각 5: 자꾸 잊어버린다

우리의 기억은 영어 단어 외우기와 비슷하다. 사용하지 않으면 곧 잊어버린다.

정보를 가장 잊어버리기 쉬운 때는 정보를 습득한 직후다. 단기 기억에 입력된 기억은

말 그대로 ‘단기간에’ 사라지기 쉽다. 자주 회상하는 기억은 수 십 년이 지나도

생생하지만 그렇지 않은 기억은 곧 사라진다.  

▽ 착각 6: 제대로 입력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차 열쇠를 분명히 어딘가에 놓았는데 그곳이 생각나지 않는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열쇠를 둔 곳이 기억나지 않는 것은 ‘제대로 뇌에 입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심코’ 뭔가를 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난다.

이 착각을 벗어나는 방법은? 의식적으로 적어 두고, 꼭 기억해야 하는 사항은

반복해 뇌리에 떠올리는 것이다. “밑줄 쫙” 쳐두지 않으면 뇌는 세세하게 다 기억하지

못한다.

▽ 착각 7: 분명히 알고 있는데 생각이 안 난다

분명 알았는데 생각 날 듯 날 듯 안 날 때가 있다. 이를 뇌 과학에서는 ‘가로막기’라고

부른다. 뇌에 한 부분에 분명히 입력된 기억인데도, 뇌의 다른 부분이 활성화되면서

기억의 재생을 가로막는 현상이다. 가로막기는 뇌에 기억이 확실히 저장돼 있을 때

일어난다.

기억 연구가들은 이를 ‘심술궂은 의붓자매’라 부르기도 한다. 신데렐라의 의붓언니들처럼

방해한다는 뜻이다.

뇌의 착각 7가지를 다 알고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일까? 인간의 뇌는 ‘슈퍼컴퓨터

급’이지 슈퍼컴퓨터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뇌와 컴퓨터가 할 일을 따로 나눠 놓고,

연필, 컴퓨터, 달력 등을 잘 활용하는 것이 뇌의 착각에 빠지지 않는 지름길이다.

정은지 기자 jej@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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