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혈압 관리를 위해 진료실에서 만나고 있는 한 분이 있다. 이 분의 다른 -어쩌면
더 중요한- 문제는 바로 술에 발목을 잡혀 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다양한 이유로 술을 마셔 왔고, 매일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리고
늘 엄청난 양의 술을 마시던 분이었다.
예전에는 정말 술을 즐겁게 먹고, 잘 먹고, 그것에 대한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살았지만 이제는 스스로 바꾸려 해도 벗어날 수가 없어, 스스로 "술에 발목이
잡혀 있다"고 할 만큼 답답해 하는 상태이다.
오랫동안 진료를 계속하면서 정말 다양한 방법과 긴 이야기를 통해 왜 술을 계속해서
먹는지, 왜 매일 금주를 시도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그 의지가 무너져버리는지에
대해 항상 접근해 왔다.
(신기하게도) 아직 간경화나 지방간도 없고, 혈액적인 특별한 이상도 없는 사람이다
보니 건강상의 문제를 가지고 금주를 독려하는 데에는 한계가 보였다.
그러다 보니 아래와 같은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알다시피, 나는
환자 노트에 그림을 그려 가며 진료를 한다)
바로, ‘지금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앞으로도 괜찮을까?’ 라는 식의 접근이었다.
술을 매일 마셔도, 지금+나중까지 아-무런 문제만 나타나지 않으면, 사실 병원에서
술 마시지 말라고 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하지만, 그런 게 가능할까?
금연 캠페인을 벌이는 이유, 혈압이 높은 것을 가지고 병원에 다녀야 하는 이유,
발암 물질이나 유해 물질의 함유 여부나 정도를 모두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유,
유기농 식품을 찾는 이유, 아이들에게 먹이고 입히고, 주는 것들에 조심하는 이유,
이 모든 이유는 한 가지이다.
"앞으로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뒤집어 말하면 담배를 계속 피우거나, 높은 혈압을 방치하거나, 오염된 음식을
먹거나, 아이들에게 아무 것이나 줄 때 시간이 갈수록 분명히 어떤 문제든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는 것이다.
술도 분명 그런 요소이다. 알코올이 간에 주는 부담이나 독성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고, 알코올의 남용으로 사회적 기능이 저하되는 알코올 중독도
사실 매우 큰 문제이다.
결국, 문제만 없다면 매일 술을 먹어도 되고, 금주에 실패한 자신을 탓할 필요도
없겠지만 결국 문제가 생길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제발 술을 먹지 말자는 말이다.
내 그림을 보고 설명을 들은 이 분은 또 다른 답답함을 토로했다. 어찌 보면 "술에
발목을 잡혔다"는 현상의 다른 설명이었는지도 모르겠는데,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금주하기는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나는 자기 통제를 설명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그림을 그렸다.
자기 통제란, 그림에 그려진 것처럼 한 자세를 가만-히 유지하고 있는 것과 같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서 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도 통제라면 통제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림 속의 사람이 그렇듯 뾰족한 송곳들을 일부러 세워 놓아서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송곳들에 찔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한 자세를 가만히 유지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자기 통제가 된다.
따라서 자기 통제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편안하고 완벽한 것이 아니라 본래
매우 힘들고, 부자연스러우며 부족하다는 특성이 더 크다.
이런 관점에서 자기 혼자 송곳을 세워 놓는 일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자기 통제를
이루어내는 것과 같다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원하는 곳에 송곳을 세워
놓는 것도 자기 통제를 달성하는 방법이 된다는 말이다.
이런 맥락이 나타난 현상의 한 예가 체중을 많이 줄이겠다는 결심을 한 사람들이
블로그에 자신의 사진을 적나라하게 찍어 변화된 모습을 올리는 방법이다.
온전히 자신만의 힘으로는 발목을 너무도 꽉 잡고 있는 술을 떨쳐 낼 수 없는가?
그렇다면 다이어트하며 변화된 사진을 찍어 공개하듯, 이렇게 해 보는 건 어떨까.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서, 어떻게든 술을 먹는 자리에 가지 않도록 한다. 술을
먹고 싶은 마음이 견디기 힘들게 커질 때 만날 사람과, 할 일을 몇 개 마련해 둔다.
아예 공개적으로 금주 시작을 알리고,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피드백을
받는다. 실패 시의 벌칙 또는 성공시의 보상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상의해서 함께
계획을 세운다.
이 밖에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가며 결과적인 자기 통제를 달성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자기만 아는 또 어떤 좋은 방법이 있다면, 함께 나누고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