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가 전하는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순간

‘너와 너희 모두를 위해’ 모든 것 주고 떠나

고 김수환 추기경의 주치의였던 가톨릭대의대 강남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정인식

교수는 “추기경이 작년 9월 입원했을 때 당뇨, 류마티스 관절염, 전립선 비대 등의

증상이 있는 상태였지만, 추기경은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16일 강남성모병원 안과 주천기 교수 팀은 김 추기경의 선종 두 시간 전부터 안구

적출 수술 준비를 한 뒤, 고인의 뜻을 따랐다. 주 교수는 “김 추기경이 과거 백내장을

앓았지만 각막 상태가 좋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문의 3명과 함께 준비해

놓고 있었다”며 “적출 전과 후에 기도하며 추기경의 뜻을 기렸다”고 말했다.

고인은 입원 치료를 받으면서도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았다고 의료진은 전했다.

한 의료진은 “추기경께서 ‘노환은 병명이 아니지 않느냐. 이렇게 오래 입원해도

되는 괜찮은 진단명 하나 지어 달라’는 말을 농담처럼 자주 하셨다”고 말했다.

간호 2팀장을 맡은 홍현자 수녀는 “여러 고비를 겪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힘들어 하시는 것보다 하늘나라에 가시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하늘에서

우리나라와 전세계를 위해 기도해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추기경은 선종 3주 전부터 침대에서 내려와 식사하기 힘들 정도로 상태가 나빠졌다.

추기경은 수프, 고기국물 같은 유동식(流動食)을 주로 섭취했다 (김진경 수간호사).

16일 아침 호흡기내과 김영균 교수는 추기경이 심상치 않다는 긴급 호출을 받았다.

오전 9시쯤 6010호에 도착해 엑스레이 촬영을 했다. 폐에 물이 차는 폐부종이었다.

물이 차면 숨을 쉬기 힘들어진다. 물을 빼기 위해 이뇨제를 주사했지만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혈압이 계속 떨어졌다.

김 교수는 ‘오늘 내일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눈 좀 떠

보세요.” 김 교수는 추기경의 귀에 대고 외쳤다. 추기경은 가늘게 눈을 떴다. 김

교수가 “많이 힘드시죠”라고 묻자 추기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 교수는 오후 5시쯤 다시 병실을 찾았다. 의식은 가늘게 남아 있었다. 혈중

산소 농도가 빠르게 떨어졌다. 90%→80%→70%. 94% 이상이 정상이다. 오후 6시12분

추기경은 무거운 십자가를 내려놓았다.

이날 오후 7시부터 30분 동안 각막 적출 수술이 진행된 뒤 오후 9시30분쯤 김

추기경의 유해는 명동성당으로 운구됐고, 김 추기경의 각막은 세상에 남았다.

명동성당에는 이날도 모두를 위해 봉사한 그의 일생을 말해 주듯 ‘너와 너희

모두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라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사목 표어가

나부끼고 있었다.

    권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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