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판 너무 벌려 허우적거리는 ‘핸드폰’

과도한 간접 상품선전(PPL)이 진실성 추락시켜

먹을 것이 많다고 좌판을 잔뜩 벌여 놓았다가 스스로 주체 못해 좌판을 엎는 영화라고나

할까. 제작사와 홍보사가 내건 영화 장르는 ‘스릴러’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매니저 오승민(엄태웅). 저녁마다 끊이지 않는 술자리 접대. 여배우를 키워 성공해

보겠다고 발악을 하는 그는 시종일관 사채업자로부터 치도곤을 당한다. 어떤 이유로,

얼마나 빚이 있길래 주차장에서 팬티만 입은 채 건달 사채업자에게 매 맞는지 설명이

없다. 조폭 드라마?

여배우

윤진아(이세나). 그녀에게 이제 광고 섭외가 들어와 승민의 인생 역전이 목전이다.

이 때 진아의 남자 친구 장윤호(김남길)가 그녀의 섹스 행각이 담긴 동영상을 승민의

핸드폰으로 전송해 협박한다. 인기 연예인이 섹스 동영상으로 곤욕을 당한다는 사회

고발 드라마?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다 동영상이 담긴 핸드폰을 분실하는 승민.

대형 마트에서 주임으로 일하는 정이규(박용우)가 승민의 핸드폰을 줍는다. 그는

막무가내 봉사를 요구하는 억지 손님들에 시달리는 남자다.

정이규는 핸드폰을 돌려주기 위해 승민과 통화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속에서 악마적

분노가 솟구치면서 통제할 수 없는 파국을 초래한다. 그는 지극히 소심하고 병상에

누운 홀어머니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남자다.

외형적으로

이규는 다정다감하고 대형 마트의 온갖 험한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충직한 사원이다.

하지만 차곡차곡 쌓인 심리적 상처는 ‘스타의 성 동영상 핸드폰’을 주운 뒤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그는 익명성이 보장된 전화선에 숨어 들어가 온갖 악의적인 언행을

쏟아 놓는다. 정신 질환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처지를 드러내는 고발 드라마?

인기 여배우를 통해 인생 역전을 노리는 승민은 집 안에서는 아내와 물과 기름처럼

떨떠름한 사이다. ‘사랑과 전쟁’ 스타일의 부부 클리닉 드라마?

잡탕을 끓이려고 작정했는지 다양한 장르가 군데군데 얼기설기 섞여 극이 전개되니

보는 사람은 정신이 없어진다.

화상을

당해 일그러진 얼굴과 손을 하고 있는 승민. 죽은 아내 뱃속에 있던 태아 사진을

움켜쥐고 울부짖는 승민. 라스트 장면에서 보여주는 뜬금없는 결말은 우연히 분실한

핸드폰이 일으키는 참극을 보여주는 대신 관객들에게 뜨악한 감정을 줄 수밖에 없다.

치명적인 서비스라고나 할까.

어느 개그맨의 우스갯소리 같은 표현을 빌리자면 “‘핸드폰’은 사회 고발극도

아니고 현대 인간들이 앓고 있는 정신질환의 비극을 꼬집는 드라마도 아니고 부부와

자녀간의 정을 되찾아야 한다는 홈 드라마도 아닌, 어정쩡한 소재로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요구하는 참으로 배짱 좋고 뻔뻔한 영화”다.

신생 영화사가 영화 한편 제작해 강남에 사옥을 지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면,

국내 한 대형마트의 간판을 비롯해, 공중파 방송국의 로고와 스튜디오, 우유업체

등을 과도하게 노출시키는 간접 상품 광고(PPL)의 홍수는 이 영화가 그나마 추구하려고

했던 진정성을 훼손시키는 실수를 자행하고 있다.

특정 제품을 화면에 노출시켜 주고 제작비 일부를 지원 받는 PPL이 한 컷 당 10초

이상 노출되면 이미 PPL이 아니라 TV 광고 단계로 넘어간다. 기본적인 소품 처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레디, 고!’를 외친 감독이나 영화 제작사 대표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해 입장권을 사게 만드는 1차 유인책인 포스터에 짜증이 잔뜩 묻은

주인공 얼굴을 등장시킨 것은 자충수가 될 여지도 있다. ‘13일의 금요일’이나 ‘텍사스

전기 톱 살인 사건’ 같은 사이코 성향의 살인마 공포물이 아니라면, 오만상을 찌푸린

주인공 얼굴을 포스터 전면에 내세운 것은 광고의 ABC도 모른다고 할 만하다.

아귀와 궁합이 맞지 않는 비빔밥 영화가 배짱 좋게 관객들의 호주머니를 털겠다고

다가오고 있다. 조심하시라!

끝으로 대형 마트에서 ‘소비자는 왕이다’라는 허울 아래 자본주의의 천박성을

몸소 실천하는 몰상식 덩어리 같은 ‘고객님’들 때문에 사이코패스로 치닫는 이규의

행동은 한국의 병리적 현상을 곱씹게 해주는, 이 영화 유일의 메시지다. 2월 19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137분.

추신

1. 선한 웃음이 매력인 박용우. 배우로서의 도드라짐이 없는 무색무취 연기를

언제까지 밀고 나갈 계획인지?

2. 촬영 장소로 등장하는 부평의 대형 마트. 객장에서 강아지를 잃었다고 망나니

짓을 하는 카메오 출연자는 최주봉이다. 이밖에도 스릴러를 표방한 영화에 방송국

DJ로 김구라, 결혼식 사회자로 개그맨 김종석이 등장하는 것도 옥의 티다.

3. 홍보사는 ‘핸드폰’이 2월 극장가에서 기대되는 한국 영화 1위에 뽑혔다고

선전이 대단하다.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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