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존엄사 허용 기준 필요하다

존엄사 관련 법 제정 움직임 탄력 받을 듯

법원은 10일 존엄사 관련 항소심에서도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의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제한적으로 인정했다. 

이번 사건은 환자가 사전 의료 지시서나 유서 등을 통해 명시적으로 존엄사와

관련한 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환자의 의지를 추정해 존엄사를 인정했기

때문에 법률로 환자의 생존 가능성과 환자의 자기 결정권 등의 기준을 명문화하지

않으면 앞으로 유사한 소송이 잇따를 가능성도 있다.

이런 마당에 이미 국회에서는 존엄사와 관련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어 입법 여부가 주목된다.

특히 의료계는 임종 환자에 대해 의사가 치료를 거절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존엄사에 대한 법률적 근거 마련을 촉구해 왔기 때문에 이번 판결을

통해 존엄사법 제정의 움직임이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김 할머니에 대해 ‘치료가 계속되더라도

회복 가능성이 없고 치료 역시 의학적으로 무의미하다’는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의 판단을 기준으로 삼았다. 즉, 회복 가능성과 치료 필요 여부 등에 대해

제 3자 입장인 의료기관 두 곳 이상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또한 환자가 사전에 한 의사 표시, 환자의 성격, 종교관, 가치관 등을

고려해 환자의 추정적 의사를 판단한 1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존엄사 또는 안락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써 이번 판결이 한

환자에 대한 개별 판결일 뿐 존엄사 등에 대한 일반 원칙을 정하는 판결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피고 측인 병원은 지난 1월 20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존엄사 항소심 첫 공판

때 법원이 설령 가족 측인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더라도 어떤 환자에 한해 존엄사를

인정할지 일반적인 기준을 세워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이에 재판부는 당시 “피고 측이 일반적인 기준을 세워 달라고 하는데 우리 사법제도상

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한국 보건의료연구원 허대석 원장은 “수 십년 동안 기준을 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독일이나 일본 역시 아직까지 법적으로 규정된 것이 없고 판례나 자율적인 윤리

규범에 맞춰 존엄사 인정 여부를 정하고 있다”면서 “이 문제는 기술적인 면을 넘어선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에 한 두 사람의 의견으로 존엄사 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1월 12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존엄사 관련 1심 판결이 식물인간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도록 허용한 뒤, 존엄사 허용 법안 입법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 5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의 신상진 의원(한나라당)은 회복 가능성이 없고

기대 여명이 짧은 환자의 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존엄사법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신 의원은 존엄사 적용 범위를 2인 이상의 의사에 의해 말기 상태 진단을 받은

환자로 의학적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고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라고 한정하면서 확대해석은

금물이라고 밝혔다.

이 법률에 따르면 존엄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환자의 의사가 적혀 있는 사전

의료 지시서에 본인의 확인서명과 함께 의사와의 상담 내용 등이 포함되어야 하며

△존엄사 의사 표시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국가의료윤리심의위원회와 각 기관의

의료윤리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존엄사 관련법이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환자는 이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철회 의사를

언제든지 밝힐 수 있다.

그러나 존엄사와 관련된 국회 발의는 그 전에도 여러 번 있었지만 입법은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1, 2심에서 사법 사상 처음으로 존엄사 허용 판결이 나왔고 작년 10월

국립암센터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87.5%가 연명 치료가 의미가 없을 때 존엄사에 찬성하는

등 여론조사에서도 존엄사 허용에 긍정적인 반응이 나타나 향후 입법 여부가 주목된다.

가톨릭대의대 인문사회과학교실 구인회 교수는 “이렇게 기준을 정하자는 움직임은

필요하지만 존엄사를 인정하는 환자 범위를 회복 가능성이 없고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에 한정하더라도 기대 여명에 대해서는 의료진에 따라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는

등 논란이 많다”면서 “회복 가능성과 치료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준을 정하는

것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대석 원장 역시 “법적으로 명문화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존엄사와 관련된

논란은 용어에서부터 통일되지 않고 사용되는 등 존엄사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판단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며 “누구나 인정하는 선과 같은 최소한의 기준부터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병준 기자 riwoo@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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