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뇌사냐, 심장사냐…‘죽음의 정의’ 논쟁

존엄사 재판 계기로 보는 죽음의 의미

국내 최초인 존엄사 재판과 관련해 생명 논쟁이 뜨겁다. 존엄사 허용 여부에 빠질

수 없는 것이 ‘과연 무엇을 죽음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다. 과거에는 숨이 멈추는

것을 죽음으로 봤지만 의학이 발전하면서 인공호흡기처럼 생명을 강제로 연장시킬

수 있는 의료 기구가 나오면서 죽음의 기준을 정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죽음에 대한 전통적 정의 중 하나인 ‘심폐기능설’은 심장 박동과 호흡운동 및

인체의 각종 반사 기능이 영구적으로 정지한 상태를 죽음이라고 본다.

서울대 법의학과 이윤성 교수는 “예전에는 의학적 죽음의 기준을 호흡과 심장이

멈추는 것으로 삼았고 청진기나 심전도기 등의 기계가 나오면서 더 안전하게 죽음을

진단할 수 있었다”며 “그런데 기능이 멈춘 심장과 폐를 다시 작동시키는 심폐소생술이

발달하면서 호흡과 심장이 멈춘다고 완전히 사망했다고 말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인공 심폐기의 발달로 의식은 없어도 심폐 기능을 연장시킬 수 있게 되면서,

전체 뇌 기능이 완전히 정지돼 회복 불능이 된 상태를 진짜 죽음으로 봐야 한다는

‘뇌사설’이 설득력을 얻게 됐다.

뇌 질환이나 교통사고 등으로 뇌의 대부분 기능이 파괴되면서 뇌사 상태에 이르게

되면 호흡 정지와 혈액 순환의 장애가 나타난다. 그러나 인공 호흡기를 부착해 산소를

공급하면 심장 박동은 멈추지 않는다. 뇌사 상태에 빠진 환자는 인공 호흡기 같은

연명 치료에 의지해 일정 기간 동안 심폐 기능을 유지할 수 있지만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고 연명 장치를 제거하면 반드시 심장사가 발생해 사망한다. 연명 장치를

제거하지 않아도 2주일 이내에 심장사 한다.

지제근 서울대 병리학과 명예교수는 저서 ‘알기 쉬운 의학용어 풀이집’에서

육체적인 죽음을 “모든 생체 기능의 영구적 정지, 즉 △전체 뇌 기능 △호흡계의

자발 기능 △순환계의 자발 기능이 비가역적으로 정지되었음을 말한다”고 정의했다.

실제 임상에서는 △뇌파의 활동을 점검하는 뇌파도(EEG, electroencephalogram)

검사 △뇌간의 생존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청각 유도 과정 △더 이상 뇌로 피가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검사 등을 통해 모두 부정적인 결과가 나와야 죽음으로

판정한다.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느냐는 국가마다 다르지만 심장 이식 등 장기 이식 수술을

위해서는 뇌사 인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는 국가가 늘어나는

추세다.

1968년에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제22회 세계의학협회 총회(World Medical Assembly)에서

채택된 ‘시드니 선언’을 통해 처음으로 뇌사가 죽음으로 인정됐다.

같은 해 미국은 뇌사 정의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심장이나 뇌 어느 하나의 기능이

정지됐을 때를 죽음이라고 정했다. 미국 외에도 프랑스, 일본, 대만 등도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했다.

한국도 1983년 대한의학협회에 구성된 ‘죽음의 정의 특별위원회’가 마련한 죽음의

정의 및 뇌사 판정 기준을 통해 사망을 ‘심장 및 호흡 기능과 뇌 반사의 불가역적

정지 또는 소실’로 보면서 뇌사를 사망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법률적으로 뇌사가 죽음으로 완전히 인정된 것은 아니다. 2000년 장기

기증자에 한해서 뇌사가 죽음으로 인정됐다. 따라서 뇌사자라도 장기 기증을 하지

않으면서 인공호흡기를 떼면 불법이 된다.

이윤성 교수는 “뇌사를 공식적인 죽음의 정의로 채택한 나라에 비한다면 한국은

뇌사 자체는 죽음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장기 기증을 허용하는 어중간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최초로 열린 존엄사 재판이 논란이 되는 이유 중 하나는 환자 김 모 씨가

뇌사 상태로 진행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식물인간 상태이기 때문이다. 뇌의 모든

기능이 영구히 정지한 뇌사와 달리 식물인간은 뇌의 기능 중 인지 능력, 움직임,

감정 등을 담당하는 부분은 죽고,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적인 부위인 숨골 같은 부위는

살아 있는 상태이므로 죽음으로 보지 않는다.

이밖에 죽음을 정의하는 기준에는 ‘세포사설’도 있다. 생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포의 기능이 완전히 상실될 때를 죽음으로 규정하는 세포사설은 인간의 몸이 완전히

썩은 후에나 가능하므로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힘들다.

이윤성 교수는 “많은 의사들이 죽음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려고 애써

왔지만 현재로서는 국가나 전문가들마다 의견이 다르다”며 “연명 치료 기술 발전을

통해 뇌사나 식물인간 상태 환자의 여명이 늘어나고 특히 한국의 경우 장기 기증

필요에 따라 뇌사를 경우에 따라 죽음으로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모순된 상황에

있기 때문에 죽음의 정의에 대한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소수정 기자 crystalso@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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