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 성격이 어떻게 딱 4가지?”

일본서 불붙은 혈액형 성격론, 현해탄 또 건널라

2004~2005년 혈액형 성격론이 한국에서 극성을 부렸다. 2004년 일본 책을 베낀

듯한 ‘B형 남자와 연애하기’ ‘혈액형 사랑학’ ‘내 혈액형에 꼭 맞는 다이어트’

등의 책들이 나오더니, 2005년에는 영화 ‘B형 남자친구’, 그리고 가수 김현정의

히트곡 ‘B형 남자’까지 나왔다.

일본이 지금 다시 혈액형 증후군에 빠졌다. 일본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는 한국에서

다시 혈액형 신드롬이 유행할 수 있을까.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일본에서 베스트 셀러가 됐다는 책이 번역돼

나오고 이를 매스컴이 소개하면서 혈액형별 성격론이 다시 유행할 수 있다”며 “내용이

맞건 안 맞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만 믿게 하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혈액형별 성격론이 유독 한국이나 일본에서만 유행할 뿐 구미에서는 아무 영향도

못 미치는 이유를 황 교수는 “자아정체성 확립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미국 같은 서구 사회에서는 자신을 스스로 디자인하면서 정체성을 찾지만, ‘다른

사람이 보는 나’가 기준이 되는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외적 준거에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기 쉽다는 설명이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권준수 교수도 혈액형별 성격론이 득세하는 이유를 “재미있고

간단 명확하기 때문”으로 진단했다. 사람은 불명확성을 두려워하는데, 모든 사람의

성격이 딱 네 가지로 나뉜다니 구분하기도 좋고, 상대를 파악하기도 쉽다며 믿게

된다는 해석이다.

권 교수는 “사주팔자나 점처럼 태어난 날 등 명확한 자료를 근거로 운명처럼

모호한 것을 추정할 수 있다는 데에 한국 사람은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성격과는 아무 상관없고, 질병과는 관계있다

삼성서울병원 진단의학과 김대원 교수는 자신의 혈액형으로 ‘장난’을 친다.

진중하고 긍정적 성격이란 평가를 받는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내 혈액형을 맞춰

보라”고 묻는다. O형이라는 대답이 절반, A형 대답이 절반쯤 나온다. 그러나 실제

그의 혈액형은 B형이다.

김 교수는 “B형이면 CEO형, O형이면 대통령형이라는데, 혈액형과 성격의 연관성에

대해선 연구 논문도 없고 과학적 근거도 없다”며 “혈액형이 인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일본의 현상은 인간차별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서강대 심리학과 조긍호 교수는 “사람의 성격에는 여러 요소가 조금씩 섞여 있기

때문에 혈액형별 성격론을 들이대면 누구든 다 조금씩은 들어맞는다고 느끼게 된다”며

“완전히 내향적인 사람도, 100% 외향적인 사람도 없듯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는

가설은 아무 근거도 없다”고 말했다.

대한혈액학회 이사인 가톨릭대 성모병원 혈액내과 이종욱 교수는 “어떻게 전

지구인의 성격이 A, B, O, AB 네 가지밖에 없겠냐”며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혈액형별

성격론을 믿고 있는 일본인과 한국인들은 어처구니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혈액형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ABO형 외에도 MN식, Rh식, P식, I식 등 종류가

많다. 이 중 ABO와 Rh식 혈액형이 널리 알려진 것은 수혈 때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네 가지 혈액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한 방어를 균형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O형은 바이러스 질환에 강하고, A형과 B형은

세균 질병에 더 강하기 때문에 두 가지 질병을 모두 방어하기 위해 인류는 4가지

혈액형을 골고루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콜레라의 경우 O형이 상대적으로 쉽게 걸리며 AB형은 저항력이 가장 강하다. 반면

O형은 콜레라에 약해도 말라리아나 암에는 덜 걸리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소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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