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모이면 다툼’ 이유 있다

뇌 본능 알면 가족다툼 피할 수 있어

“우리 집은 왜 모이기만 하면 싸워?” 명절 때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꽉 막힌 길을 뚫고 민족대이동을 한 결과가 겨우 말다툼이라니 한숨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러나 인간의 뇌에는 ‘가족끼리 만나면 싸우기 쉬운’ 이유가 숨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조지아 귀넷 공대 스티븐 플라텍 박사는 남자 4명, 여자 7명으로 이뤄진

피실험자들에게 자신, 가족, 친척, 타인의 여러 사진을 보여 주면서 뇌 활동 양상을

관찰했다.

그 결과, 자신 또는 친척의 사진을 볼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와, 낯선 사람을

볼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는 전혀 달랐다. 가족 또는 친척의 사진을 볼 때는 뇌의

여러 부위 중에서도 ‘자신’ ‘반성’과 관계되는 부위가 활성화됐다. 반면 타인의

사진을 볼 때는 행동을 결정하는 부위가 활성화됐다.

가족-타인 구별의 진화론적 이유

이런 결과에 대해 플라텍 박사는 “가족 또는 친척을 볼 때 쓰는 뇌 부위가 자신을

반성할 때 쓰는 부위와 같다는 것은 가족을 남이 아닌 나의 일부로 본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나’를 보듯이 가족을 보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모이기만 하면 싸워’가

되기 쉽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대학 동창이 취직을 못하거나, 또는 친구가 배우자를 잘못 골라 1년도

안돼 이혼했을 때 우리는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다. ‘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똑같은 상황이 내 동생에게 일어나면 우리는 상황을 멀찌감치 바라볼 수

없고, 내가 당한 듯 분노를 느끼기 쉽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은 온 가족이 모일 때 다툼이 일어나기 쉬운 바탕이 된다.

우선 가족은 다른 가족을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터놓고 말하기 쉽다.

“넌 왜 취직을 못하니?” “그러다 평생 혼자 살겠다” 등등.

듣는 사람은 또 듣는 사람대로 “가족이 어떻게 저런 말을!”이라며 분개하기

쉽다.

플라텍 박사의 논문은 ‘뉴로사이콜로지아(Neuropsychologia)’ 저널

최신호에 발표됐다.

가족이 나에게 ‘아픈 말’ 하는 까닭은?

이화여대 에코과학연구소의 진화심리학자 진중환 연구원은 “플라텍 박사의 이번

연구 결과는 가족, 친척의 일을 자신의 일로 인식하면서 지나치게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이유를 알게 해 준다”고 말했다.

가족과 타인을 구별하는 뇌의 본성은 진화론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가족 구성원에게

친근함을 느낄지언정 성욕을 느껴서는 안되기 때문에 뇌는 가족과 타인을 완전히

다른 대상으로 인식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명절 가족 다툼’ 현상에 대해 서울대병원 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똑 같은

비판이라도 친구가 하면 웃어 넘길 수 있지만 가족이 하면 쉽게 토라지거나 화가

나는 이유는 무의식에 잠재해 있던 경험을 순간적으로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감정 처리를 담당하는 뇌의 가장자리계 부위는 무의식의 영역이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경험과 감정은 무의식적인 것과 의식적인 것으로 구분되는데, 특히 어릴 때

가족 관계에서 형성되는 여러 기억들이 무의식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친척들이 모였을 때 자신을 자극하는 말이나 행동이 나오면 사소한 것일지라도

무의식에 잠재하고 있던 ‘자기애’가 증폭되면서 화로 터져 나오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명절 가족 다툼’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서로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쉽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가족의 말을 들으면 된다고 권 교수는 조언했다.

즉 “아, 형은 내 상황을 자기 일처럼 느끼기 때문에 저런 소리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면 감정 싸움으로 번지기보다는 서로를 이해하는 대화 수준에서 마무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로 사랑하기에, 마치 내 일 같기에 서로에게 던지는 말이 가족 다툼의 원인이

된다. 듣기에 따끔한 말이라도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관심의 다른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번 설날은 ‘가족 싸움 없는 명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은지 기자
    정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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