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쓰지 않는 위 수술의 대가

세계적 위암 전문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노성훈 교수

연세대학교

의학과 학사(1978), 석사(1982)
고려대학교 의학과 박사(2002)
1987-1991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외과 전임강사
1991-1993 미국 국립암연구소, 일본 가나자와

대학 연수
2001-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외과 교수
2006-현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올해의 교수상 (2001)
유한의학상

우수상 수상 (2002)
한국 로슈 종양학술상 (2002)
 

연세대 의대 노성훈 교수는 1996년 11월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위암수술 비디오

학회에서 2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암 부위를 잘라내고 난 뒤 출혈 부위를 지져 지혈하는

목적으로 쓰는 전기소작기로 수술 전 과정을 해결하는 새 수술법에 관해서였다.

그는 뜻밖에도 일본의 마루야마, 아까지나 등 이 분야의 세계적 대가들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도쿄 대 전임강사였던 세토는 “한 달 뒤 당신에게 수술을

배울 수 있냐”고 물어왔다.

노 교수는 기분은 좋았지만 “일본인은 역시 칭찬을 잘 한다”며 지나쳤다. 당시

위암 분야는 일본이 독보적이어서 노 교수를 비롯한 한국 의사들이 일본에 연수하러

갈 때였다.  

하지만 그해 12월 노 교수가 당황한 일이 벌어졌다. 세토가 ‘정말’ ‘한 수

가르침’을 청하며 찾아왔기 때문. 세토는 현재 도쿄 대의 주임교수다.

 

한 수 가르침을 청하며 찾아온 도쿄 의대 교수

일본 학계는 이후 꾸준히 ‘사절단’을 보내고 있으며 2000년대 들어 미국과 중국

등에서도 문하생을 자처한 의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한 해 30~40명의 외국인 의사가

제자로 등록하며 이들 가운데에서는 쟁쟁한 ‘중원의 고수(高手)들’도 적지 않다.

노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외국인 의사가 한국인 동료와 함께 나란히 자리에 앉아 스승과

책상을 맞대고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노 교수는 아침 6시 반~7시 출근해서 e메일부터 열어보는데, 가르침을 받고 ‘하산’한

제자들이 보내온 안부편지도 적지 않다. 요 며칠 사이에는 이런 편지가 왔다.

“노 교수의 수술 모습을 직접 보고 배울 수 있어 너무나 기뻤다.”
(미국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 비비안 스트롱)

“수술을 직접 보고 소화기 암의 수술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다. 모든 일본 의사가

교수의 수술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즈오카 암센터 마사야 신보)

“우리들은 귀하의 위대한 수술에 놀랐고 이것을 배울 수 있어 매우 만족한다.”
(일본

도쿄의치대 가추유키 고지마)

노 교수는 한 해 600여 명을 수술해 이 부문 세계 최다를 기록하고 있다. 수술

사망률 0.9%, 합병증 15%, 5년 생존율 64.8%라는 유례없는 치료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에는 암세포가 간이나 복만에 전이된 환자에게 항암요법과 수술을 병행하는 방법으로

생존율을 높인 결과를 ‘종양학 연보’에 발표,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한 해 600여명 수술, 세계 최다 기록

노 교수는 한동안 ‘3무(三無)의 의사’로 불렸다.

첫째, 수술 전과정을 전기소작기로 진행하기 때문에 메스(수술용 칼)를 쓰지 않는다.

둘째, 환자들은 수술 뒤 콧줄을 달지 않는다. 위암 수술 환자들은 수술 부위의

분비액과 가스가 빠져나가도록 코로 넣어 수술 부위까지 연결되는 콧줄을 달아야

하는데 환자들에게는 고통스럽다. 노 교수는 2002년부터 수술 때 주사로 가스를 간단히

빼내어 콧줄을 달지 않아도 된다.

셋째, 노 교수는 수술 부위에 염증이 생겼을 때 고름을 배출하려고 환자에 배에

넣는 심지도 쓰지 않는다.

노 교수는 환자들에게 무엇이 불편한지를 묻고 또 물어 이러한 수술법을 개발해냈다.

“일부 원로교수들은 위암 수술법은 오랜 기간 검증을 거쳐 정착됐기 때문에 20년

전, 10년 전이나 똑같고 지금도 똑같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리일

수는 없습니다. 의사의 관점에서는 정착됐다고 할지 몰라도 환자나 보호자의 눈으로

보면 고칠 게 많습니다.”

노 교수는 수술시간을 기존 4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였고 이 때문에 출혈이 적어

환자의 5%만이 수혈을 받는다. 수술 시간이 짧아 마취제를 덜 쓰게 되고 체액 증발과

신체적 스트레스도 적어 환자의 후유증이 적다. 일본 가고시마대병원 아이코 박사는

노 교수의 환자가 수술 다음날 걸어 다니고 1주일 만에 퇴원하는 것을 보고 “믿을

수 없는 일을 보고 있다. 기적이다”고 경탄하고 초청강연을 거듭 요청했다.

노 교수는 2004년 안식년을 맞아 미국 뉴욕주립대에 연수를 갔을 때 미국의 의료환경을

접하며 “환자에게 더욱 더 진심으로 다가가자”고 다짐했다. 이 다짐의 결과여서일까?

최근에는 3무에다 두 가지를 추가했다. 이제 5무(五無)의 의사라고나 할까.

 

수술 때 다섯 가지가 없는 5무(五無)의사

노 교수는 2005년부터 수술 부위를 25㎝에서 15㎝로 줄여 배꼽 밑 수술자국이

없다. 수술 부위가 적으면 장 유착을 비롯한 합병증이 발병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또 지금까지 위장을 수술할 때에는 위장 윗부분의 혈관을 잘라내고 실로 꿰매는

작업을 했는데, 올해부터는 이 부분도 전기소작기로 잘라내 노 교수의 수술에는 실이

없다.

그렇다고 원칙을 파괴하는 ‘혁명가적 의사’는 아니다. 그는 오히려 원칙에 충실하다.

그 원칙은 △암 부위를 만지면서 수술해서는 안 된다 △수술은 환자에게 엄청난 신체적

스트레스를 가하므로 가급적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수술 뒤 환자의

삶의 질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세 가지 ‘종양 수술의 원칙’이다.

노 교수는 한가한 시간이 없다. 새벽별을 보고 출근해서 분초를 다투는 생활을

하다 오후 10시에 퇴근한다. 그는 매주 3일 동안 새 환자 10여 명을 포함해 90명씩

진료한다. 1주일에 평균 12~13명을 수술한다. 식사도 진료와 수술 시간 틈틈이 간식으로

때우는 습관이 몸에 붙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한 해 20편의 논문을 쓴다.  

그는 올해 3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원장을 맡아 더 바빠졌다. 매주 회의가

줄을 잇고 있으며 심포지엄과 학회 준비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 때문에 애주가인데다 주력도 ‘말술’이지만 마실 시간이 거의 없다. 국제학회에서

가끔씩 동반자들을 KO시킬 따름이다. 요즘은 병원 행정업무나 진료에 지장이 있을까봐

술자리가 있어도 ‘2차’는 가지 않는 원칙을 지킨다.

노 교수는 환자나 제자 모두에게 시원시원하고 친절하게 대해서 ‘서민 의사’로

보이지만, 명문가 집안 출신이다.

선친은 장항제련소 소장을 지냈고 국내 금속산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노명식

박사다. 처가는 유명한 의학자 집안이다. 장인은 혼자서 첫 의학백과사전을 만든

고(故) 이우주 전 연세대 총장이고 처남은 연세대 신경과 이병인, 산부인과 이병석

교수다.

노 교수는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면 풀이 죽는다. 특히 진행성 위암 환자에게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배를 열었다가 퍼진 암세포를 발견하고 다시 닫아야 할 때에는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15~20년 전만 하더라도 수술 환자의 20~30%가 그런 경우였지만 지금은

진단법의 발달로 5~10%로 줄어든 것에 위안을 삼는다.

노 교수는 “위암은 아주 늦게 발견되지만 않았다면 완치가 가능한 암”이라며

“서울대병원 양한광 교수를 비롯해서 수많은 의학자들의 노력으로 한국의 위암 치료성적은

세계 최고에 올랐기에 병원 치료를 포기하고 민간요법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성주 기자 stein33@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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