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인정따라 유사 소송 봇물 예상

안락사법 제정 논의, 호스피스 산업도 활발해질 듯

존엄사가 처음으로 허용됨에 따라 앞으로 식물인간 상태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연명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소송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동안 불법이었던

존엄사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고 안락사법 제정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이번 판결은 1심 판결이지만 처음으로 존엄사를 허용한 것으로, 이에 앞서 지난

6월 환자 가족들이 낸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것과 정반대의

결과다.

당시 가처분 신청 결정에서 재판부는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죽음을 맞을

권리인 존엄사(尊嚴死)와 소극적 안락사는 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살인 혹은 살인방조로

볼 수 있다며 병원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본안 소송 선고에서 재판부는 환자가 고령이고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는 데다 여명은 갈수록 줄어든다는 점, 평소 환자가 존엄사할 뜻을 가족들에게

비쳤다는 점을 들어 환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양측이 재판부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환자가 처음 입원한 8개월 전에는 회복

가능성은 13%였으나 현재는 0%에 가깝고 당시 여명은 11~29개월 이었으나 현재 여명은

3~4개월로 줄었다.

법원의 이번 판결을 위해 이례적으로 현장검증을 하고 증인 심문을 다시 했으며

선고기일을 2번이나 연기하는 등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재판부가 환자 가족 측의 청구를 받아들인 것은 이들이 보호받고자 하는 인간

존엄과 가치권, 존엄사권, 환자의 자기결정권, 자연사할 권리 등이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의해 침해받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은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이 충돌하지만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유지할 때의 이익보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을 때의 이익이 크므로 이런 경우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한다”고 밝혔다.

자기결정권의 근거는 헌법 제10조의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서 도출된다. 인간은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수행하는 자율성을 향유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무의미한

연명행위를 지속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신념과 삶의 질의 유지를 위해 자연사에

이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에 따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환자들의 소송이 이어지는 한편 존엄사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고 안락사법 제정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안락사는 △연명할 수 있지만 인위적인 방법을 통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 △소생 가능성이 작은 환자를 방치해 사망하게 하는 소극적 안락사 △소생

불가능한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로 분류한다. 일반적으로

존엄사와 소극적 안락사는 동의어로 사용된다. 환자에 직접 치사량의 독극물을 주사하는

등의 행위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와는 다르다.

여론은 존엄사에 대해 찬성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국립암센터가 지난 9월 만20~69세

성인 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품위있는 죽음에 대한 대국민 인식 조사’를 진행한

결과 87.5%가 존엄사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

의료계도 존엄사와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01년 확정된

‘의사윤리지침’에서는 안락사 및 의사조력 자살을 금지하고 있으나 “의사가 회생

불가능한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무익하고 무용한 치료를 보류하거나 철회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나와 있다.

지난달 2일 존엄사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서울대 의대 이윤성 교수는 “누구나

임종을 맞을 땐 안락한 환경에서 가족에 둘러싸여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자 한다”며

“기계 속에서 외로이 맞이하는 죽음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피력했다.

이에 앞서 민주당 전현희 의원이 주최한 존엄사 심포지움에서 국립암센터 윤영호

기획실장은 “말기 환자들과 가족들에게 생명 연장에 대한 의학의 한계를 이해시키는

한편, 최선의 선택에 대한 객관적 설명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주장한 바 있다.

현행법은 안락사 허용 여부나 그 요건, 방법 등에 대해 규정하고 있지 않다. 안락사

논쟁을 촉발시킨 사건은 2004년의 ‘보라매 병원 사건’이다. 보라매 병원 사건 판결에서

대법원은 병원에 입원해 있던 뇌출혈 환자를 퇴원시켜 숨지게 한 가족에게는 살인죄,

퇴원시킨 의사 2명에게는 살인방조죄로 유죄를 선고했다.

지난 1월 광주지법 제 2형사부는 식물인간인 아들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 숨지게

해 살인죄로 기소된 윤 모 씨(53)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당시 재판부는 “윤씨가 20여년간 아들을 간호해 온 점, 회생가능성이 거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아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점 등을

참작해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일부 국가에서는 안락사를 어느 정도 허용하는 추세다.

네덜란드는 2002년 4월 세계 최초로 안락사법을 시행했고, 독일에서는 소극적

안락사를 ‘죽음에 있어서의 도움’이라 규정하고 이런 도움은 환자의 의지에 따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은 주에 따라 다르다. 오리건 주는 1994년과 1997년 두 차례의 주민 투표를

거쳐 미국 최초로 ‘품위 있는 죽음에 관한 법(Death with Dignity Act)’을 제정했다.

판례법 위주의 미국법에서는 1983년 낸시 크루젠의 판결을 관습적으로 따르고

있다. 이 판결에서 미 연방법원은 사전에 환자가 자신의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명확한

의사표시를 했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경우 치료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명확한 의사표시 있으면 존엄사 인정하는 것이다.

▽소송 일지

△2008년 2월 18일 김 모(여·75) 할머니, 폐렴 여부 확인 위해 기관지 내시경

검사 중 식물인간 상태에 빠짐

△5월 9일 가족, 서울서부지법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지 가처분 신청

△5월 10일 가족, 존엄사 관련법이 없는 것은 헌법 위배라는 헌법소원 제기

△6월 2일 가족, 병원을 상대로 서울서부지법에 민사소송 제기

△7월 10일 서울서부지법 민사 21부(부장판사 김건수) 가족의 연명치료 중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

△9월 1일 서울 서부지방법원 민사 12부(부장판사 김천수), 병원 현장 검증

△10월 8일 재판부,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에 환자 신체에 대한 감정을 의뢰

△11월 6일 공개 변론

△11월 28일 1심 선고공판

 

    소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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