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자살을 하는가?

흔히들

죽을 각오로 살면 되는데 왜 자살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자살을

시도하는 환자들을 보면서 깨달은 것은 막상 자살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느

한계에 도달하면 죽음 이외에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서 인지하게 되는 것은 대개 초등학교 때부터다. 그 전에는

친척들의 장례식에 가도 아무런 느낌이 없지만 일정 나이가 되면 장례식의 의미를

알게 된다. 죽게 되면 다시는 그 사람을 볼 수 없고, 다시 이야기 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죽음을 피하고 싶고 두려워하게 된다. 길거리를 가다가 차에

치어 죽어 있는 강아지라도 보면 피하게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죽은 동물을 보면

외우어야 하는 주문, 실행해야 하는 특별한 몸짓 같은 것을 지니게 된다. 

아이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자연스럽게 부모의 사랑, 친구들과의 재미

있는 일상 등으로 극복한다. 하지만 어떤 점에 있어서 모든 인간은 죽음이라는

엄청난 무게를 등에 짊어지고 살아가면서 그렇지 않은 척 자신이 자신을 속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신은 절대로 죽지 않고 현재의 삶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신비로운

믿음을 지니고 있다. 교통사고로 주위에서 누군가 죽으면 깜짝 놀라면서도 자신에게는

절대로 그런 사고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여긴다. 오랜 동안 연락이 없어 잘 살겠거니

여기고 있던 친구가 한참 전에 암에 걸려서 이미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깜짝 놀라지만 나는 피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평생을 살다보면 한번쯤

감기에 걸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내가 언젠가 죽는 것이 당연한데 죽음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죽음을 원하기 전에 죽음이 나를 찾아올 리는 없다고 자만한다. 영원히

살 것처럼 하루 하루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면서 살아간다. 결국 언젠가 죽을

목숨인데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는 것은 어찌 보면 망상에 가까운 비현실적인

생각이다. 이러한 망상이 깨어질 때 사람들은 죽음을 앞당기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하게 된다. 

즐거운 일은 하나도 없고, 고통만이 이어질 때 ‘어차피 한번 죽을 텐데…’라고

생각해 조금 일찍 죽는 것을 우리는 자살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자살은 사실 과장된

말이다. 

만약에 인간이 영원히 살아가는 존재인데 그 목숨을 끊는다면  자살이라는

표현이 맞지만, 우리가 자살이라고 일컫는 것들은 사실 죽음을 10년, 20년, 30년,

어떤 경우에는 50년 쯤 앞당기는 것이다. 앞으로 더 살아갈 생의 시간 중 죽고 싶도록

괴로운 순간이 즐거운 순간을 압도한다고 생각될 때 죽음을 앞당기고 싶어 한다. 살면

살수록 그 때 죽었어야 했지 하고 후회만 하게 된다고 판단될 때 죽음을 앞당기고

싶어 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의미로 쓰는 스스로 자(自), 자살(自殺)이라는

단어 대신 스스로 죽음을 앞당긴다는 의미로 빠를 조(早), 조살(早殺) 이라고 해야

적절할 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죽음을 망각하고 하루 하루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이렇게 위대한 일이 매일 매일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가 어려서부터

아버지,어머니,형제들,친구들에게 받은 사랑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죽음이 원치 않는 순간에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적 망상을 우리에게 심어주고자,

아버지,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우리를 수도 없이 껴안고, 씻겨 주고, 칭찬해주고,

바라봐주었던 것이다. 우리 안에 자리잡은 그들의 사랑 덕분에 우리는 최악의 순간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 순간을 넘기면 언젠가는 찾아올, 남아 있는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다시 죽음을 미루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언젠가 다가오는 죽음을 무시하고 하루 하루 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소한 일상의 즐거움이다. 

좋아하는 요리를 한번 더 먹고 싶은 욕심, 사랑하는 이를 한번 더 보고 싶다는

바램, 새로 나온 재미있는 영화를 주말에 보고 싶다는 욕망과 같은 사소한 즐거움이

죽음을 무시하게 만든다. 매일 똑 같은 세상인 것 같지만, 자고 일어나면 뭔가

조금씩 바뀌어 있다는 것을 느낄 때의 신기함. 이런 자그마한 것들이 죽음을

자꾸 뒤로 미루도록 한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에 벌어놓은 돈이 아까워서, 지위가

아쉬워서, 복수해야 할 대상이 남아 있어서 죽음을 미루는 이들은 없다. 우리가

인생에서 이루어야 할 목표라고 생각하는 거창한 것들은 막상 죽음을 앞당기고 싶을

때 우리를 막지 못한다.

재벌의 딸, 대학교 총장, 유명한 배우도 자살을 한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난한 사람이건 부자건 상관없이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인생이 주는 즐거움이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질 때, 어제까지

나를 즐겁게 해주던 것들이 아무 의미도 없이 느껴질 때 죽음을 앞당기고 싶어

한다. 더구나 앞으로도 괴로움만이 이어지고 즐거움이 없다고 느끼면 죽음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지게 된다.

따라서 한번 죽음의 늪에 빠지게 되면 아무리 누가 말려도 소용이 없다.

한번 죽음을 결심한 이를 말로 설득해서 돌이키기는 어렵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도록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 사랑하고 아끼는 누군가가 죽고

싶다고 이야기할 때는 바로 옆에서 죽음을 앞당기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가능하다면 죽고 싶어도 죽음을 시도할 도구가 없는 곳에서 며칠을 보내게

해야 한다. 어떤 경우는 병원이 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병원에서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며칠을 보내다 보면 대부분 환자들은 배고플 때 밥을 먹으면 기분이

좋다는 것, 목마를 때 물을 마시면 시원하다는 것, 하루가 끝날 때 샤워를 하면 상쾌하다는

것, 마음이 허전할 때 누군가의 손을 잡으면  마음이 따스해진다는 것을

조금씩 다시 느끼게 된다. 그러면 죽음을 뒤로 미루게 된다.

일상의 즐거움. 그것이 자살을 막는 힘이다. 일상의 즐거움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을 잊고 삶을 영위하게 한다.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축복은

부도, 명예도 아닌 일상의 반복되는 자그마한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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