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거리 확대판’ 된 마라톤Ⅰ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질주 … ‘끈기로 막판 뒤집기’ 옛말

현대 마라톤에서 승부는 초반 5km에서 결정된다. ‘마라톤은 후반 30km 이후에서

결정 난다’는 말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현대 마라톤은 인정사정없다. 비정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스피드 전쟁뿐이다. 코스는 변수가 못된다. 세계 메이저 대회일수록

평탄한 코스 개발에 온갖 노력을 다한다. 대부분 코스의 최고 최저 고도차가 10m를

넘지 않는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오르막이 사라진 것이다.

날씨도 기록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저마다 마라톤 적정 기온(섭씨 9도

안팎)에 맞춰 출발한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아침 일찍 6시에 출발하는 대회도 있다.

한마디로 마라톤의 3대 변수인 ‘코스-날씨-선수 컨디션’이 고정 ‘항수’가

돼 버렸다. 이제 변수는 오로지 스피드뿐이다. 게브르셀라시에처럼 출발부터 결승선까지

모든 구간을 경기장트랙에서 1만m 달리듯이 달려야 한다.

한국 마라톤의 자존심 ‘봉달이’ 이봉주(38·삼성전자)는 지난 8월24일

베이징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2시간 17분 56초로 28위에 그쳤다. 케냐,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초반부터 작심하고 속도전을 펼치는데,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었다. 초반

5km도 못가 페이스가 엉망이 돼 버렸다. 선두권은 저만치 앞서가고,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무리하다 보니 리듬과 호흡이 흐트러졌다. 5km 지점에서 선두권 선수들이

물을 잡을 때, 봉달이는 이미 뒤쪽으로 처져 TV화면에서 보이지도 않았다.  

봉달이는 5㎞ – 15분 3초(44위), 10㎞ – 30분 42초(43위), 15㎞ – 46분 58초(46위),

20㎞ – 1시간 03분 05초(44위) 등 줄곧 40위권에 머물렀지만, 35㎞ 지점에서 1시간

53분 51초로 33위로 순위를 끌어 올렸고 막판에 20위권대로 레이스를 마쳤다.

우승자는 역시 초반부터 속도전을 주도했던 케냐의 사무엘 카마우 완지루(22).

그는 초반 20km까지 5km 평균 14분 33초에 달렸다. 봉달이의 평균 15분 46초에 비교하면

무려 1분 13초나 빠른 속도다.

 

“전력 질주로 추격자 피곤하게 만든다“

완지루는 2시간 6분 32초의 기록으로 1984년 LA올림픽에서 포르투갈의 카를로스

로페스가 세운 올림픽 기록(2시간 9분 21초)을 무려 2분 49초나 앞당겼다. ‘올림픽

마라톤은 스피드보다는 순위 싸움’이라는 공식을 깨버린 것이다. 선두 그룹이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이며 후반까지 간 뒤, 보통 35km 이후에 치고나가는 레이스 양상이

먹혀들지 않게 된 것이다.

완지루는 100m를 평균 17.99초의 빠르기로 달렸다. 완지루는 이번 베이징올림픽

마라톤이 생애 3번째 공식대회 완주다. 키 163㎝에 몸무게 51㎏의 왜소한 체구(이봉주는

168cm 54kg). 그는 "경쟁자들을 보다 피곤하게 만들기 위해서, 속도를 내지

않으면 내 몸이 피곤해지기 때문에 끝까지 페이스를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완지루는 2001년 15살 때 육상을 시작했으며, 2002년 일본으로 건너가 센다이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 2005년 도요타 규슈 육상 팀에 입단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에 이어 은메달을 따낸 모리시타 고이치 코치에게서 배웠다. 2005년 8월 남자

1만m 주니어 세계 신기록(26분 41초 75)을 세웠고, 2주 뒤인 9월 11일 로테르담

하프 마라톤에서 59분 16초로 세계기록을 1초 앞당겼다.

마라톤 데뷔전은 2007년 12월 일본 후쿠오카 대회. 그는 첫 대회에서 2시간 06분

39초의 좋은 기록으로 우승했다. 2008년 4월 런던 마라톤에서는 2시간 05분 24초의

기록으로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3월에는 하프 마라톤에서도 58분 33초로 세계 최고

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마라톤도 이제 사진 판독 필요

한마디로 현대 마라톤에선 스피드가 있으면 살고, 스피드가 없으면 죽는다. ‘후반

30km 이후에 승부를 건다’는 작전은 더 이상 작전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 것뿐인가.

40km까지 스피드 전쟁에서 살아남은 선수들조차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나머지

2.195km에서 살아남은 선수들끼리 최후의 스피드 경쟁을 펼쳐야 한다. 결국 승부는

결승선이 있는 경기장 안 트랙에서 결정된다. 피 말리는 트랙 게임으로 우승자가

확정된다.

트랙게임을 벌이는 선수들은 피가 마른다. 입술이 바싹바싹 타고, 심장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몸은 천근만근 자꾸만 땅속으로 가라앉는다. 오직 정신력으로, 본능적으로

다리를 옮길 뿐이다.

지난해 10월8일 미국 시카고 남자 마라톤에서는 0.5초 차이로 우승자가 바뀌는

최고의 트랙 게임이 펼쳐졌다. 출발 기온 23℃에 골인 기온 31℃. 찜통 속에 펼쳐진

지옥의 레이스.

결승선을 코앞에 두고 조우아두 가리브(모로코)가 1위를 달렸지만 그가 잠시 방심하며

스피드를 늦추는 순간, 바짝 뒤 따르던 패트릭 이부티(케냐)가 치고 나가 가슴을

쭉 내밀었다.  결국 이부티와 가리브는 2시간 11분 11초로 동시에 골인한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사진 판독 결과 이부티가 0.5초 빠른 것으로 판정돼 1위를 차지했다.

초 단위까지만 기록을 재는 마라톤 대회에서조차 이젠 포토 피니시(결승선 사진 판독)로

우승자를 가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게브르셀라시에의 달리기 발자취

◇중장거리

▼1992년 19세 세계 주니어 육상 선수권 5000,1만m 우승
▼1993년 20세 독일

슈투트가르트 세계 선수권 1만m 우승
▼1995년 22세 스웨덴 예테보리 세계 선수권

1만m 우승
▼1996년 23세  애틀랜타 올림픽 1만0m 우승
▼1997년 24세

그리스 아테네 세계 선수권 1만m 우승
▼1999년 26세 스페인 세비야 세계 선수권

1만m 우승
▼1999년 26세 일본 마에바시 세계 실내 육상 선수권 1500, 3000m

우승
▼2000년 27세 시드니 올림픽 1만m 우승
▼2003년 30세 영국 버밍엄 세계

실내 육상 선수권 3,000m 우승
▼2004년 31세 아테네 올림픽 1만m 5위
▼2008년

35세 베이징 올림픽 1만m 6위

◇마라톤

▼2002년 29세 런던 마라톤 데뷔전 할리드 하누치(미국), 폴 터갓(케냐)에 이어

3위(2시간 6분 35초)
▼2005년 32세 암스테르담 마라톤 2시간 6분 20초 시즌

최고 기록 우승 
▼2006년 33세 베를린 마라톤 2시간 5분 56초 시즌 최고

기록 우승
▼2006년 33세 후쿠오카 마라톤 2시간 6분 52초 우승
▼2007년 34세

뉴욕 시티 하프 마라톤 59분 24초 우승~
▼2008년 35세 리스본 하프 마라톤 대회까지

하프 마라톤 출전 전 대회 우승(9차례)
▼2007년 34세 베를린 마라톤 2시간 4분

26초 세계 최고 기록 우승
▼2008년 두바이 마라톤 2시간 4분 53초 우승
▼2008년

35세 베를린 마라톤 2시간 3분 59초 세계 최고 기록 우승

◇마라톤 세계 기록 변천사                                                      

▲1908.7.24 존 하예스(미국) 2시간 55분 18초 4
▲1909.1.1 로버트 플라워(미국)

2시간 52분 45초 4
▲1909.2.12 제임스 클라크(미국) 2시간 46분 52초 8
▲1909.5.8

알버트 레이즈(미국) 2시간 46분 4초 6
▲1909.5.26 헨리 바레트(독일) 2시간

42분 31초 0
▲1909.8.31 투레 요한슨(스웨덴) 2시간 40분 34초 2
▲1913.5.12

해리 그린(독일) 2시간 38분 16초 2
▲1913.5.31 알렉시스 알그렌(스웨덴) 2시간

36분 6초 6
▲1920.8.22 요한 콜마인(핀란드) 2시간 32분 35초 8
▲1925.10.12

알버트 미첼슨(미국) 2시간 29분 1초 8
▲1935.3.31 스즈키 후사시게(일본) 2시간

27분 49초 0
▲1935.4.3 손기정(한국) 2시간 26분 42초
▲1947.4.19 서윤복(한국)

2시간 25분 39초
▲1952.6.14 제임스 피터스(영국) 2시간 20분 43초
▲1953.6.13.

제임스 피터스(영국) 2시간 18분 41초
▲1953.10.4 제임스 피터스(영국) 2시간

18분 35초
▲1954.6.26 제임스 피터스(영국) 2시간 17분 40초
▲1958.8.24

세르게이 포포프(구 소련) 2시간 15분 17초
▲1960.9.10 아베베 비킬라(에티오피아)

2시간 15분 17초
▲1963.2.17 도루 데라사와(일본) 2시간 15분 16초
▲1963.6.15

레오나르드 에델렌(미국) 2시간 14분 28초
▲1964.6.13 바실 히틀리(영국) 2시간

13분 55초
▲1964.10.21 아베베 비킬라(에티오피아) 2시간 12분 12초
▲1965.6.12

모리오 시게마츠(일본) 2시간 12분 00초
▲1967.12.3 데렉 클레이톤(호주) 2시간

9분 37초
▲1969.5.30 데렉 클레이톤(호주) 2시간 8분 34
▲1981.12.6 롭 데

카스텔라(호주) 2시간 8분 18초
▲1984.10.21 스티브 존스(영국) 2시간 8분 5초
▲1985.4.20

카를로스 로페스(포르투갈) 2시간 7분 12초
▲1988.4.17 벨라이네 딘사모(에티오피아)

2시간 6분 50초
▲1998.9.20 호나우두 다 코스타(브라질) 2시간 6분 5초
▲1999.10.24

할리드 하누치(미국) 2시간 5분 42초
▲2002.4.14 할리드 하누치(미국) 2시간

5분 38초
▲2003.9.27 폴 터갓(케냐) 2시간 4분 55초
▲2007.9.30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에티오피아)

2시간 4분 26초
▲2008.9.28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에티오피아) 2시간 3분 59초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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