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기억만 골라 지우는 동물실험 성공

다른 기억-뇌세포엔 손상 없어 … 사람에 적용은 “먼 훗날”

괴롭거나 해로운 특정 기억만을 골라서 지울 수 있을지도 모르는 단초를

열어주는 선구적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두 연인이 둘 사이의 안 좋았던 기억만 지워 없애는 서비스를 받는다는 내용이

나오는 영화로 2005년 한국에도 개봉됐던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이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연구다.

미국 조지아대 뇌행동연구소 조 치엔 박사 팀은 인간과 쥐의 뇌에서 공통적으로

기억에 관련된 작용을 하는 효소 CaMKⅡ에 주목했다. 그 작용 때문에 이 효소는 ‘기억

분자’로 불린다. 무언가를 배우고, 배운 것을 유지하는 능력과 관련됐기 때문이다.

CaMKII는 세포 안으로 칼슘 이온이 활발하게 들어오게 만들어 세포가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한다.

연구팀은 화학-유전공학적 방법을 이용해 CaMKII을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형질변형된

쥐를 만들었으며, 이 쥐들이 생산하는 CaMKII의 양을 연구진들이 늘리거나 줄일 수

있도록 했다.

연구팀은 쥐의 앞발에 전기 충격을 가하거나 듣기 싫은 소리를 듣게 해서 쥐가

정서적으로 강력한 공포를 경험하게 한 뒤 CaMKII의 발현 양에 따라 금방 경험한

내용이 어떻게 기억되는지를 관찰했다.

공포스러운 기억을 회상하는 순간에 CaMKII가 많이 나오도록 조정된 쥐는 그 혐오

기억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으로 관찰됐다.

전기 충격이나 혐오스런 소리를 경험한 방으로 보통 쥐라면 금방 다시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나 연구진이 인위적으로 CaMKII 분출량을 늘린 쥐는 금새 다시 그 방으로

들어가 그 방에 대한 혐오스런 기억이 사라진 것으로 관찰됐다. 해당 쥐의 다른 기억에는

변함이 없었다.

장난감을 이용한 실험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CaMKII가 많이 발현되도록

조정된 쥐는 금방 갖고 놀던 장난감에 대한 기억을 잊고 마치 새 장난감을 받은 듯

갖고 놀았다.

치엔 박사는 “특정 기억을 다른 기억이나 뇌 세포에 대한 손상 없이 안전하게

지울 수 있다는 연구 결과”라며 “앞으로 연구가 더 진행되면 전쟁에 참가했던 군인이나

끔찍한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 기억 때문에 겪는 고통을 줄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 연구에 대한 경계도 만만치 않다. 미국 알버트아인슈타인대 신경과

조 베게스 교수는 “특정 기억만 골라 없앨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롭다”면서도 “인간의

기억 과정은 쥐의 그것보다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이번 연구의 성과를 인간에 적용하기까지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며 섣부른 기대를 경계했다.

이 연구는 신경과학 분야의 권위지인 ‘뉴런(Neuron)’ 23일자에 게재됐고 미국시사주간지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 온라인판 등이 22일 소개했다.

    강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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