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인 어 라이트



"이거 왜 이래!, 왕년에 나도 한 가닥 했어!"
"어휴! 내가 10살만 어렸어도."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요즘 애들은 말이야!"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런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면 당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다. 최후방인 용인 주둔 55사단 108연대 38대대에서 탱자탱자 ‘신선 놀음’하면서 군복무를 마친 본인도 여자 앞에서는 강원도 철원 화지리 3군단에 근무하면서 간첩을 3, 4명 잡았다고 설레발을 치고 다닌다. 별 볼일 없다 해도 지나온 세월을 지극히 미화하려는 것은 수컷들의 본능 중 하나이다. 나이 들었다고 피까지 식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이 먹은 것이 무슨 벼슬은 아니다.

“경쟁이 치열한 팝 음악계에서 2년 정도 견디면 잘 버틴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데뷔 40여년이 넘은 지금 생각해보면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오늘 최선을 다하자는 각오가 장수 인기를 얻은 결정적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1963년 1월 영국 런던에서 믹 재거(1943년 7월 26일 영국 켄트주 다트포드 태생)를 주축으로 결성된 영국 록 밴드 롤링 스톤즈는 현재도 전 세계를 순회하는 공연 때마다 평균 100만 명을 동원하는 대기록을 세우고 있다.  3년 전 브라질 수도 리우데자네이루 자선 공연장에서는 물경 250만 명이 몰려들어 그들의 인기가 어떠한지를 실감케 해주는 본보기로 남아 있다. 약관 17세로 팝계에 입문한 풋풋한 청년은 2008년 기준으로 이제 65세가 됐다.

남자 평균 수명 75세의 고령사회로 치닫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65세 노인들의 초상화는?  파고다 공원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거나 지하철 경로석에 세파에 찌든 얼굴을 하고 앉아서 ‘뭐 시비 걸 것 없나’하고 눈알을 부라리거나, 그도 아니면 동네 양로원에서 화투판을 치다가 ‘왕년’이나 ‘10년만 젊었어도’를 암송하고 있는 것이 저간의 풍경이다.

반면 공연 시작 당시 62세가 된 리더 믹 재거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비거 뱅 투어’라는 타이틀로 진행한 롤링 스톤즈 공연은 누적 수익만 무려 6,000억 원을 벌어들여 팝 역사상 최다 수익 공연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2006년 가을 뉴욕의 명물 비콘 극장(Beacon Theater)에서 가진 ‘비거 뱅 투어 ’순회 공연을 122분의 영상으로 담은 것이 록 실황 음악 영화 <샤인 어 라이트>이다.

“흡사 내 생일 잔치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는 소감을 밝히는 전(前)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의 공연 축하 연설. 이어 무대에 등장한 믹 재거(보컬 및 일렉트릭 기타), 키스 리처드(리드 기타), 찰리 와츠(드럼), 로니 우드(기타) 등 고정 밴드 4명과 무대 뒤편 20여명의 세션 연주인. 이들은 ‘Jumping Jack Flash’로 시작해 배철수의 음악 캠프 시그널 송으로 널리 알려진 (I can’t Get No) Satisfaction까지 근 30여 곡의 주요 히트곡을 쉼 없이 연주하고 들려주면서 라이브 공연의 진수를 선사하고 있다.

환갑을 넘긴 믹 재거는 검은 티셔츠와 청바지를 착용하고 2시간 내내 무대를 뛰어다니고 허리를 요염하게 흔드는 유혹적인 춤 그리고 객석의 환호를 유도하는 현란한 제스처를 시도해 ‘오늘 최선을 다하는 외길 인생을 걷고 있는 프로 음악인의 자세’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골수 롤링 스톤즈 마니아가 아니라고 한다면 모든 무대 공연 곡의 의미를 유추한다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우리가 팝송이나 샹송을 가사 내용을 모두 이해하면서 듣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외국 노래를 수용할 때 기본은 리듬과 곡조가 주는 분위기가 듣는 이들의 정서에 맞으면 그것으로 존재 가치는 있다는 것이다. 언어나 국적을 뛰어넘어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롤링 스톤즈는 바로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일깨워주는 음악 공연의 진수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흔히 가수들은 ‘무대 위에서 공연하다가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샤인 어 라이트>에서 60대 초반의 믹 재거가 보여주는 혼신을 다하는 공연 모습은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끓임 없이 노력하는 장인(匠人)의 자세’를 엿볼 수 있는 숭고한 기분마저 전달해 주고 있다.

한 번 공연료가 평균 70억 원에 달한다는 믹 재거 공연.
부동산 투기로 졸부들만 득시글거리는 문화 후진국 남한에서는 아마 영원히 볼 수 없는 콘서트다. 이런 공연을 단돈 7,000원을 내고 안락한 의자에 앉아 스테레오 음향으로 현장감 있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8월 28일부터 시작된다.

‘마누라와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등골이 빠진다!’며 삶의 회의에 빠져 있는 한국의 중년 남성들이여, 홀로 극장 문을 두들기시라! 122분 후, ‘그래! 인생의 열정을 다시한번 불태워 보자!’는 불같은 의욕이 용솟음치는 짜릿함을 만끽할 것이다.

또 있다. 선머슴 같이 무뚝뚝한 남편과 이제는 다 컸으니 참견하지 말라고 자기 방문을 꼭꼭 닫고 있는 자식새끼들 때문에 마음 상했던 주부들이여. <샤인 어 라이트> 티켓을 뽑으시라. 비록 육신은 늙어간다 해도 하루하루 열정적인 인생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를 65세의 믹 재거가 귀띔해줄 것이다.

[추신]

1. 공연 도중 담배를 피워 물고 무아지경에 빠져 기타 독주를 펼치는 이가 키스 리처드이다.
이외 드럼 찰리 와츠, 기타 로니 우드가 롤링 스톤즈의 고정 멤버이다.

2. 공연을 끝내고 무대 뒤편으로 나오는 믹 재거의 모습을 카메라가 뒤따라온다. 감독 마틴 스콜세즈는 공연장 밖으로 나온 믹 재거의 모습에 이어 곧바로 뉴욕 비콘 극장의 롤링 스톤즈 공연을 알리는 극장 네온사인을 보여주면서 카메라가 허공으로 트래킹을 시도해 뉴욕을 전경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밤하늘 오른쪽으로 붉은 혀를 낼름 내민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 혀는 바로 공연 도중 흥에 겨우면 혀를 내밀고 있는 믹 재거의 입술과 혀를 팝 아티스트 존 파치(John Pasche)가 디자인한 것으로 롤링 스톤즈가 1971년 발표한 앨범 ‘Sicky Fingers’의 표지 자켓으로 사용된 바 있다. 뱀처럼 낼름 내밀고 있는 붉은 혀 로고는 롤링 스톤즈를 떠올려주는 강력한 표상(表象)으로 자리잡고 있다.

3. 감독 마틴 스콜세즈(1942년 11월 17일 뉴역 퀸즈 태생)는 <분노의 주먹 Raging Bull>(1980),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1988), <좋은 녀석들 Goodfellas>(1990), <순수의 시대 The Age of Innocence>(1993), <갱즈 오브 뉴욕 Gangs of New York>(2002), <에이비에이터 The Aviator>(2004) 등 무려 6번의 낙방 끝에 2007년 홍콩의 <무간도>를 할리우드 버전으로 각색한 <디파티드 The Departed>로 대망의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다.
반면 데뷔 초기 비틀즈 신드롬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롤링 스톤즈는 꾸준한 라이브 공연 무대를 통해 무려 45년 이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입지전적인 기록을 보유하게 된다.

4. “이 곡은 다른 분을 위해 작곡해준 곡으로 제가 직접 부를 때마다 낯간지러움을 느낍니다”라는 소개 설명과 함께 불러주는 노래는 ‘As Times Goes By’다. 천하의 바람둥이 믹 재거가 데뷔시켰고 그가 배신해 자살 소동을 일으켰던 마리언 페이스풀이 바로 그가 지칭한 ‘다른 분’이다.

5. 마틴 스콜세즈는 1969년 치러진 ‘우드스탁 페스티벌’ 다큐멘터리 편집을 시작으로 더 밴드의 고별 실황을 담은 <라스트 월츠>, 미국 음악의 뿌리로 인정받고 있는 블루스 장르의 태동과 발전을 다룬 장편 음악 다큐 <더 블루스> 기획 및 공동 연출, 밥 딜런의 음악 이면사를 다룬 <노 디렉션 홈: 밥 딜런> 등 꾸준히 음악 관련 다큐나 라이브 영화를 만들어온 이 시대 최고의 장인 재능꾼이다.

6. 총천연색 컬러와 입체 음향으로 진행되는 라이브 공연 중간 중간 흑백이나 거친 입자의 1960년대 롤링 스톤즈의 인터뷰 영상이 교차 편집되어 짧게나마 무대 뒤에서 느끼는 그들의 솔직한 음악 인생의 족적을 엿볼 수 있는 편집을 시도하고 있다.
옛 대담 중 믹 재거는 “60살이 돼서도 무대에 설 것”이라고 단언했고 “우리에게 음악은 늘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므로 마지막이라는 무대는 없다”는 자신감을 피력한다. 치기어린 청년 시절의 주장을 현재 이들 멤버들이 생생하게 실천해 주고 있다.

7. 80년대 국내 미드 드라마 열풍의 원조로 인정받고 있는 <머나먼 정글>의 주제곡 ‘Paint It Black’은 국내 가수 휘성이 5집 앨범을 통해 리메이크했다.
조지 뎁이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맡은 잭 스패로 선장의 이미지는 바로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드의 캐릭터에서 모방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키스는 <캐리비안 해적 3>에서 잭 스패로의 아버지 역할로 카메오 출연했다.

8. “오프닝 곡을 알려주어야 카메라 위치를 준비하지?” “공연 1시간 전에 알려줄게, 됐지?”
완벽한 라이브 음악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마틴 스콜세즈. 하지만 당사자인 믹 재거는 그날그날 현장 분위기에 따라 공연 선곡이 변경될 수 있다고 하면서 마틴 스콜세즈의 애간장을 태우는 장면이 오프닝에서 보여지고 있다. 이에 롤링 스톤즈가 선곡할 가능성이 있는 곡들을 뽑아 16대의 카메라를 무대 곳곳에 배치해 현장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듯한 살아 있는 라이브 공연 영화로 만들어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이 영화는 2007년 55회 독일 베를린영화제 개막작, 32회 홍콩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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