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족한 <좋은 놈…>



솔직히 기자 초청 시사장, 특히 국산영화 시사장은 가기가 싫다. 초년병 시절 시사장에 모인 기자들은 많아야 20명이었다. 매체가 많지 않아 특권층 기분을 내면서 사랑방 같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일반 개봉에 앞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런 호시절은 보통 사람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당시 언론매체 신설은 엄격한 심사가 있었던 허가제(등록제)에서 ‘개나 소나 뜻만 있으면 언론사 발행인이 될 수 있는 신고제’로 파격적인 완화 조치가 취해졌다. 이런 자유화로 인해 술집 사장이나 건축업자들까지 언론사주 역할을 하면서 이 바닥은 혼탁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들어서는 인터넷 매체와 케이블 등이 가세하면서 기자 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가 됐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이 기자!’ 하고 소리치면 손님 20여명중 최소 5명은 일어선다는 기자천국 시대가 됐다.

만주벌판 추격, 정우성 총격 장면은 볼만

지난 7월 7일 오후 2시 용산 CGV.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의 기자 시사장.  5월 칸 영화제에서 이미 공개됐고 역대 국산 영화로는 최고액인 200억원의 총제작비, 정우성, 송강호, 이병헌 등 스타급 남자 배우 3명의 동시 출연 같은 여러 호기심 어린 뉴스를 제공한 영화 시사장은 필자가 도착한 12시 50분에 이미 인산인해였다.

꼬박 1시간여를 군대식당에서 배급 받는 것처럼 장사진을 이룬 줄 속에서 한 구성원으로 서있어야 했다. 본인 앞으로 15여명, 뒤로는 약 700여명이 시사표를 받기 위해 라인 업.

하지만 1시간 전에 온 필자도 모르게 표가 빼돌려졌는지 1,200여장의 표가 동이 났으니 ‘미안하다!’는 제작사 말단 직원의 폭탄선언(?)이 있기가 무섭게 ‘야!’, ‘쌍!’, ‘뭐하는 개 매너야!’, ‘죽어볼래!’, ‘너네 홍보 이렇게 할래!’,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 ‘기자 시사회 줄 서 있다가 표 못받기는 생전 처음’ 등등의 원성이 극장 천장을 뚫어놓기 시작했다.

필자는 ‘아! 이래서 한국영화 시사장은 오기 싫다’는 것을 되뇌었다. 그때가 2시. 재빨리 7층 입구로 달려 들어가 티켓팅을 하는 직원이 한눈파는 사이 4관으로 잠입에 성공, 결국 2시간 15분의 상영 시간 내내 종이를 깔고 앉았다가 내리섰다를 반복하면서 영화를 보느라 화면의 집중도는 자연스럽게 산만해졌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놈놈놈>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설을 가르쳐 준 의미 있는(?) 작품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단. 몇가지 기억에 남는 장면은 있다. 첫째 막대한 보물이 감추어져 있을 것이라고 추정된 보물 지도.

열차 털이범 태구(송강호)가 소지하고 있는 지도를 뺏기 위해 만주 허허들판을 고물 오토바이를 타고 달아나는 그를 말을 타고 추격하는 도원(정우성), 창이(이병헌)와 그 무리들, 그리고 일본군들이 벌이는 15분간의 추격전은 근래 한국 영화에서는 맛보지 못한 호쾌하고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액션 장면이다.

이런 느낌을 부추겨 준 것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70년대 디스코 붐을 주도한 산타 에스메랄다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이 노래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 1>에서 복수극에 나선 우머 서먼이 극중 후반 사찰(寺刹)에서 일본 기모노를 입고 있는 중국 배우 루시 리우와 달빛이 어스름한 심야에 소복이 쌓여 있는 눈을 밟으면서 칼싸움을 할 때 배경곡으로 흘러 나와 찬사를 터트린 흥겨운 곡이다.

<놈놈놈>에서는 달파란과 장영규가 원곡 오프닝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손바닥 박수(Clap) 리듬과 일렉트릭 기타 가락의 복합음만을 반복적으로 편곡시켜 추격전의 긴박감이 오히려 흥겨운 줄다리기(tug of war)를 보는 것 같은 즐거운 기분마저 전달시켜 주고 있다.

3명의 주인공 중 도원이 만주 벌판을 말을 타고 달리면서 장총을 360도 돌리면서 총격하는 장면과 만주 지역의 2층 구조물을 외줄을 타고 휘저으면서 장총을 쏘아 악한 무리들을 제압하는 혼신을 다한 연기는 칭송해줄 만한 장면이다.

김지운 감독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대해 시사회 직후 가진 인터뷰를 통해 “한국은 위쪽이 막혀 있지만 한국인들은 대륙적인 기질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광야를 질주하는 선조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고, 욕망을 쫓는 모습을 통해 인생의 단면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연출론을 밝혔다.

‘웨스턴, 보물찾기 소동’ 이미 익숙한 소재

이 영화는 60년대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스타덤에 올려 놓은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에서 주요 모티브를 차용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아울러 은닉해 둔 보물을 찾거나 먼저 독차지하려는 암투를 다룬 영화는 아동극 <구니스>를 비롯해 니콜라스 케이지의 <내셔널 트레져>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나일 대모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통해 식상할 정도로 익숙해진 소재다.

만주 벌판에 200여명이 넘는 스탭진들을 대거 데려가 현지에서 셋트장 짓고 6개월 이상 땀을 흘리면서 촬영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구구절절 밝힐 필요는 없다.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모험 영화는 평균 1억 5000만 달러(한화 약 1,500억원)를 쏟아 붓는다. 200억원의 제작비로 그 이상의 감동을 요구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 아닐까?

한 가지 비유를 해보자! 집으로 외국 손님을 초대해서 비프 스테이크나 스파게티를 최상의 요리 솜씨를 발휘해 만들었다고 해도 그 외국인 입맛에는 맞지 않거나 무엇인가 부족할 것이다. 결국 그 외국인에게 먹는 추억을 남겨 주기 위해서 가장 적절한 음식은 김치찌개, 육개장, 비빔밥 아닐까?

이런 등식을 <놈놈놈>에 대입해 보면 우리가 한국식 웨스턴이나 보물찾기 소동을 제아무리 때깔좋게 만들었다고 해도 이미 할리우드나 이태리산 웨스턴을 능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놈놈놈>의 흥행 결과는 이미 판정이 난 것 아닐까? 앞서 기술했듯이 기억에 남는 15분여의 만주 벌판 추격신도 엄밀하게 따지면 <벤허>의 전차 대결 장면에서부터 존 웨인의 서부극 등에서 기병대들과 아파치 인디언들이 밀고 당기는 추격을 통해 수없이 보아온 장면이다.

3명의 남자가 권총과 장총을 들이대고 목숨을 건 싸움을 하는 것은 <놈놈놈>의 원전으로 알려진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The Ugly>에 열광했던 386세대들에게는 별달리 새로울 것이 없는 설정이 되고 있다.

결국 이 영화는 마카로니 웨스턴과 친숙하지 않은 20대층 신세대들과 3명의 개성파 배우들을 성원하는 여성 관객들의 호응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이들 관객들에게 제작비 200억원을 회수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외국 시장에서의 수출이 원활치 않을 경우 <놈놈놈>은 투자사인 (주)바른손이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모아서 챙겨준 천금 같은 투자금을 헛방질할지 모른다. 제작비 환수를 위해 개봉 이후 최소 900만 관객을 끌어 모아야 본전인 <놈놈놈>. 7월 17일 제헌절, 극장가로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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