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퍼거슨-맨유 삼국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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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은 1986년 11월 6일 마흔 다섯에 맨유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맨유에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거의 절망감을 느꼈다. 맨유는 직전인 85~86시즌 성적이 꼴찌에서 두 번째. 게다가 19년 동안 리그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맨유 선수들은 천하의 술꾼들이었다. 당연히 체력도 경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이었다. 전후반을 뛸 수 있는 선수는 겨우 3명 정도나 될까. 게다가 이들도 못 말리는 술꾼이었다. 훈련이 끝나면 참새 방앗간 들르듯 술집으로 직행했다. 토요일 날은 아예 고주망태가 되는 날로 알고 있었다.
 
클럽 규칙도 ‘선수들은 경기 이틀 전부터 술을 마실 수 없다‘로 돼 있었다. 그렇다면 사흘 전 까지는 얼마든지 마셔도 된다는 말인가. 퍼거슨 감독은 당장 규칙부터 바꿔버렸다. ‘어떤 선수도 연습기간 중에는 술을 마시지 못한다.’ 매일 연습하는 선수들에겐 사실상 금주령이나 다름없었다.


도전 겁 안내는 젊은 피 수혈로 팀 재건
하지만 선수들은 시큰둥했다. ‘어느 집 개가 짖느냐’는 식이었다. 퍼거슨이 호통을 쳐도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니냐”며 대들었다. 선수들의 승부욕도 전혀 없었다. 이겨보겠다는 열정 즉 뜨거움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하나’라는 팀 정신이 너무도 부족했다. 한마디로 모래알 팀이었다.

퍼거슨은 하나 둘 말 안 듣는 술꾼들을 방출해 나가기 시작했다.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키 플레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고참 선수들을 정리하고 도전에 겁내지 않는 젊은 피를 수혈했다. 10년을 내다보고 유소년축구센터도 만들었다. 스카우트요원들도 5명이던 것을 22명으로 늘렸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했다. “뛰어난 선수보다는 뛰어난 꿈나무를 데려와라”
 
그러나 89년 11월 팀이 바닥을 기었다. 해임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후임 감독 이름까지 언론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FA컵 우승이 그의 목숨을 살렸다. 그 다음 시즌에도 리그 6위에 그쳤지만 유러피안 위너스 컵에서 바르셀로나를 꺾고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아슬아슬하게 목이 잘리는 것을 피했다.

퍼거슨은 부임 후 86~87시즌 11위, 87~88시즌 2위, 88~89시즌 11위, 89~90시즌 13위, 90~91시즌 6위, 91~92시즌 2위로 6년 동안 성적이 기대만큼 좋지 않았다. 그럴수록 퍼거슨은 젊은 피 육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나에겐 영원한 승리를 갈망하는 피가 끓고 있었다. 감독으로서 나의 목표는 구단이 여러 해 또는 나아가 수십 년 동안 좋은 성적을 낼 기반을 만드는 것이었다. 한두 번 반짝 우승하는 건 나의 목표가 아니었다. 한 손 가득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위대한 구단’을 재건하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어린 선수를 키워야 했다. 나는 구단주가 선수문제에 관여하는 걸 철저하게 막았다. 내가 독자적으로 유소년 축구클럽 육성을 주도하고 활성화할 수 있었던 것도 구단주가 나의 뜻을 이해하고 지원해준 것이 절대적인 힘이 됐다.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는 건 축구를 뛰어넘어 인생의 선배로서 삶의 자세를 가르쳐야 한다. 그들의 사생활에 간섭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선수들이 경력을 쌓아가면서 직면하는 위험과 유혹이 너무도 많다는 걸 일러주고 싶다. 특히 술 마시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명심해야 한다. 어린 선수들은 너무 많은 경기에 출전할 경우 선수 생명이 단축되는 경우가 많다.”
 

"영원한 승리를 갈망하는 피가 끓는다"
아무리 훌륭한 젊은 선수가 많아도 리더가 없으면 우승할 수 없다. 퍼거슨은 92년 12월 리즈 유나이티드로부터 프랑스의 천재스타 에릭 칸토나(1966년생·당시 26세)를 과감하게 영입했다. 처음엔 주위에서 너도나도 말렸다. 성격이 불같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앙팡 테러블이라는 것이었다. 괴팍한데다 제멋대로여서 십중팔구 팀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리즈 유나이티드 구단도 ‘돈이나 많이 받고 골치 덩이를 하루빨리 떠넘겨버리겠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역시 퍼거슨의 판단이 맞았다. 에릭 칸토나는 그 특유의 카리스마로 맨유의 어린 선수들을 훌륭하게 이끌었다. 그 덕분에 91~92시즌을 리그 2위로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92~93시즌엔 마침내 26년 만에 24승12무6패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에릭 칸토나는 10살 가까이 아래인 게리 네빌-니키 버트-데이비드 베컴(이상 1975년생)-폴 스콜스(1974년생) 같은 10대 어린 선수들을 ‘어미 닭 병아리 품듯’ 완벽하게 이끌었다.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지 ‘승리하는 방법’을 몸으로 알려 줬다. 칸토나보다 7개월 늦게(93년 7월) 들어온 열혈아 로이 킨(1971년생)도 칸토나 앞에선 꼼짝 못했다.

 한번 우승 맛을 본 맨유는 그 이후 우승 단골 후보가 됐으며 그 밑바탕엔 칸토나가 있었다. 퍼거슨의 장기 전략이 마침내 꽃을 피운 것이다. 맨유는 지금도 신구의 절묘한 조화가 하나의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다. 소위 ‘퍼거슨식 해지지 않는 나라’ 구축이다. 이번 시즌 우승도 긱스(35)-스콜스(34)의 두 노장이 루니-호날두-박지성 등 젊은 피들을 이끌었다.


17번째 리그 챔피언 등극, 우승만이 살 길
칸토나는 93~94시즌 우승, 94~95시즌 2위, 95~96시즌 우승, 96~97시즌 우승을 이끌고 97년 4월 영원히 그라운드를 떠났다. 사실 94~95시즌도 칸토나가 자신의 성격만 잘 다스렸다면 맨유가 충분히 우승할 수 있었다. 칸토나는 95년 1월25일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원정경기에서 관중을 이단옆차기로 참으로써 8개월간의 경기출장 금지(95년 10월1일 복귀)와 법원으로부터 120시간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 퍼거슨은 말한다.

“에릭 칸토나는 내가 감독을 하면서 만난 선수들 가운데 가장 재능 있고 패기 넘치고 생산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였다. 내 50대의 축구인생을 칸토나 같은 멋진 선수와 함께 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그는 어디에서건 동료들이 받기 쉬운 패스를 해줬다. 기발한 패스가 필요한 상황에서, 또 기술적인 재치로 공을 드리블해 수비수 사이를 헤쳐 나가야 할 때 칸토나 만한 실력을 갖춘 선수는 찾기 힘들었다. 진정 비범하고 창조적인 선수들이 그렇듯이 칸토나 역시 필요한 순간에 자기 진가를 드러냈다. 그는 중요한 순간에 꼭 결승골을 기록하곤 했다. 칸토나는 돈으로 따지기 힘든 존재감과 스타일을 팀에 제공했다. 그는 매우 자부심이 강했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로 대우받길 원했다. 그러나 성격이 불같았다.”

 퍼거슨은 퀴즈 광이자 경마 광이다. 그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그는 올 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맨유가 1878년 창단 이래 17번째 리그 챔피언 컵을 안도록 했다. 또한 98~99시즌에 이어 두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차지했다. 92~93시즌 출범한 프리미어리그 16시즌 중 그가 10번이나 맨유 우승을 이끌었다. 지금과 같은 기세라면 1970~1980년대 전성기를 보낸 리버풀의 18번 우승 기록 추월도 시간문제다.

“축구팀을 제대로 컨트롤하는 유일한 방법은 승리하는 것이다. 성공만이 감독 고유의 권한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도록 한다. 우승컵을 자꾸 따내면 선수나 구단 팬들의 대우가 달라진다. 감독은 선수들의 정신력과 훈련 자세를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할 선수들을 골라내야 한다. 선발을 정할 때는 한 포지션에 2명 이상의 선수를 놓고 집중 관찰할 때 올바른 평가가 나올 수 있다. 감독은 효과적으로 팀을 정비하기 위해 구성원의 개성을 모질게 억제하고 팀 전체를 총체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가 많다. 물론 감독의 명성은 궁극적으로 선수들의 승부의지에 달려 있기 때문에 잘못 될 경우 감독이 가장 큰 좌절을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감독은 지도력을 발휘해 선수들의 플레이를 빛내야 한다. 때로는 선수들로부터 제기되는 숱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맷집도 갖춰야 한다. 최상의 팀이라고 해서 꼭 감독이 선호하는 선수들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선수들 절반 정도는 저녁을 함께 먹고 싶지 않은 녀석들이다. 그렇지만 그 녀석들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뛰어서 경기에서 이긴다.”


‘승리의 사나이’ 박지성, 25경기 무패행진
박지성은 ‘승리의 사나이’로 불린다. 이번 시즌 13경기에 선발로 출전해 12승1무를 기록했다. 지난해까지 포함하면 25경기(23승2무) 연속 무패 행진. 그만큼 그에게는 행운까지 따른다.

돈도 많이 벌었다. 그의 연봉은 약 57억 원. 여기에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5억7000만 원의 보너스를 받는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뛰지 못했지만 약간의 우승 보너스도 있다. 말콤 글레이저 맨체스터 구단주가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 2관왕을 할 경우 선수들에게 약속한 5억1000만 원의 가욋돈도 있다. 출전 수당도 더해야 한다. 대충 따져도 80억원 가까이 이른다. 

 하지만 문제는 결국 실력이다. 잘 뛰면 돈과 명성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 있다. 박지성은 아직 ‘붙박이 주전’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주전급의 백업멤버라고 봐야 한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신사복을 입고 관중석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신세인 것이다. 농구로 말하면 식스맨이다. 그만큼 박지성은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피 말리는 경쟁을 하고 있다. 실력이 부쩍부쩍 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아직 멀었다. 우선 골 결정력에서 경쟁자들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 올 시즌 1골 1도움. 부상으로 얼마 못 뛰었지만 어쨌든 지난 시즌의 5골 2도움보다 부진하다.


박지성은 아직 젊다, 축구영웅 탄생 예감
영국 일간지 더 선은 맨유의 정규리그 우승영웅 16인에 대한 시즌평점을 매겼다. 시즌평점은 시즌 내내 전체 활약상을 10점 만점으로 매긴 것. 1위는 단연 오른쪽 윙포워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로 평점 10점. 2위 중앙수비수 리오 퍼디낸드 평점 9점, 3위 네마냐 비디치(중앙수비수), 파트리스 에브라(수비수), 카를로스 테베스(포워드), 웨인 루니(포워드), 에뒤윈 반데사르(골키퍼) 평점 8점, 4위 웨스 브라운(수비수), 마이클 캐릭, 안데르손, 오언 하그리스브,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이상 미드필더) 평점 7점, 5위 박지성, 나니(이상 미드필더), 존 오셔(수비수) 평점 6점씩이다. 16명중 사실상 꼴찌다. 이 신문은 박지성을 평하면서 “부족한 재능을 엄청난 노력으로 메웠다. 그라운드 구석구석을 누비는 모습은 특별한 영웅이 되기 충분했다”고 지적했다.   
 
퍼거슨은 1986년 11월6일 맨유의 사령탑을 맡아 무려 22년 동안 UEFA 챔피언스리그 2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0회, FA컵 5회, 칼링컵 2회씩 각각 정상에 올랐다. 맨유 지휘봉을 잡기 전 에버딘(스코틀랜드) 감독 땐 당시 레인저스와 셀틱이 우승컵을 도맡아 차지하던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3번 정규리그 우승과 4번 컵 대회 우승도 차지했다. 퍼거슨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선박회사 도금공의 아들로 노동자집안 출신이다. 16살에 축구에 발을 들여 1957년부터 1974년까지 17년 동안 스코틀랜드리그 6개 구단에서 골잡이로 뛰었다. 327경기 통산 167골.

 퍼거슨은 5월22일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박지성을 후보명단에도 넣지 않았다. 박지성이 정규리그 조커로서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같은 큰 경기엔 아직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퍼거슨은 경기직전 "오언 하그리브스의 몸 상태가 워낙 좋았다. 너무 힘든 결정이었다. 박지성은 올 시즌 팀을 위해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팀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박지성은 "팀이 우승해서 기쁘다.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만 팀 우승으로 만족한다. 다음에 기회가 주어지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그렇다. 이것이 프로의 세계다. 강호의 세계다. 믿을 것은 실력밖에 없다. 퍼거슨은 냉정하다. 퍼거슨은 박지성이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 같이만 뛰어준다면 그를 계속 중용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지지부진하면 가차 없이 칼을 빼들 것이다. 박지성은 이제 시작이다. 다음 시즌이 정말 중요하다. 다음시즌에 뭔가 보여줘야 한다. 공격 포인트도 10골8도움 정도는 돼야 한다. 박지성은 해낼 것이다. 그는 아직 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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