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와 동기적 반발심리



‘하지 말라는 행위’를 꼭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위협 받는 자유를 회복하려는 동기적 반발심리’로 풀이합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행위를 더 이상 할 수 없거나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지할 때 나타나는 심리적 반발이라는 얘기이지요.

제주도 서귀포 인근 중문관광단지 안에 ‘여미지’라는 식물원이 있습니다. 지금은 처음 만들어진 20여년 전에 비해 다소 인기가 시들해졌지만, 여전히 제주를 대표하는 관광명소 중 하나입니다. 사진 속에서나 겨우 볼 수 있었던 식물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까닭에 유소년들에게는 학습의 장이기도 하지요.

세계 각 지역의 희귀식물들이 기후별로 구분된 예닐곱 개의 방 속에서 숨가쁜 밀도를 이겨내며 방문객들을 맞이합니다.

식물들을 괴롭히는 것은 여유롭지 못한 공간만은 아닙니다. 하지말라는 일을 꼭 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생채기’는 이 곳 식물들을 더욱 괴롭힙니다. 어느 방이든 출입구 언저리에 낮설지 않은 문구를 새긴 팻말이 서 있습니다. ‘식물사랑 낙서하지 맙시다’ 그리고 그 뒷곁에 또 팻말 하나가 더 있습니다. ‘추억은 가슴에만 새깁시다’

다소 의아합니다. 식물에 낙서를 하지 말라니요. 문구대로라면 식물에 낙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덧붙인 팻말을 두고 볼 때, 추억을 가슴이 아닌 식물의 몸 위에 새기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입니다.

있습니다. ‘○○○ 왔다가’ ‘○○사랑 함께하다’라는 심혈을 기울인 방문일지(?)가 즐비합니다. 뿐만아닙니다. 하트모양을 비롯한 제법 수고를 들였을 법한 조각품(?)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들어옵니다.

이곳저곳 가리지 않습니다. 파란빛 싱싱함을 선사하는 넓직한 열대나무 잎사귀에서 웅장한 위용을 뽐내는 선인장 줄기에 이르기까지 방문일지와 조각품이 널려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닙니다. 일본 관광객들이 파리 에펠탑 기둥에 새긴 낙서가 세계적 이슈로 부각된 적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씁쓸합니다.

ICT(정보통신기술)가 만들어 가는 문화 속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온라인과 휴대전화 속 풍경이 그렇지요. 비록 묵시적이지만, 하지말자고 동의 된 행위를 꼭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법 스팸과 펌, 악성댓글 게재, 악의적 루머 생산·유포 등이 그 것입니다.

묵시적 동의는 한계를 드러냅니다. 급기야 법과 규제가 나섭니다. 그 것도 사뭇 강력합니다. 지난 2006년 제정한 ‘불법 스팸방지 가이드라인’을 최근 개정했습니다. 자율규제 수준에서 강력제재 수준으로 바뀐 것입니다.

통신과금서비스 이용 제한, 악성스패머 재가입 금지, 일일 문자메시지(SMS) 발송량 제한 등 불법스팸방지를 위해 정보통신서비스제공자가 준수해야 하는 법적강제 및 권고 사항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실명제를 비롯한 인터넷 참여제한 조치도 실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더 이상 무제한적 자유와 참여가 허용되지 않는 것이지요. 

여미지 식물원은 식물 몸 위에 휘저어 긁는 낙서를 막기 위해 CCTV를 설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관광과 학습의 공간에 ‘감시의 눈’이 들어서는 것이지요. 하지말자는 묵시적 동의가  행위과정에서 자율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경험에 따른 것입니다.

표현과 참여의 자유가 담보될 때 의미를 더했던 ICT문화에 법과 규제의 칼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위협 받는 자유를 회복하려는 동기적 반발심리’가 어떤 모양으로 도드라질지 염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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