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심리학

TV의 시사토론 프로그램은 웬만해서는 보지 않는다. 토론이 아니라 싸움이고,

그 싸움의 패가 늘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칠 전 밤 늦게 이메일을 기다리다 TV를 켰고 채널이 시사토론에 멈췄다.

종합부동산세라는 주제 때문이었다. 종부세와 무관해 관심이 없었지만 왠지 호기심이

생겼다. 여당은 세금이 벌금이 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고, 야당은 정서와 지방세원

확충 문제를 들고 나왔다. 그런데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한 패널의 주장에 대해

아무도 이견을 내세우지 않아 의아했다. 바로 "한국인에게 땅과 집에 대한 애착이

남 다르다"는 전제였다.

한국인이 다른 나라 사람보다 더 집에 애착을 가진다니? 땅과 집은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기본적인 욕구다. 한국인에게만 해당할 리가 없다. 어느 나라에서든 로또에

당첨되면 집부터 바꾼다. 동양권에서는 예부터 사람의 기본적 욕구를 의식주(衣食住)로

규정했다. 입고 먹는 것과 함께 주거지가 사람 노릇하는 기본이라고 본 것이다.

지금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미국의 경제위기도 사실은 집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됐다.

AP통신의 브루스 헨더슨 기자는 최근 펴낸 <서브프라임 크라이시스>에서 미국의

경제위기가 ‘아메리칸 드림’에서 비롯됐다고 단언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딴 것이

아니다. 정원이 딸린 2층 집에서 온 가족이 오순도순 사는 것이다. 헨더슨에 따르면

미국인은 ‘집’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TV에서는 디자이너와 함께 집이나 방을 꾸미는 프로그램들이 단연 인기다. 성탄절에는

동화 속 그림처럼 집 안팎을 꾸민다. 이러한 아메리칸 드림을 쉽게 이루게 하는 ‘독과수(毒果樹)’에

누가 혹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대니얼 맥긴 기자는 최근 발간한 <집에 대한

갈망:미국인의 집에 대한 강박관념>이라는 책에서 최근 10년 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미국인은 어디를 가도 집 이야기를 하고, 집값을 감정 평가하고, 집을 살

계획을 세우고, 다른 집을 물색하고, 이웃의 집을 부러워하고, 대출기관을 바꾸고,

집을 살 사람을 감언이설로 꼬드겼다. 그런 시대였다."

어디서 본 듯하지 않은가? 문제는 집도, 집에 대한 애착도 아니다. 이 욕구가

한 발짝 더 나아가 재산증식의 손쉬운 수단이 될 때 뒤틀리고 꼬이는 것이다. 일본은

호되게 당했다. 중국에서도 수 십 년 전까지 개인 소유 주거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규제를 풀자마자 주택 투자 광풍이 불었다가 요즘 거품이 빠지고 있다.

흥미롭게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고지대의 집값이 비싸고, 저지대는 싸다. 자연재해를

피하려고 자연스럽게 고지대에 부촌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서울도 한때는 성북동,

한남동, 북아현동, 평창동 등 고지대가 부촌이었다. 또 공기가 맑아 건강에 좋은 주거환경에

있는 집, 대체로 좋은 공동체의 집값이 비싸다.

그런 집은 오래 머무는 집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은 부동산 거품이 빠지고

먼 훗날까지 생각하는 식으로 집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있다. 우리도 그렇게 돼야

정상일 것이다. 의학적으로도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따라서 부동산 거래가 식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 세금의

경우 부동산 거래 수익에 대해 중과세를 해야지, 재산에 대해 징벌적 과세를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인다. 좋은 집에 산다고 왜 벌을 받아야 하는가?

<이 기사는 한국일보 10월2일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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