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이야기

일상적인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모호한 표현을 쓸 때가 많다.

이런 대화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필요한 상상을 하게 만들 수 있다.

물론,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별로 심각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너무 분명한

이야기만 한다면 숨이 막혀 살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료를 할때도 의사나 환자가 모두 별로 특별한 인식 없이 모호한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문제가 되기 쉽다.

두통이 있는 울XX(혹은 X제닥)씨의 경우를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음…"바둑이가 뛰어다닌다"거나, "잡초를 뽑아야 한다"고까지

하면.. 이미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곳으로 가 버린 이야기이지만, (정신과로 보내야

할까….-  _ -;;)

보통의 경우에도 환자들은 두서없이 (모호한 표현들로) 증상들을 나열하기에 바쁘기

때문에, 의사들이 그 중에서 객관적 정보나 의학적 판단을 이끌어 내려면 상당한

추리를 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실제 환자의 상태와 의사의 이해 사이에

차이가 생겨날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의사쪽의 표현도 만만치는 않다.

환자의 증상 표현에 이어지는 의사의 말(주로 치료방법이나 계획)도 환자입장에서

듣기에는 너무나 짧고, 상당히 모호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환자 역시

많은 혼란을 겪게되고, 이는 불필요한 상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대화가 이루어지게 된 데에는 물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든

모호함으로 가득한 대화는 진료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환자-의사와의

신뢰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는 설령 아무리 진료를 길게 한다고 해도 제 자리를 맴돌 뿐,

무언가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을 것기 때문에 매우 답답할 것이다.

따라서, 진료 과정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이런 모호함을 최소화 하려는 방향에서의

접근이 있어야만 한다.

너무 길어서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제너럴닥터 식의) 대화위주의 진료는,

역설적으로 환자-의사간의 모호함을 해소해 진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많이 녹아 있는 것이다.

앞서 "바둑이가 머리속에서 뛰어다닌다"며 그저 "머리가 아파요"라고만

말하는 X제닥 환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공세를 피할 수 없다.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질릴 수 있겠지만,

누구나 병원 진료실에서 나올 때 느꼈을 "아, 이거 또 얘기 못했네"

하는 부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이런 방향의 질문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방향에서 집요하게 질문을 이어가면, 환자는 대답하기 위해 자신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까지 되짚어 생각하게 된다.

환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두서없던 표현을 정리하게 되고, 예전엔 알지 못했던

증상이나 상황간의 연결점을 찾기도 한다.

..

치료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서도 최대한 모호함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의 상태와 앞으로의 치료 계획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해주어야만 치료 효과나

속도가 환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자의적인 판단으로 진료를 종결해 버리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처음 진료와 처방 며칠 뒤에 follow up 할때면, 간혹 이런 환자가 있다.

 

"뭔가 나아지긴 하는 것 같다"고는 하지만, 증상의 정도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뭔가 혼란을 겪고 있는 환자.

좀 더 명확함이 필요한 이런 환자에게는 엄청나게 귀찮은 숙제를 내어 준다.

자신의 증상과 관련된 상황들, 그리고 증상의 정도를 객관화 하고 기록하기 위한

과정인데,

나같으면 질려서 못 할 것 같은 귀찮은 숙제임에도 신기하게 우리 환자들은 제법

잘해오는 편이다. (물론 학교다닐 때 밀린 숙제 하듯 구석자리에서 벼락치기로 일주일치를

쓰는 사람도 간혹 보이지만 – _ -;;)

그리고, 귀찮은 숙제를 마친 환자들은 하나같이 신기해한다.

자신의 증상을 확실히 알게되고, 증상의 악화요인이나 완화요인 등에 대해 스스로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보다 포괄적인 이해가 생기게 되면 환자의 태도는 더욱 적극적이고

참여적으로 발전하고, 자신의 질병과 증상에 대해 좀 더 명확한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되어 막연한 두려움으로 힘들어 하는 것이 줄어든다.    

사실 이런 진료 방식은 의사들에겐 익숙한 "정량화와 객관화"를 환자에게

요구하는 것일 뿐,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환자와 의사간의 상호성"을 지키는 대화를 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진료 과정과는 차별성이 있다.

진료과정에서 상호성을 지켜 나가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의사와 환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의사는 환자의 모호한 표현을 무시하면서 의사의 객관적 접근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표현 배후에 있는 사실들의 관계를 함께 찾아보자는 방향성을 지켜내야

하고,

환자는 자신의 증상이나 힘든 것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의사가 판단한 객관적

사실들에 대해서도 귀기울여 들으려 해야 한다.

아직은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에 확실한 이야기를 할 수 없지만

보다 많은 진료 자료가 누적된다면 이런 "환자와 의사간의 상호성"에

기반한 진료를 통해 모호함을 해소하는 것이 가진 치료적 효과에 대해서 연구가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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