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바닷가에서

얼마

전에 철 지난 바닷가에 식구들과 다녀왔다. 여름 내내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웠던 큰 아들, 하루가 다르게 부쩍 자라는 작은 아들, 아이들에게

마음은 있어도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늘 어색한 우리 집 대장과 언제나 제대로

엄마 노릇을 하고 있지 못한다는 자책감에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 나. 이렇게

넷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여 한적한 바닷가에 커다란 담요를 깔고 하늘과 바다만

바라보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노래도 부르면서 1박 2일을 보냈다.

그러나, 워낙 자기주장이 강한 시끄러운 집안인지라 차 안에서부터 몹시 시끄러웠던

이 짧은 나들이를 시작하면서부터 계획 없이 시작했던 이 여행을 꽤나 여러 번 후회했었다.

어느 집이나 사는 모양과 무늬가 다 그만그만 하겠지만, 우리 집도 전형적으로 바쁜

이민가정인지라, 차근차근하게 대화하기 보다는 각자의 주장을 빠르고 강하게 전달하는

데에만 익숙해져 있어 알게 모르게 작은 불만들을 서로에게 가지고 있었다. 나만

하더라도, “이제는 그만 주무세요”, “일어나세요” 하고 모셔야 하는 막내아들의

지독한 게으름을 한껏 미워하고 있었고, 우리 대장은 꼭 용돈 받을 때만 연락하면서

매우 바쁜 척하는 큰 아들의 얌체정신에 꽤 불만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우리 아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한번 시작하면 끝나지 않는 우리 부부의 잔소리에 꽤 질려있었던 것

같다.

여행길목에서 내려야 하는 소소한 작은 결정들, 심지어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

가에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삐거덕거리는데다가, 모두들 다 자기의 바쁜 시간

중에서도 서로에게 시간을 내준 것을 고마워하지 않는 것들에 화를 내며 종착지인

바닷가에 이르는 동안 최소 다섯 번은 이 길을 떠난 것을 다 같이 후회했다. 심지어

담요를 어디에 깔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까지 불협화음은 계속 이어졌는데, 신기하게도

그 작은 담요에 누운 이후부터는 높은 하늘과 망망한 바다 앞에서 우리의 갈등은

파도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윽고,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다 같이 아는 노래를 부르고 난 후에는

우리의 “게으름왕자” 도 “얌체대장”도 원래 갖고 있는 귀여움을 되찾은 듯 사랑스러워

보였다.

남편은 작은 아들과 낚시를 하고, 나는 큰 아들이 가지고 있던 고민, 희망 그리고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혹은 아무 생각 없이 같이 바다를 보거나 걸으면서 보냈는데,

그 짧았던 이틀이 지날 쯤에는 얼마나 서로에게 너그러워져 있었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여행 이후 남편은 아이들에게 조금 더 따뜻해지고, 큰 아들은 좀 더 자주 연락하며

가족 안부를 챙기게 되었다. 물론 나는 아직도 우리 막내 왕자님을 재우고 깨우는

임무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 철 지난 바닷가에서 느꼈던 따스하고 편안한 유대감은

앞으로도 오래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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