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물을 아끼는 지혜

문명의

혜택이 많지 않았던 시골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데다가 유난히 사람 좋아하고 털털한

나를 빗대어 남편은 학구적인 자신을 만나 유학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는 십중 팔구

강원도 산기슭에서 더덕 캐는 아낙네가 되어 있을 거라고 놀리곤 한다.  하지만

그런 놀림으로 약을 좀 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남편의 기대는 번번이 나의

그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맹렬하고 애 닯은 그리움에 맞닥뜨리고는 배반당하고 만다.

누구에게나 가지 못한 길과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애잔할 것이다.

마음 먹는다고 쉽게 되돌아 갈 수 없는 이 이국에서의 고향 생각은 조금씩 그 아름다움이

과장되게 마련이다. 내 고향 그리움도 종내는 유년 시절 고향에서의 재미있던 일들을

반추하는 추억 여행으로 나를 내몰곤 한다.

주로 지독하게 밀리는 출퇴근 고속도로에서, 혹은 별로 흡족하게 풀리지 않는

연구 논문과의 씨름 끝에 뿌옇게 흐린 볼티모어 하늘을 보며 시작하는 그 추억 여행에서

고고학자들이 보물을 캐듯 나도 예기치 못한 추억의 보물을 캘 때가 가끔 있다. 그

회상의 한 켠에서 어저께인가는 정말 잊고 있었던 ‘종자물’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내곤

몹시 반갑고 기뻤었다.

상수도가 보편화된 이후의 세대는 알기 어려울 터인데, 물을 퍼내기 위해 펌프질을

시작할 때에 꼭 넣어야 하는 한 바가지쯤의 마중물을 내 어릴 적 고향에서는 종자물이라

불렀다. 그 종자물은 어떤 집이든 우물 옆에서 마지막까지 쓰지 않고 남겨져 있던,

이를테면 물의 ‘씨앗’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덜렁거리기 선수인 나는 어린 시절 철없이 이 종자물을 야금야금

마시다가 어머니에게서는 꿀밤을 맞고,  아버지한테서는 ‘씨앗은 절대 쓰지

않는 농사꾼의 삶의 원칙’에 대해 일장 훈시를 듣던 기억이 있다.

‘종자물’이라는 추억의 어휘로 시작된 두서 없는 상념은 앞만 보고 달리는 나

자신과 조금씩 무리하면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를 되돌아보게 했다. 그런 자화상를

떠올리다보니, 다음 세대의 편안한 뿌리내림을 위해 우리들 1세들이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육체적, 정신적 펌프에 꼭 필요한 마지막

종자물을 축내며 살고 있는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희생을 감수하는 데 익숙한 우리들은 휴가는 물론 주말도 없이 일한다. 아이들

과외비는 당연한 지출이지만 자신을 위해 의료보험을 사서 정기 진찰을 받는다는

것은 왠지 사치인 것 같은 생각을 하는 우리 1세들의 모습은 어쩐지 종자물을 야금야금

축내며 ‘이 정도만 남겨도 다음번 물을 푸는 데는 지장 없겠지’ 하던 나의 철부지

시절 모습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

그뿐이랴,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의 만성병들이 시작되는 조짐이 있는 분들도 ‘한번

약을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하니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견디다가 시작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치료를 미루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그런 분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치료를 미루고 있는 사이에 높은 혈압은 사정없이 다른 주요 장기를 손상시킨다.

그러므로 치료를 미루다가는 아무리 ‘나중’에 치료를 잘 받는다 해도 생명의 단축까지를

포함한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함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자각 증상이 없기 때문에 고혈압 치료를 하루하루 미루는 것은 시간을 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철부지 시절의 나처럼 종자물을 야금야금 마시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아직도 시간이 아까워서 고혈압 치료나 관리를 주저하시는 분들은 더 이상 본인의

몸을 걸고 하는 도박을 멈추고 몸을 돌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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