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장애인 주차장공간, ‘비장애 얌체족’이 점거

정작 장애인은 주차못해 발 '동동'

보행장애 3급인 김정규(37. 가명) 씨는 병원에 갈 때마다 주차 때문에 곤혹을

치른다. 장애인 주차장이 마련돼 있지만 빈자리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할 수 없이 일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어렵사리 병원 건물까지 걸어 오면서 또 한

번 얼굴을 붉힌다. 멀쩡한 사람이 장애인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나가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주차장법, 장애인편의증진법 등에 따르면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의 시설주는

주차수요를 감안해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가 정하는 비율 이상을 장애인전용주차장으로

운영해야 한다.

병원들은 현관과 가장 가깝거나 병원을 이용할 때 가장 편리하게 움직일 수 있는

곳에 장애인 주차장을 설치해 놓고 있다. 휠체어가 움직이기 쉽도록 방지턱도 낮추고

경사로도 설치해 놨다. 일반 차량이 장애인전용주차장을 이용할 수 없게 주차요원이

입구에서부터 막는 병원도 있다.

일반인이 장애인보호자용 표지를?

병원에서 실제 장애인이 주차장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이유는 바로 ‘장애인보호자용’

표지를 단 일반인 운전자들 때문이다. 가족 중에 보행장애 장애인이 있을 경우 보호자도

장애인자동차표지를 부착할 수 있다. 하지만 장애인이 탑승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장애인자동차표지가 있다고 해도 장애인용 주차장을 이용할 수 없다는 법률 조항이

있다.

한 병원 장애인주차장에서 장애인자동차표지를 부착한 차에서 내리는 비장애인들에게

‘위법 아니냐’고 묻자 대부분은 ‘부모님 모시러 왔다’ ‘가족 중 장애인 있어

지금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고 대답했다. 병원에 들어올 때나 병원에서 나갈 때

이들 승용차 대부분에는 장애인이 타고 있지 않았다.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배융호 사무총장은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은 꼭 필요한

사람만 이용해야 한다”면서 “이용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그 곳을 이용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한데, 우리 사회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성숙되지

않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일일이 장애인인지 확인할 수 없는 현실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의 한 주차관리원은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장애인인지 확인하는 것 자체가 껄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현관에 내려주고

주차를 하러 온 것이라고 얘기하면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경희대 동서신의학 병원의 한 주차 요원은 “나라에서 장애인주차장을 이용하라고

노란색 표지를 발급한 것인 만큼 장애인이 타지 않았다고 우리가 차를 대지 말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배융호 사무총장은 “보행 장애인이 동행한 차량은 사실상 식별이 불가능하다는

제도의 헛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평가하고 점검만?

장애인주차장 이용에 관한 모든 사항이 지방자치단체에 이양돼 있고 중앙 정부는

지자체가 잘 운영하고 있는지 평가하고 점검만 한다.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장애인주차장

단속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1, 2명 밖에 되지 않는다. 일손이 모자라기 때문에

주차장 시설주나 관리인, 장애인 단체를 신고 인력으로 활용한다.

보건복지가족부의 실태 파악 결과 이들 관련 단체의 신고 및 계도 안내문 발부

건수가 공무원이 단속하는 건수의 약 10배 정도다. 지자체가 민원을 의식해서 실질적인

단속을 기피한 결과다. 단속을 게을리 한다고 중앙 정부에서 지자체에 부과하는 벌칙이나

조치도 없다.

보건복지가족부 장애인권익증진과 강병찬 주무관은 “장애인주차장 문제는 중앙정부도

어느 정도는 인식하고 있다”면서 “개선안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병원들도 장애인주차표지 악용에 대해서는 실질적으로 손을 놓고 있다. 한 병원

관계자는 “환자나 보호자와 주차 문제로 문제가 생기는 것 자체가 병원 이미지에

좋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장애인주차표지 악용…300만원이하의 과태료

장애인주차구역을 일반인이 이용할 때는 과태료가 10만원이지만 장애인주차표지를

악용하는 행위는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과태료

부과에 대한 통계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배융호 사무총장은 ‘사람’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장애인에게

주차가능표지를 발급해 다른 사람의 차를 타더라도 장애인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고,

보호자라 해도 장애인이 탑승하지 않을 때는 이용할 수 없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행장애인인 김정규 씨는 “일반인이 장애인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얼굴이

화끈거리도록 부끄럽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야 한다”면서 “장애인주차장을 만들어

놓는 것뿐만 아니라 장애인이 이용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평등”이라고

말했다.

    강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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