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팬 사회의 애어른 신드롬

인터넷 시대 무책임주의, 인격장애의 다른 모습

150㎝가 안 됐다는 영국의 작가 제임스 배리는 영원히 늙지 않는 소년 ‘피터

팬’을 창조하고 1937년 오늘, 77세를 일기로 결코 돌아오지 못할 ‘네버랜드’로

떠났다.

피터 팬은 배리가 1902년 발표한 소설 <작은 흰 새>를 2년 뒤 희곡으로

만든 것이다. 1953년 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선을 보였으며 최근까지 숱한

영화감독을 먹여 살렸다. 폴커 슐뢴도르프 감독의 영화 <양철북>에서 성장을

멈춘 오스카가 어두운 소년이라면 피터 팬은 밝은 소년이다.

비평가들에 따르면 피터 팬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배리의 친구 아서 데이비스의

자녀들을 모델로 했다. 다만 웬디는 배리의 또 다른 친구 W. E. 헨리의 딸을 모델로

삼았으며 이전에는 여자애 이름으로 쓰이지 않았는데 이후 흔한 이름이 됐다고 한다.

피터 팬은 1980년대 우리나라 기업의 입사시험과 TV의 퀴즈 쇼에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의 실존심리학자 댄 카일러의 피터 팬이었다.

카일러는 1970년대 후반부터 미국 젊은이들을 주목했다. 그는 애어른이 도처에

나타나는 것을 포착, ‘피터 팬 신드롬’으로 명명했다. 카일러는 “애어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과보호 속에서 자라나 매사에 무책임하며 남과의 관계에 소홀한 데다

근로의 가치를 모른 채 사회에 내던져져 하는 일마다 자신이 없고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피터 팬 증후군의 3대 특징을 무책임, 불안, 고독으로 규정 지었다.

만약 카일러가 2008년 대한민국에서 지낸다면 우리나라 어른들을 또 다른 피터

팬으로 파악하지 않았을까? 사회의 창이라고 할 수 있는 인터넷에서는 숱한 애어른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근거가 없는 이야기를 던져놓고 ‘아니면 말고’ 식이다. 자신의 댓글에 상처받은

사람이 자살을 해도 ‘나는 상관없다’다. 20~50대가 ‘초딩’, ‘중딩’과 뒤엉켜

막말을 하며 싸운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지기보다는 남 탓만 한다.

정신의학에서는 애어른은 인격의 독립성과 자존감이 부족해 생긴다고 설명한다.

이런 성향이 심각하면 인격이 미숙한 ‘인격장애’로 나타난다.

자아가 확고하지 않으면 불안해질 수밖에 없으며 타인을 의식하고 군중에 매몰되기

쉽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이 1950년 펴낸 <고독한 군중>에서 “타인

지향적 인간은 고독을 두려워한다. 그 고독을 완화하기 위해 군중 속에 파묻히기도

하고 또 거울을 바라보는 것처럼 자신에 대한 환상에 빠지기도 한다”고 갈파했는데,

한국의 많은 어른들에 해당하지 않을까?

애어른은 개인적 이슈보다는 거대담론에 잘 휩쓸리고, 집단의 판단이나 유행,

흐름에 따라갔다가 나중에 잘못되면 남 탓, 사회 탓을 하는 특성이 있다.

어른이 줄어드는 것은 권위의 해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또 옛날에는

개인이 많은 형제 사이에서 크며 독립성과 사회성을 함께 배웠는데, 그럴 기회가

줄어들었다.

어른을 만드는 데에는 부모와 학교 모두 중요하다. 칭찬을 통해 자긍심을 갖도록

도와주고 남에 대한 배려, 참고 기다리는 자세를 가르쳐야 한다. 식당에서 떠들지

않는 것, 목욕탕에서 샤워부터 하고 탕에 들어가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또 주입식 교육 대신에 여러 사실을 갖고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어른이

아이를 가르쳐야 하는데, 애어른이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꿈나무들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이 칼럼은 한국일보 6월 19일자 ‘삶과 문화’에 게재됐던 것입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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