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밥’을 먹고 싶다

이제 6월 한 달 잠은 다 잤습니다. 밤엔 눈이 반짝반짝하다가, 낮엔 눈이 풀리고 맥이 빠져 일이 손에 제대로 잡힐까 걱정입니다. 그 놈의 ‘유로

2008’ 축구 때문입니다. 안 보자니 궁금하고, 보자니 낮에 흐느적거립니다.

‘소주와 삼겹살’로 자라난

한국남성

그렇습니다. 뭘 좀 먹어야 합니다. 어차피 경기는 새벽에 대부분 몰려 있습니다. 초저녁 삼겹살에 소주를 한잔 때리고 일찍 한잠 자

두면 어느 시러배 자식이 뭐라 하겠습니까! 스가바알~ 새벽에 눈 부비고 일어나 텔레비전에 코 박으면 뭐가 문제이겠습니까!

사실

한국남자들을 키운 건 팔 할이 소주와 삼겹살입니다. 아버지 세대는 막걸리에 풋고추가 소주와 삼겹살을 대신했습니다. 텁텁한 막걸리 한 사

발 “쭈욱~” 들이킨 뒤, 텃밭의 풋고추 “뚜욱~” 따다가, 된장에 “푸욱~” 박아 먹으면 됐습니다. 그분들은 그렇게 그 모질고 힘든 세월을 보냈

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70~80년대의 황음무도한 시대를 소주에 절어, 불판에 삼겹살을 구우며 보냈습니다.

니기미! 70년대 초반만

해도 삼겹살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어쩌다 잔칫날이나 되면 돼지갈비 한 조각 먹어볼까 말까. 허, 그런데 긴급조치인가 뭔가가 열혈청년들을

마구 잡아갈 즈음, 이 골목 저 골목 삼겹살 굽는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80년대에는 온 나라가 삼겹살 굽는 냄새로 코

를 찔렀습니다. 도봉산 골짜기부터 지리산 뱀사골까지 삼겹살 굽는 냄새가 진동하지 않는 곳이 었습니다.

그리워라, 땅

심 담긴 채소로 싸먹은 상추쌈밥

삼겹살은 그냥 먹으면 맛이 없습니다. 상추로 싸먹어야 합니다. 한입 가득 넣고 눈을

흘기며 먹어야 꿀맛입니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쌈밥이 생각납니다. 저절로 입에 침이 굅니다. 어릴 적 시골집 평상에 온 식구 둘러앉아, 서로

눈 흘기며 먹던 상추쌈밥. 그리워라, 그 소박한 밥상 공동체.

텃밭에서 갓 따온 상추에 막된장 한 숟갈 떠서 싸 먹던 밥맛은 이제 죽

었다 깨어나도 맛볼 수 없습니다. 도회지 상추는 겉만 번드르르하지 텃밭 상추처럼 고소한 향기가 없습니다. 기세등등한 ‘대지의 땅기운’을 맛

볼 수 없습니다.

시인 박형진은 행복합니다. 텃밭 상추에다가 보리밥을 싸먹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너무 합니다. 세상에 원,

무슨 상추를 한번에 7, 8장이나 싸먹습니까? 입이 얼마나 크면 그걸 한입에 다 넣습니까?

“일곱여덟 장의 상

추 위에 밥 한 숟가락 푹 퍼 담고, 보리 새우젓 반 숟갈 넣고, 또 밥 반 숟갈 정도 퍼 얹고, 된장 조금 넣고 켜켜로 싸면 간이 고루 잘 맞아서 좋

다. 이걸 양 손에 들고 밥태기 뚝뚝 떨어뜨리면서 두 눈 부릅뜨고 우적우적 씹어야 제 맛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세 번만 싸면 배가 부르

기 시작하고 다섯 번 싸면 볼이 아프니 밥 한 그릇이 어느새 다 없어진다. 지금은 사시장철 마음만 먹으면 상추를 먹을 수 있지만 상추도 여름

뜨거운 햇볕을 먹고 텃밭에서 고실고실 자란 것이라야 맛이 있는 것이다.(…)

아침 일찍 보리쌀을

물 무쳐서 삶으면 보리쌀 바구니에 반절 퍼놓고 반은 그대로 솥에 둔 채로 물을 알맞게 잡아서 두벌 째 불을 땐다. 끓으면 이걸 한참 놔뒀다가

다시 세 번째 자치는 불을 때야 잘 퍼진 보리밥이 되는데 여름에 끼니때마다 밥하기가 고역이기 때문에 아침에 밥을 나수해서 밥 바구니에 퍼

놓고 점심까지 두고 먹는다.”

<‘변산바다 쭈꾸미통신’, 박형진 지음, 소나무>

새콤쓸콤 하달까, 표현 어려운 죽여주는 맛

젠장, 상추만 많이 싸서 먹으면 장땡인가. 빠진 게 있습니다. 쑥갓도 넣어

야 합니다. 쑥갓의 그 향긋하고 담백한 맛은 쌈밥을 백배 천배 맛있게 합니다. 또 있습니다. 생마늘도 한쪽 넣으면 그 깨무는 맛이 쏠쏠합니다.

요즘 같은 여름엔 텃밭의 햇마늘이 딱입니다. 햇마늘은 맵지도 않고 초여름의 풋풋함이 솔솔 납니다.

꼭 상추로만 싸서 먹을 것도 아닙니다.

야생 곰취나 호박잎, 머위잎을 살짝 데쳐서 싸 먹어도 죽여줍니다. 야생 곰취는 진한 솔잎 향 같은 게 온 입안을 행복하게 해줍니다. 혀끝에 살

짝살짝 걸리는 머위 잎의 약간 쓴맛은 또 어떻습니까. 텁텁하지만 풀냄새 감도는 호박잎도 일품입니다.

볶은 콩가루와 밥을 버무려

주먹밥을 만든 뒤 그것을 살짝 데친 머위잎이나 호박잎으로 싸먹는 맛은 새콤쓸콤 뭐라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호박잎의 약간 꺼끌한 면이 혓

바닥이나 입천장을 살짝살짝 스치는 것도 덤으로 얻는 즐거움입니다.

“고구마순으로 나물을 할 땐 껍질을

벗기지 말고 그냥 쪄서 무쳐야 제 맛이 난다. 그것도 두벌 불 때는 보리밥 솥에 쪄서 밥물에 익은 것을, 맛있는 젓국과 약간의 된장기와 파 마

늘 고추장을 풀어서 주물러야 제 맛이 나지 요즘같이 맹물에 쪄서는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맛이 나지 않는다. 호박은 반쯤 갈라 넙적넙적하게

썰고 가지는 통째로 밥솥에다 찐다. 반드시 보리밥 두벌 불 땔 때 쪄서 자칠 때 꺼내어 무치는데 호박은 갖은 양념 후에 수저로 뚝뚝 버무리면

굳이 칼로 썰지 않아도 적당한 크기로 갈라진다. 가지는 꺼내어 손으로 찢어서 무쳤다.(…)

김장 김

치는 먹다가 철 지나면 군내가 나는데 이럴 때 물에 반쯤 빨아버리고 밥솥에 찌면 참 먹을 만했다. 배추김치 찐 것도 맛이 있지만 쪄 먹는 김치

는 무김치가 더 맛이 있다. 솥에서 누룽지 긁어 바가지에 담아 부뚜막에 놓고 쪼그리고 앉아서 무김치 척척 걸쳐 먹는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된장 풀고 끓일 것도 마땅찮을 때는 된장 그 자체를 찌는 것이다. 된장을 물에 개어서 파

마늘 양념하여 밥솥에 쪄서 상에 올리면 밥 비벼 먹기가 그것같이 허물없을까? 밥물이 약간 넘어 들어가 삼삼해진 그 된장 맛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면 들나물 산나물도 된장이요 바다나물도 된장, 끓이고 지지는데도 된장이요

체하고 멍든 데도 된장, 쌈에도 된장, 생선회도 된장을 찍어 먹는 데가 있고 개장국도 된장끼를 하지 않으면 개비린내를 없앨 수가 없으니 이

된장이야말로 시골이고 도시이고 간에 김치와 더불어 반찬으로서는 최고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해야겠다“

<‘변산바다

쭈꾸미통신’, 박형진 지음, 소나무>

배부른 줄 모르고 먹었던 찐음식

그렇습니다

. 우리 어머니들은 웬만한 것은 모두 밥솥에 쪘습니다. 밥물에 익혔습니다. 계란찜 하나도 밥물이 뱄습니다. 새우젓 간에 파와 빨간 고추를 썰

어 넣은 뒤 밥솥에 찐, 밥물이 살짝 들어간 계란찜이라니…. 소금으로 간을 맞춘 밍밍한 가스 불 계란찜이 어디 감히 여기에 명함을 내밀 수 있

겠습니까?

밥풀이 덕지덕지 붙은 고구마나 감자가 그냥 삶은 고구마나 감자보다 얼마나 맛있는 줄 요즘 아이들은 알기나 할까요?

밥물이 밴 가지나물을 손으로 쭉쭉 찢어 통깨 좀 넣고 참기름에 조물조물 무쳐 먹으면 또 얼마나 맛있는지 알기나 할까요?

찬밥 한

덩이에 찐 가닥김치 척척 걸쳐서 먹으면 그 맛은 또 어떻습니까? 아예 밥과 상큼한 채소를 함께 솥에 찌는 경우도 있습니다. 쑥밥, 무밥, 콩나

물밥이 그것입니다. 이때는 밥을 좀 질게 해야 합니다. 파를 썰어 넣은 참기름 친 양념조선간장에 쓱쓱 비벼 먹습니다. 아하, 혀끝에 걸리는 콩

나물 냄새와 쑥 냄새. 씹는 맛, 깨무는 맛에 배부른 줄 모릅니다. 여름 내내 보리밥 물 말아서 고추된장 점심 먹고 싶습니다. 구수한 밥물에서

익은 것들, 밥풀이 흰 수염처럼 덕지덕지 붙은 하지감자 먹으며 축구경기를 보고 싶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우우우 솟구

치는 밥

뭐니 뭐니 해도 우선 밥맛이 좋아야합니다. 밥맛이 좋으면 김치 한가지로도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세

상에 끼니때마다 밥 지어 먹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더구나 솥에 직접 불 때서 밥 짓는 사람은 눈 씻고 봐도 찾기 힘듭니다.

보온

밥솥에서 ‘식은 땀’ 줄줄 흘리고 있는 죽은 밥 덩어리. 아침에 한번 전기밥솥에다가 밥을 해놓으면 저녁 늦게까지 그걸로 때우면 그만입니다.

심지어 그 다음날 찬밥으로 먹는 수도 많습니다.

사먹는 식당 밥이야 뭐라 말로 할 수도 없습니다. 스텐리스 그릇에 꽉 눌려 담긴 밥.

찰기라고는 전혀 없이 그냥 덩어리로만 뭉쳐있는 죽은 밥. 전쟁터의 주먹밥이 그만 못할까요.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밥, 더운 기운이 우우우

용솟음치는 밥,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밥을 먹고 싶습니다. 하다못해 따뜻한 아랫목에 꽃 보자기 쓴 채 다소곳이 일 나간 식구를 기다리고 있

는 ‘아랫목 고봉밥’을 먹고 싶습니다.

“가마솥의 진가는 무쇠라는 데에 있다. 두껍고 무거우며 잘못하면 녹이

슬 수 있지만, 열전도율이 높아 사면에서 고루 열을 내보내고 열을 오래도록 지니고 있으며 무거운 뚜껑이 위에서 착 눌러주는 진짜 무쇠 솥이

아니고서는 밥맛은 제대로 나지 않는다.(…)

솥이 뜨거울 때 김이 펄펄 나는 밥을 싹싹 긁어 푸고

나면, 달구어진 밥솥 밑바닥에 노란 누룽지가 바작거린다. 숟가락으로 긁어 과자처럼 먹기도 하지만 대개는 물을 부어 숭늉과 함께 먹는다. 무

쇠 솥에서 나온 숭늉과 눌은밥은 어디에도 견줄 수가 없다. 특히 잡곡밥을 지으면 숭늉이 더 맛있다. 기장이나 차조도 맛있고 여름에는 보리도

좋은데, 나는 특히 서리태 콩을 좋아한다. 흔히 검은 콩이라고 부르는 흑태에 비해 굵고 속이 초록빛이 도는 이 콩은 서리 내릴 때쯤이야 거둘

수 있다고 해서 서리태라고 부른다.

흑태나 밤콩, 심지어 알록달록한 선비콩과 비교해서도 맛이

월등하고, 그래서인지 값도 비싸다. 이 서리태 콩을 불려 밥에 두면 밥맛이 달착지근하고 눌은밥과 숭늉은 아주 구수해진다.”

<‘팔방미인 이영미의 참하고 소박한 밥상 이야기’, 이영미 지음, 황금가지>

금욕보다 ‘억

압된 식욕’이 훨씬 끔찍한 고통

이영미는 대단합니다. 요즘 세상에 무쇠 솥에 불을 때 끼니때마다 밥을 해 먹다니…. “치

익~치익~” 밤새 땀 흘리며 설설 끓는 무쇠 솥. 거기에 불 때서 밥하면 얼마나 찰지고 맛있을까. 일단 밥맛을 아는 사람은 숙수(熟手)가 될 자

격이 있습니다. 하기야 그의 고백을 듣고 보면 그럴 만도 합니다.

“나는 영화 ‘음식남녀’나 방송 드라마 ‘맛있는 청혼’ ‘대장금’ ‘내

이름은 김삼순’ 같은 것을 보면서, 내용과 무관하게 화면 속의 음식들이 불러일으키는 식욕을 견딜 수 없어 하면서 ‘이건 정말 포르노야!’라고

중얼거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드라마가 끝난 11시에 잠을 청할 때면 눈앞에 아른거리는 음식들을 자꾸 지워버리면서 프로이트 주의자들

이 말하는 억압된 성욕보다 억압된 식욕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실감했다.”

동감입니다. 누가 어디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

고 왔다는 말만 들어도 입에 침에 고입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습니다. 안절부절 못합니다. “허 참”하며 입맛을 다십니다. 물론 이영미도

한 음식 합니다.

장마철, 말캉한 애호박전에 청주 한잔 걸치면

6월 호박은 답니다. 단물이 쩍쩍 올

라와 애호박요리를 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이영미는 애호박전을 권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애호박 음식의

최고는 애호박전이다. 야들야들하고 고운 색, 행여 다칠세라 조심조심 따온 호박의 그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 바로 애호박전이다. 부쳐

놓은 호박전은 선명한 풀초록빛 애호박이 노란 달걀옷 안에 싸여 있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취향에 따라 약간 말캉한 애호박전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사각거리는 신선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속이 말캉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

이라면 호박을 둥글납작하게 썰어 소금을 뿌려 한풀 꺾이도록 조금 놔둔 후 부치면 된다. 혹은 불에 올려놓은 후 좀 낮은 온도에서 부치면 속

이 말캉하게 된다.

나는 사각거리는 신선한 맛의 호박전을 더 좋아한다. 가운뎃 부분은 말캉하고

겉의 풀초록색 부분은 사각거림이 남아있는, 그 절묘한 조화가 좋다. 이런 호박전을 하려면 썰자마자 호박에 조금 소금 간을 하고서는 빨리 부

쳐야 한다. 모든 전이 다 그렇지만 밀가루는 묻히자마자 탈탈 털어서 쓸데없이 밀가루가 미끈거리지 않게 해야 한다. 이런 따끈한 애호박전에

입에 짝 붙는 청주 한잔 곁들이면 늦여름에 부러울 것이 없다.”

<‘팔방미인 이영미의 참하고 소박한 밥상 이야기’, 이영미 지

음, 황금가지>

비 오는 날 따끈따끈한 애호박전에 청주 한잔이라. 거 참, 자꾸 신경이 쓰입니다. 입맛이 땡깁니다.

고추 숭숭 썰어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 애호박국도 괜찮습니다. 기름이 둥둥 흐릅니다. 거기에 식은 보리밥 한 덩이씩 말아 먹으면 트림이

“끄~윽” 나옵니다. 호박국은 따뜻해야 맛있습니다. 식으면 영 아닙니다. 식어빠진 콩나물 해장국을 먹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지릿한 홍어, 홍어보릿국, 홍어무침 ‘속 후련한 맛의 혁명’

서산에 해 뉘엿뉘엿,

땅거미 어둑어둑 내리면 지릿한 홍어가 생각납니다. 어디 잘하는 홍어집에 가서 바지무릎 걷어 올리고 막걸리에 홍어회를 ‘코 싸아’ 하게 먹고

싶습니다. 코 삐뚤어지게 술 마신 다음 날, 시원한 홍어보릿국으로 해장하고 싶습니다.

파란 보리 싹을 잘라 된장에 잰 뒤 홍어 내장

(홍어애)을 넣어 끓이면 홍어보릿국입니다. 보리 싹의 풋풋한 풀냄새와 구수한 된장 맛이 뱃속의 폭탄주 독기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버립니

다. 요즘처럼 보리싹이 없을 땐 부추나 고구마순을 넣어 끓이기도 합니다.

홍어는 전라도말로 ‘개미’가 있습니다. 개미란 ‘그늘을 친

다’라는 뜻입니다. 그늘이 있는 음식 즉 삭힘새(곰삭은)가 있어야 음식은 맛있습니다. 사람도 그늘이 좀 있어야 인간적이지요. 맨날 양지만 밟

은 사람들은 좀 거시기 합니다. 시큼하게 삭힌 홍어찜. 시금털털한 홍어회. 고춧가루, 통깨, 참기름, 마늘, 생강, 풋고추, 파 등을 다진 조선간

장 양념에 찍어 먹으면 입에 쩍쩍 달라붙습니다. 삼합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우선 날고기 비스무레한 것

에 돼지 삽겹살을 겹쳐서 손으로 찢은 김치에 둥글게 싸서는 입 안에 넣었다. 한 입 씹자마자 그야말로 오래된 뒷간에서 풍겨 올라오는 듯한

가스가 입 안에서 폭발할 것처럼 가득 찼다가 코로 역류하여 푹 터져 나온다. 눈물이 찔끔 솟고 숨이 막힐 것 같다. 그리고는 단숨에 막사발에

넘치도록 따른 막걸리를 쭈욱 들이킨다. 잠깐 숨을 돌리고 나면 어쩐지 속이 후련해진다. 참으로 이것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

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 버리는 맛의 혁명이다. 말 그대로 어리떨떨하다가 정신이 번쩍 나는 것이다.(…)

홍어찜은 날것보다는 덜해도 가스는 여전해서 코를 탁 쏘는 맛은 회에 못지않다. 삭힌 홍어를 갖

은 양념하여 다른 물고기 찜을 하듯이 뭉근하게 쪄서 내는데 살과 뼈를 모두 함께 먹을 수가 있다. 잔뼈가 많이 들어있는 지느러미께는 마치

중국요리의 삭스핀처럼 부드럽고 아작거리는 맛이 그만이다.”

<‘황석영의 맛과 추억’, 황석영 지음, 디자인

하우스>

‘전주식 홍어무침’도 있습니다. 목포의 삼합이나 홍어회도 맛있지만 전주식 홍어찜이나 홍어무침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잘게 썬 홍어에 배와 미나리 등 상큼한 야채, 그리고 갖은 양념을 넣어 버무리면 홍어무침이 됩니다. 입에 살살 녹습니다. 전주

사람들은 팍 삭혀 입천장이 데일정도로 톡 쏘는 홍어회보다는, 은근한 홍어무침 같은 것을 좋아합니다. 홍어찜도 목포식과 약간 다릅니다. 찌

는 거야 같지만 조선간장으로 만든 양념이 좀 다릅니다. 아무래도 중간 삭힘에 맞는 양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죽었던 입

맛까지 새록새록 살리는 토하젓

토하젓은 장인어른이 이걸로 밥을 비벼먹다가 사위가 오면 얼른 벽장 속에 감춘다는 젓

갈입니다. 아무리 사랑스러운 사위지만 이것만은 결코 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입안에서 사르르 녹습니다. 전라도에서는 징게미 젓이

라고 말합니다.

징게미는 바로 민물새우를 말합니다. 한여름 입맛이 뚝 떨어져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을 때, 대바구니에 말려 고실

고실 해진 보리밥에 열무김치와 토하젓을 넣고 쓱쓱 비벼 먹으면 죽었던 입맛이 새록새록 살아납니다. 한 그릇 더 먹는 것은 기본이고 세 그릇

째 먹을까 말까, 밥그릇 든 채 한참 망설이게 됩니다. 한국의 ‘3대구라’ 황석영도 토하젓에 깜박 간 모양입니다.

“토하젓은 전남 장성 것을 옛적부터 으뜸으로 치는데 민물새우로 담근 젓이다. 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을 모아 둔 저수지에

서 채로 떠내는데, 내장이 비칠 정도로 말개서 가뭇가뭇 눈의 검은 점들로만 분간을 할 수가 있을 정도이다. 이것들을 소금 넣고 절이면 익힌

것처럼 이내 붉은 색으로 변한다.

요즘은 도시 사람들에게도 알려져서 토하젓이라고 유리병에 조

금씩 넣어 판매하고 있지만 새우의 몸집이 모조리 분해되어 뭉그러져 있다. 진짜배기 토하젓은 새우의 몸체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야 싱

싱한 향내가 난다. 젓갈이 콤콤하겠지 같잖게 향내라니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토하젓을 집어 씹어보면 몸이 탁탁 터지면서 향긋한 흙냄새

가 난다. 그래서 토하젓이다.

흙냄새가 나지 않는 토하젓은 일반 새우젓이나 다를 바 없다. 이 토하

젓을 한 젓가락씩 집어다 밥에 살살 비벼 먹으면 기가 막힌데, 얼른 먹어야지 비벼서 잠깐 놓아두면 이내 밥알이 삭아버린다. 그래서 소화제라

고도 부른다.”

<‘황석영의 맛과 추억‘ 황석영 지음, 디자인 하우스>


농약향긋한 흙내 나

는 민물새우, 어디서 自生하리…

하지만 요즘 진짜 민물새우를 어디 가서 볼 수 있겠습니까? 흙냄새 나는 징게미를 어

디서 잡을 수 있겠습니까? 수족관에서? 아니면 항생제 먹여 키우는 양식장에서? 광어니 도다리니 농어니 심지어 전어까지 모조리 바다양식장

에서 대량 생산되는 세상인데 어디서 자연산 토하젓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비무장지대(DMZ) 안에는 민물새우가 살고 있을까요?

“왕새우는 에콰도르, 온두라스, 과테말라, 멕시코,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중국

등에서 양식된다. 육식성인 왕새우를 빨리 키우기 위해서는 단백질 사료를 공급해야 하는데 그 사료는 대부분 물고기다. 양식장에 항생제를

풀어 넣어야 함은 물론이다.

결국 농약 항생제 살균제 그리고 밀집한 왕새우들에게서 나오는 요산

등이 양식장에서 강과 바다로 방출된다. 중국, 태국, 베트남, 파키스탄, 인도네시아산(産) 양식 왕새우에서 암을 발생시키는 클로람페니콜과

니트로퓨란 항생제가 검출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희망의 밥상’ 제인 구달 지음, 김은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농약·항생제·유전자 변형, 먹을

것 없는 독한세상

알고 보면 아

무것도 먹을 게 없습니다. 매년 거의 300만 톤의 농약이 지구에 뿌려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만 매년 6700만 마리의 새들이 농약으로 죽어갑

니다. 사람들은 그 농약으로 키운 채소를 먹고 삽니다. 아무리 씻고 껍질을 벗겨서 먹어도 농약은 사람 몸에 들어가게 돼있습니다.

유전자변형 작물은 더 위험합니다. 많은 수의 유전자작물은 자기 몸의 모든 세포 안에 살충제성분과 제초제 성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령 구

멍을 뚫고 들어오는 벌레를 쫓아내기 위해 옥수수 씨앗에는 자체적으로 살충 성분을 생산하도록 유전자 변형이 돼 있습니다.

이 독

성은 사람 위산에도 녹지 않습니다. 농부들이 제초제를 뿌려도 다른 것은 다 죽어도 이 옥수수만은 끄떡없습니다. 미국에서 재배되는 콩의

80%는 바로 이 유전자가 변형된 것입니다. 유전자 변형작물은 아무리 물에 씻거나 껍질을 벗겨 먹어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소, 돼지, 닭 등 모든 육류가 공장식 사육장에서 대량 생산됩니다. 이러한 고기공장에선 유전자 변형 곡물과 죽은 동물의 사

체를 갈아 만든 사료를 먹입니다.농약과 항생제 호르몬으로 범벅이 된 사료를 억지로 먹이는 것입니다. 당연히 육류에는 온갖 종류의 농약과

제초제 화학비료가 그대로 쌓여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고기를 맛있다며 비싼 돈을 주고 아귀아귀 먹습니다.

생선이라고 어디 안

전합니까? 바다는 이제 폐허가 돼 갑니다. 수은이 가득합니다. 가두리 양식장에서 키운 생선회는 한마디로 항생제 덩어리입니다. 양식 연어는

조리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숟가락으로 그 살을 떠낼 수 있을 정도로 살이 무른 경우도 발견됐습니다. 어떤 것은 비장이 딱딱하게 굳어 있거나

간이 오렌지색으로 변색된 것도 있었습니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양식 생선회에는 성인남자의 정자 수를 감소시키고 암의 발병을 부르는

다이옥신이 많이 들어있었습니다.

어느 나라 것이든 건강한 소고기를 먹어야

왜 삽니까. 이밥에 고깃국 먹으며 가족

들과 도란도란 행복하려고 사는 게 아닙니까? 왜 독 덩어리를 사먹습니까? 어머니가 텃밭에서 키운 채소반찬에 시래기된장국 한 그릇. 그건

이제 꿈입니다. 끼니때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던, 하얀 사기그릇에 담긴 머슴고봉밥. 그건 이제 신기루입니다.

미국 미친 소도 문제

입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먹을 만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미친 소고기를 안 먹겠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매일 먹고 있는 것들이 과연

안전한지 그것도 하나하나 따져봐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이 땅에서 나는 채소부터 생선 육류까지 다 살펴봐야 합니다.

한우는 무조

건 안전합니까? 매일 먹는 채소는 농약이 없습니까? 생선회는 항생제 같은 게 전혀 검출이 안 됩니까? 우리는 이러한 안전망 시스템이 거의

안돼 있습니다. 늘 말로만 ‘완전’하지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지요.

이 땅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제 직업입니다. 절망합니다. 항생

제를 듬뿍듬뿍 넣어 기르는 생선양식장, 한우 가두리목장, 농약을 뿌려대는 비닐하우스…. 난 미국 소, 호주 소, 한국소가 아니라 그게 어느 나

라 소이든 건강한 소고기를 먹고 싶습니다. 무공해 채소를 먹고 싶습니다. 시장에 무공해 채소가 제발 진짜이기를

바랍니다.

촛불은 생명의 몸부림, 먹거리 안전 시스템으로 이어지길

이 세상에 단체나 조직은 무슨

깃발을 들었든 믿을 게 못됩니다. 그냥 몸으로 느낍니다. 생명은 우리가 알아서 스스로 챙겨야 합니다. 촛불은 생명의 몸부림이라고 생각합니

다. 하지만 그 촛불의 뜻을 담아서 제대로 시스템화 하는 능력은 이 땅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 절망합니다.

그저 ‘죽은 밥’으

로 하루 세 번 울어대는 순대를 채울 뿐입니다. 도무지 입에 맞는 것이 없습니다. 사먹는 밥은 모래 씹는 거 같습니다. 스가바알~. 어디 홍어나

한 접시 먹고 싶습니다.

칠레산이면 어떻습니까. 홍어는 아직 양식한다는 말 들어본 적 없으니 항생제 먹을 일은 없겠지요. 하지만

항생제 좀 먹으면 어떻습니까. 수십 년 동안 나를 키웠던 삼겹살엔 어디 독이 없었을까요? 수없이 쳐 죽인 소주는 또 몸에 이로웠을까요?

농약콩나물, 납 꽃게, 기생충 김치는 또 어떤가요. 나중에 삼수갑산에 갈지라도 우선 마음이 편해야지.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

세 그려, 산가지 꺾어놓고 자꾸자꾸 먹세 그려. 하기야 내 몸에 곱창도 있고, 간도 있고, 허파도 있고, 염통도 있고, 똥집까지 있으니 안주걱정

은 할 필요 없겠습니다. 삼배합장.

    코메디닷컴

    저작권ⓒ 건강을 위한 정직한 지식. 코메디닷컴 kormedi.com / 무단전재-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

    댓글 0
    댓글 쓰기

    함께 볼 만한 콘텐츠

    관련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