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법정에도 둥지 트나?

파워포인트 변론 눈길… 의료소송 ‘신무기’ 기대

“막힌 혈관에 혈관용해제를 넣었을 때 일시적으로 혈액이 순환하지만 이내 다른

혈관에서 폐색이 일어난다. 또다시 혈관용해제를 넣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변호사는 변론을 ‘입’으로만 하지 않았다. 법정 내 빔프로젝터로 쏘아올린 동영상을

통해 막힌 혈관과 혈액의 흐름, 혈관용해제의 작용기전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달

21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한 법정 풍경이다. 이곳이 의료소송 법정인지,

학술대회인지 구분하기 힘든 낯선 장면이 연출된 것.

적절한 사진과 의료사고 경과를 동영상으로 제작해 알기 쉽게 설명하는 파워포인트

변론은 기존의 구술방식보다 전달 효과가 뛰어나다. 승소 확률을 높여줄 것으로 전망되는

파워포인트 변론이 향후 의료소송의 승소를 이끌어낼 새로운 수단으로 떠올랐다.

의료소송 승소확률 높여줘

지난 21일 법무법인 ‘해울’의 신현호 변호사는 원고에게 유리하게 진행됐던

의료소송에서 청구기각을 얻어냈다. 원고는 의료진의 의료사고를 주장했고, 신 변호사는

이에 맞서 피고인 한 대학병원 측 변론을 맡았다. 질 뻔한 사건이었는데 파워포인트를

이용한 최종 변론에서 판사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파워포인트를 이용한 변론은 환경오염, 연예인 저작권, 주식 등 주로 기업과 관련된

법정 소송에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전문분야의 기술을 이해해야 하는 특허소송에서

활용도가 높다. 의료소송에서도 효과적일 것이란 관측은 있었지만 실제로 의료소송

법정에서 파워포인트 변론이 동원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 변호사는 “변론 자료를 파워포인트로 제작하는 데 온 직원이 합심해 한 달

동안 애를 썼다”면서 “입으로 백 번 설명해도 소용없는 부분도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사진이나 자료로 보여주면 더욱 전달이 잘 된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한강 홍영균 변호사는 “파워포인트 내용을 구성할 때 더

많은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병원측과 상대하려면 원고측의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의료전문지식이 없는 판사의 설득을 얻어내는 데 파워포인트 변론은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재판부 김용빈 판사는 “파워포인트를 이용하면 말로 하는 것보다

이해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재판 결과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심증형성에

도움을 주고 재판 진행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홍준호 공보판사는 “구술심리를 강화하기 위해 파워포인트 사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지만 필수사항은 아니다”고 말했다.

준비여부 따라 불공정 시비 우려

정부나 학술진흥원에서는 파워포인트에 색을 넣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 있다. 객관적인

판단을 하는 데 방해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행해지는 파워포인트

변론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없다. 따라서 현란하게 꾸며놓은 파워포인트 자료가

판사를 현혹시킬 수 있고, 임기응변식 변론으로 흐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홍준호 공보판사는 “미국에서는 배심원들을 현혹하기 위해 파워포인트로

갖가지 효과를 넣은 자료를 사용하는 데 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면서 “한국의

민사재판에서는 배심원이 없기 때문에 우려할 사항이 못 된다”고 일축했다.

한 쪽에서만 파워포인트 변론을 준비했을 때 자칫 변론의 불공정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홍영균 변호사는 “민사법정에서는 원고와 피고 간에 서로

무기가 대등해야 한다”며 “법정에서 파워포인트 제작이 유리한 의료진의 입장만

전달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준호 공보판사는 “준비를 많이 하면 한 만큼 더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파워포인트 변론 역시 같은 맥락이고, 준비해온 사람에게 이를 사용할

기회를 주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의료소송에서 파워포인트 변론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판중심 판결로 전자법정 활성화 예상

이용훈 대법원장은 2005년 9월 취임 이후 ‘구술주의, 공판중심주의 강화’를

강조해왔다. 재판을 할 때 모든 증거자료를 공판에 집중시켜 공판정에서 형성된 자료만을

판결의 근거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것이 ‘전자법정’이다.

당사자의 구술변론을 강화하고, 최신 디지털 자료를 재판에서 활용하겠다는 취지다.

현재 전국 모든 법원에 1개의 표준전자법정이 설치돼 있으며 프리젠테이션이 가능한

간이전자법정은 대법원 본원에 1개, 지원에 2개씩 총 94개이다.

전자법정에는 대형 스크린과 빔프로젝터, 방청객을 위한 대형 PDP TV, 재판 진행상황을

녹화할 수 있는 카메라, 사진 등을 스크린에 비추는 실물화상기 등이 설치돼 있다.

기존 법정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던 동영상, 파워포인트, 도면, 도표를 변론에서 활용할

수 있다.  

홍준호 공보판사는 “파워포인트는 전자법정이 아니더라도 빔 프로젝터를 활용해

일반 법정에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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