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는 죽음’ 허용될까?

치료정지 가처분 수용여부 관심

국내 최초로 치료정지 가처분 신청서가 제출돼 안락사 허용 여부에 대해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원이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다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 모(75.여.서울

서초구 양재동) 씨와 그의 자녀 4명이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 지금까지 국내에서

허용되지 않고 있던 안락사에 대한 논란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국내에서는 안락사를 △연명할 수 있지만 인위적인 방법을 통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안락사 △소생 가능성이 작은 환자를 방치해 사망하게 하는 소극적 안락사

△뇌사자와 같이 소생 불가능한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로

분류한다.

의료계는 이 중 존엄사와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01년 확정된 ‘의사윤리지침’에서는 안락사 및 의사조력 자살을 금지하고 있으나

“의사가 회생 불가능한 환자에게 의학적으로 무익하고 무용한 치료를 보류하거나

철회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나와 있다.

이와는 달리 법조계에서는 안락사 허용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기존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안락사에 대한 법률이 정비되지 않았고, 형법상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는 촉탁살인죄나 자살방조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안락사 논쟁을 촉발시킨 사건은 2004년의 이른바 ‘보라매 병원 사건’이다. 보라매

병원 사건 판결에서 대법원은 병원에 입원해 있던 뇌출혈 환자를 퇴원시켜 숨지게

한 가족에게는 살인죄, 퇴원시킨 의사 2명에게는 살인방조죄로 유죄를 선고했다.

지난 1월 광주지법 제 2형사부는 인공호흡기를 떼어내 아들을 숨지게 해 살인죄로

기소된 윤 모 씨(53)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기도 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안락사를 어느 정도 허용하는 추세다.

네덜란드는 2002년 4월 세계 최초로 안락사법을 시행해 집행했고, 독일은 소극적

안락사를 ‘죽음에 있어서의 도움’이라 규정하고 이런 도움은 환자의 의지에 따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은 주에 따라 다르다. 오리건 주는 1994년과 1997년 두 차례의 주민 투표를

거쳐 미국 최초로 ‘품위 있는 죽음에 관한 법(Death with Dignity Act)’을 제정했다.

판례법 위주의 미국법에서는 1983년 낸시 크루젠의 판결을 관습적으로 따르고

있다. 이 판결에서 미 연방법원은 사전에 환자가 자신의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명확한

의사표시를 했고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경우 치료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연방법원에서는 아직 이를 뒤집는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법무법인 해울 대표 신현호 변호사는 “세계적으로는 안락사를 인정한 판례도

많고 법적으로도 허용하는 추세지만 한국 법원은 이 문제에 대해서 신중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질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그동안 꾸준히 논란이 됐던 소극적 안락사와 존엄사 문제를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오르게 할 여지가 있다”며 이번 가처분 신청에 의미를 부여했다.

    소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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