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제도 폐지 실현?

퇴출 위기 갈림길…문제는 병원들이 부담해야 하는 '대체인력 비용'

서울 소재 한 대학병원, 하루 종일 진땀을 흘리기 일쑤인 인턴 A씨는 요즘 지독한

허탈감에 빠져 있다. 어느 때 어느 곳에라도 있어야 했고,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인턴만큼 힘이 들고 많은 시간 노동을 하며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 ‘직업’이 또

있을까?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때’에 잠도 못 자면서 권위의 가면을 쓰고 오늘도

뛰고 있다. 머리가 아니라 피부와 발로 지식을 흡수해야 하고 고통스런 교육을 통해

히포크라테스의 앞날을 설계한다. 자기 삶의 꿈을 가꿔야 하는 참혹한 아이러니가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거기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얘기로는 인턴 제도의 문제에

대한 날선 지적을 넘어 ‘도입한 자체가 잘못이었다’, ‘노동력 착취 수단에 불과하다’,

‘당장 폐지해야 한다’는 비판이 여론으로 형성돼 맥을 빠지게 하기도 한다. 인턴,

그 이름. 퇴출 위기의 갈림길에 서 있다.

지금까지 인턴에 대한 비판들은, 인턴 기간을 무조건 폄하하려는 논리에 일방적으로

매달리거나 지엽적인 문제를 인턴 제도 전반의 폐해로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짙었던

것도 사실이다. 또 부실한 중소병원들의 경우, 애시당초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도

마치 인턴 제도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처럼 본말을 전도시킨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웬만해선 담장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인턴 제도에 대한 고민이 수면

위로 올랐고, 급기야 ‘폐지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턴 제도의 성패 여부는 이를 도입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봐야 명확해지겠지만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는 없는 법. ‘가본 길’(인턴 제도를 도입한 현실)과

‘가보지 않은 길’(인턴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가상현실)을 나란히 놓고

평가해볼 수 없으니 딱한 노릇이다.

단,

서울아산병원 교육수련부장 김재중 교수는 “인턴 과정이 불필요해졌다는

데 어느 누구도 ‘토’를 달긴 힘들다.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심각성을 전했다. “인턴 기간을 의대나 레지던트과정에 흡수시켜 불필요한

인력낭비를 막고 교육의 질적 효율화를 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시점”이라는

얘기다.

김재중 교수는 “더욱이 일차 진료 의사의 양성이 확대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현행 인턴 제도는 이를 수료한 인턴이 일차 진료를 무리없이 담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실태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이 함께 묻어나 있는 대목이다.

“의사가 된다면야…” 장밋빛 그림자

일단, 인턴을 당장 없애도 종합병원이 돌아갈 수 있느냐에는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마디로 잘라 얘기하자면 “가능하긴 하지만 힘들다”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다. 물론 “인턴이 하는 일 중에 정말 ‘잡스러운’ 일들은 굳이 의사가 할

필요가 있냐”는 볼멘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변형규 회장은 “간혹 수술 스케줄 조정이나 검사 등의 푸쉬, 의학적인 지식이

필요한 페이퍼 잡들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 간호사 출신의 전문 코디네이터를

고용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실제로 “병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병동에서의

일 중 채혈이나 정맥 주사를 인턴이 하는 경우가 있는데 간호사들이 이를 대신할

수 있다”고 했다.

차트와 필름을 찾는 것은 전산화의 힘으로 점점 사라져갈 뿐만 아니라 해당 업무는

의무기록사와 간호조무사에 의해 이뤄져야 하는 것이 맞고, 의국에서 시키는 ‘잡스러운’

명단 정리 같은 사무일은 비서를 고용하는 게 맞다는 주장이다.

변형규 회장은 “현재 인턴이 하는 일 중에서 꼭 의사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사실상 단순 작업으로 일일이 하기 힘든 일들이 있다”고 토로했다. “심전도, 동맥혈

검사, 간단한 동의서, 수혈할 때 피 확인, 남자 환자에 대한 도뇨관 삽입 등이 그

것인데 결국 이런 일도 전공의들이 하거나 법적인 문제가 없다면 가능하면 간호 인력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주지하다시피 인턴이 이른바 ‘잡일’을

많이한다면 대체하기가 쉽지만 ‘의사’로서의 일이 많을수록 대체는 어려워진다.

변형규 회장은 “보통 의사로서의 일이 많은 것은 전공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흉부외과나 의사 인력이 모자란 응급의학과 등”이라면서 “흉부외과는 전공의가

아예 없는 병원이 많기 때문에 인턴 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응급의학과는 언제든지 많은 환자가 밀려오거나 중환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처하기 위한 충분한 인력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산대병원 교육연구부 관계자 역시 “결국 인턴이 없다면 전공의나 전문의를

늘려야 하나 인력이 모자란 과는 대개 전공의 지원율이 낮은 이유 때문이므로 인력을

충원할 길이 없다”고 현실적인 한계점을 설명했다. 대체 인력으로 전문 간호사를

양성하는 방법이 있으나 아직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부족하고 현실적으로 제한적인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점도 ‘벽’이다.

더 현실적인 문제는 바로 대체 인력을 고용하는데 드는 ‘돈’이다. 병원마다

차이는 있지만 인턴 연봉은 대체적으로 2000만원 안팎 수준.

변형규 회장은 “의사 면허를 가지고 있어 법적으로 진료행위를 할 수 있는데다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 어떤 일을 시켜도 결국 할 수밖에 없는 인력의 임금으로는

상당히 저렴함 편”이라고 설명한다. 더욱이 인턴은 정직원으로 계속 일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직으로 1년마다 바뀌기 때문에 호봉이 올라가서 임금이 부담스러워질

염려도 없다는 것도 ‘숨어있는’ 계산이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인력을 대체하기 위해 들어갈 인건비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귀띔도

있다. 중앙대병원 수련교육부 관계자는 “인턴의 근무 강도는 일반직의 2~3배가 넘기

때문에 적어도 인턴 한 명의 인력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2~3명의 다른 직종의 직원을

채용해야 한다. 그러나 임금 부담이 당장 2~3배 늘어날 뿐 아니라 정규직으로 뽑는다면

지속적인 임금 상승의 압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턴 폐지는 병원 측에서는 정말로 생각하기 싫은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수련병원으로 지정된 중소병원도 마찬가지다. 인턴 TO를 받아 대학병원과 모자 협약을

맺고 인턴을 파견받는 병원에서는 이들이 병동 당직 및 응급실 1차 진료를 커버해

주기 때문에 이른바 별도의 당직의를 고용해야 하는 부담이 없다. 이러한 특혜(?)도

인턴 제도가 없어지면 같이 사라지게 된다.

“인턴 순기능, 의과대학 커리큘럼에서”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떠나서 수련 제도로서의 인턴이 갖는 의미는 없을까? 물론

없지는 않다. 사실 어느 병원에서 인턴을 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크긴 하지만 인턴

과정을 밟은 의사와 인턴 과정 없이 1년을 보낸 의사와는 확실히 다르다. 가톨릭의료원

수련교육부장 김성훈 교수는 “병원마다 다르지만 응급실과 흉부외과, 내과 인턴

때는 상당히 의사로서 도움이 되는 많은 경험을 하기도 한다”고 순기능을 소개했다.

이렇게 순환 근무를 통해 자신이 전공할 과목을 정하는데 ‘나름대로’ 유용한 경험이

된다는 의미다.

문제는 그러한 경험이 꼭 인턴이라는 제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냐는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김재중 교수는 “학교마다 임상 실습 기간을 늘리고 있고, 전문대학원이 늘어나고

있는데 외국과 같이 2년 이상의 임상 실습이 일반화되는 날도 머지 않았다”면서

“그렇다면 커리큘럼에서 학생 때 실습을 돌며 필요한 경험들을 충분히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중 교수는 “임상 각과의 인턴이 돼 ‘비서’ 역할을 하는 것보다는 학생으로서

그 과의 실습을 돌면서 오히려 자신이 얻는 지식도 많고 전공에 대한 생각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충분한 임상 경험을 통해 인턴 과정을 거친

것보다 더 충분히 의사로서의 능력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재중 교수는 “학회에서는 그 동안 레지던트만 챙기느라 인턴은 알아서 배워야

하는 존재였으며 인턴은 지금까지 값싼 의료인력을 충원하는 수단으로 사용돼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병원 생존 문제가 걸려 있어 쉽게 제도를 바꾸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결국 의과 대학의 커리큘럼이 임상 실습이 충분하도록 바뀌고, 대한병원협회의

현실적이고도 ‘암묵적’인 반대를 무마할 수 있을만큼 수가를 현실화하는 방안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건국대학교 교육수련부장 정홍근 교수는 “현실화된 수가를 의료 보험료에 반영할

수 있을 정책 입안자의 결단이 있어야 인턴 제도 폐지가 실현될 듯 하다”고 말했다.

정숙경기자 (jsk6931@dailymedi.com)

기사등록 : 2008-04-14 06:55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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