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듯 일하는 게 보람”

삼성서울병원 전영준 안전요원

“1998년 어느 겨울밤이었습니다. 응급실 앞에 택시 한 대가 급정거해서 본능적으로

뛰어갔습니다. 이런, 뒷좌석에 탄 임산부가 출산 중이었습니다. 시트는 피와 양수로

젖어있었고 아기가 머리를 내밀고 있었죠. 급한 대로 제 두 손으로 아이를 받았습니다.

뒤따라 온 의료진이 탯줄을 자르자 아기를 들고 전속력으로 뛰었어요. 살려야겠다는

생각만 했어요. 이틀 뒤 산모의 병실에 찾아갔더니 제 손을 꼭 붙잡고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 하시대요. 병원 안전요원으로 3년째 접어들었을 때였죠.”

경호회사 에스텍시스템의 전영준 팀장(38)은 1995년부터 12년 동안 성균관대 삼성서울병원의

보안-안전 업무를 맡아오며, 다른 곳의 경호요원이 생각조차 못할 일들을 겪어왔다.

삼성서울병원에는 총 108명의 병원안전요원이 2교대로 근무하며 24시간 병원을

지킨다. 이들은 출입문, 응급실, 연구소, 병동 등에서 환자와 보호자를 통제하고

안내한다. 전 팀장은 이들 경호팀의 수장(首將)이다.

병원안전요원은 대부분 20대이다. 울컥 하기 쉬운 나이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환자나 보호자와 맞대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첫 번째 원칙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니들이 뭔데 면회를 못 하게 해?” “니들이 경찰이야?”

“내 돈 내고 치료 받겠다는데 왜 귀찮게 하고 그래?” 등의 욕을 얻어먹는다. 종종

가벼운 몸싸움도 일어난다. 피가 끓는 나이에 무시당하는 것을 참고 넘기기가 쉽지

않지만, 참고 또 참아야 한다.

병원안전요원은 경찰서에서 허가받은 가스총과 전기충격기를 소지할 수 있다.

그러나 전 팀장은 1999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스총과 전기충격기를 사용했다.

“한밤중에 고등학교 불량배 여러 명이 패싸움을 했는지 머리가 터지고 코가 부러져

응급실에 왔어요. 치료를 빨리 안 해준다며 의자를 던지고 다른 환자들을 위협하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죠. 안전요원들이 제지하자 어디론가 전화를 했고, 잠시 후에

10여명의 깡패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나타났어요.”

이날 몸싸움으로 병원안전요원과 깡패들이 함께 다친 뒤 맞고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연히 병원안전요원이 승소했지만, 수많은 요원이 이런 ‘억울한 소송전’에 휘말리면

직업에 회의를 느끼고 일자리를 떠난다고 한다.

전 팀장은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을 제어하는 것이 어찌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고 안타까워했다. 미국, 캐나다 등의 선진국에서는 환자나 보호자가

난동을 부리는 일이 거의 없으며 안전요원이나 경찰에 대든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난동을 부리는 사람을 강하게 제제하면 ‘큰일’나는 분위기다.

“병원안전요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크고 작은 소송에 휘말리는 일은 비일비재해요.

우리는 병원을 위해 일을 하는데, 정작 소송은 병원이 아닌 개인이나 경호회사에서

감당해야 하죠.  병원 측 고충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병원은 이미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직접 환자와 부딪치면 온갖 비난의 화살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것이죠.”

그는 병원을 떠날 엄두도 내지 않는다. 병원에는 남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보람과 애증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야근근무를 하는데 환자 한 명이 병동에서 사라졌다는 보고가 들어왔어요. 환자가

없어지면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재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최소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병원 비상계단부터 병원 밖 양재대로까지 수색에 들어갔죠. 그러다가

병원 옆 산책로에서 나무에 목을 매려던 환자를 발견했어요. 설득 끝에 병원에 데리고

들어왔죠. 암 환자였는데 가족에게 병원비 부담을 주는 것이 미안해 자살을 시도했다는

얘길 듣고 가슴이 먹먹해지더라고요.”

특히 전 팀장에게 삼성서울병원은 20~30대의 꿈과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곳이어서

이곳을 떠난 삶을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다.

“병원안전요원이 하는 일은 절대 겉으로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할수록 병원이 평안해지고 사람들은 우리 같은 병원안전요원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채기 어려워지죠.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도움을 주는 병원안전요원이 되겠습니다.”

 

    조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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