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의 과학

인과응보 논리만으로 안돼

사형제를 부활시켜야 할까. 흉악 범죄가 잇따르면서 사실상 사문화한 사형제를

다시 현실화하자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지금까지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국제사면위원회에 의해 ‘사형제 실질 폐지국’으로 분류돼 있다.

그렇다고 생때같은 젊은이를 물고기 밥으로 만든 노인이나, 채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를

무참히 꺾은 미치광이 범죄자를 살려둘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형제 찬반 논란은 그리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형 찬성론자는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 법전의 논리와 같이 범죄자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식의 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이를 ‘보상적 정의’라고 불렀다.

반면 반대론자는 "살인자를 죽이면 같은 죄를 다시 저지르게 된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탈리아의 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는 일찍이 <범죄와 형벌>이라는

저서에서 "살인을 벌하려고 살인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찬성론자는 정당방위의 경우와 같이 이유가 합당하다면 생명도 박탈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특히 공리주의자들은 사형의 범죄예방 효과를 강조한다. 하지만 지금껏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사형이 종신형에 비해 범죄예방 효과가 높지 않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다만 최근에 이르러 성별, 재산, 교육정도, 직업 등 모든 요소를 고려하면

사형의 예방효과가 종신형에 비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살인 예방이 사형제의 최대 목적이라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미래의

살인을 방지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누군가를 격리시키는 것 또한 타당할까.

많은 사람이 간과하고 있지만, 논란의 둥지에는 흉악범에게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 여기에는 사람은 자신의 고유한

마음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행위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자유의지론’과 그렇지

않다는 ‘결정론’이 맞서고 있다.

과학의 발달은 결정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질병이 유전적 원인과 환경적 요인의

복합적 산물인 것처럼, 마음도 유전과 환경의 소산물이다. 사람은 수정 4시간 뒤

‘유전자 각인’ 과정을 통해 개인의 유전자를 완성한다.

재료는 부모에게서 한 쌍씩 물려받은 유전자다. 새 유전자 세트는 태아 때부터

외부의 환경에 반응한다. 뇌 활동, 즉 마음도 이 틀 안에서 일어난다. 성인도, 흉악범의

마음도 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흉악범의 죄를 물으려면 사악한 유전자를 물려준 부모를 비롯해 삼대(三代)를

멸해야 한단 말인가. 범죄자의 심성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부모나 친구를 함께

벌해야 할까. 또 부모가 이미 숨졌다면 부관참시라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흉악범에게 아예 죄를 물을 수 없다는 말인가.

반면 결정론을 지지하면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할 모든 근거가 사라지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어떤 일에도 상과 벌을 줄 수 없고, 그보다 사회 환경을 개선하는 작업에

진력해야 한다.

미국 의학계에서는 범죄자를 덜 고통스럽게 죽이는 약물에 대한 연구논문이 나오고

있다. 이 또한 악한이 자비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논란과 함께 인간을 덜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이 과연 인도적이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런 복잡한 논란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형제 존폐 여부는 인간과 사회의

본질에 관한 근원적 고민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비춰, 충격적인 흉악범죄가

발생하면 으레 인과응보 논리를 앞세우는 것은 해법과 거리 멀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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