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윤리 함께가야 최고 의사”

울산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구영모 교수

“신기하게도 제 주변엔 의사나 의대생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처음 병원에 출근하던

날 모든 것이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졌지요. 그런데 난생 처음으로 의사 가운을 입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너무 편안한 겁니다.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해요. 아마도

이 옷이 처음부터 제 것이었나 봅니다.”

울산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구영모 교수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의대 학생들에게

의료윤리를 가르치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의사가 아닌 구 교수는 2000년 3월

이 대학 인문사회의학과에 부임해 의사 가운을 처음 입어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그가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의료윤리 연구로 박사학위를 얻은 뒤 1996년 한국에

돌아왔을 때 국내 철학계의 시선은 차가웠다. 외국은 의료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의료윤리 교육이 체계화된 상태였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의료윤리는 생소한

학문이었고 마땅히 설 자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의료윤리 교실을 운영하는 곳도 가톨릭

의대와 연세대 의대 단 두 곳뿐이었다. 현재는 울산대 의대를 비롯해 아주대 의대,

인제대 의대, 이화여대 의대 등의 교육과정에 의료윤리가 포함돼 있다.

그는 ‘한국의료윤리교육학회’ ‘한국생명윤리학회’의 설립 멤버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대학에 출강해 윤리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2000년 3월 울산대 의대와 인연을

맺게 된다.

“이무렵 의대와 병원에서 본격적으로 의료윤리 교실을 만들면서 철학과 출신으로는

가톨릭대 의대 구인혜 교수 다음으로 제가 울산대 의대에서 의료윤리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구 교수는 의대 캠퍼스가 과거 자신이 철학을 공부했던 캠퍼스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 처음엔 어색했다고 한다.

“의대 캠퍼스에서는 일반 대학처럼 캠퍼스의 여유나 낭만은 찾아볼 수가 없어요.

대학 건물과 종합병원이 함께 붙어있기 때문에 24시간 운영하는 종합병원의 긴장이

이곳 의대까지 고스란히 전해지거든요. 그래서 의대는 지식의 전수, 학문의 탐구와

아울러 전문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이제는 저도

숨 가쁜 이곳의 기류에 익숙해진 탓인지 동료 철학과 교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오히려

그곳의 분위기가 어색하게 느껴진답니다.”

그가 본과 의대생에게 가르치는 과목은 △의료윤리의 네 원칙 △의사-환자 관계

윤리 △의사-동료의료인 관계 윤리 △의료-제약회사 관계 윤리 △출생과 관련된 윤리

△치료중단과 관련된 윤리 △뇌사와 관련된 윤리 △장기이식과 관련된 윤리 △의학연구와

관련된 윤리 △첨단의학과 관련된 윤리 등 이다.

이름만 들어도 그 내용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의료윤리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전공의들도 틈틈이 사이버 강의 방식으로 그의 수업을 듣고 있다.

“의료윤리를 강의하고 있지만 내 수업이 학생들이 최고 의사가 되는데 얼마큼

영향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선 늘 의문을 갖습니다. 몇 시간 공부한다고 해서 원래

갖고 있던 기본적인 소양이 바뀔 수는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교육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어도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교육밖에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학생들을

변화시킨다는 생각보다는 스스로 의료윤리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어요.”

구 교수는 의대생들에게 윤리적 기본 소양을 가르치는 것을 비롯해 서울아산병원

‘뇌사판정위원회’ ‘동물실험심사위원회’ ‘병원윤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병원과 윤리, 생명과 윤리는 따로 떼어내 생각할 수가 없을 만큼 밀접합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최요삼 선수의 뇌사판정을 비롯해 병원의 크고 작은 윤리관련 사항을

결정할 때면 항상 제 몫의 역할이 주어집니다. 윤리문제는 어떤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사람의 생명과 밀접한 병원이라는 공간에서는 더욱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때문에 여러 가지 이해 상황을 검토하고 최대한 간극을 메우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구 교수는 최근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전공의들의 비인기학과 기피 현상에

대해서도 한마디 덧붙였다.

“최근 전공의들의 비인기학과 기피현상이 심화되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학과에

지원자들이 몰리는 풍속도에 대해 비판이 있지만, 이것을 무조건 개인 탓으로 돌려선

안 됩니다. 의료계의 시스템이나 관련 정책이 해결되면 개인도 윤리적인 소신에 따라

지원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윤리의식을 높이는 교육도 더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의대에 진학한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명석한 두뇌를 갖고 있다. 이들이

의사라는 이유로 무조건 봉사하고 희생을 감수하길 바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다”며 우회적으로 의료 환경 변화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서울아산병원 의료윤리의 일선에 서 있는 구 교수가 병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남보다

특별하다. 구 교수가 병원에 몸담은 지도 횟수로 7년 째, 흘러온 시간동안 병원을

향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그이지만, 날카로운 감시자 역할은 의료계에선

이방인과도 같은 철학도 구 교수의 몫이다.

“병원이 기업화 되면서 병원끼리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지요. 그럴수록 윤리를

지켜나가려는 노력 역시 강화되고 있어요. 아직도 의술만 뛰어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일부 의사들이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의술과 의료윤리가 병행하는 것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병원에서 윤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현실적으로 그

병원은 경쟁력을 잃게 됩니다. 의료계는 이 문제는 공감하며 의료국시에 의사의 기본적인

소양을 묻는 의료윤리 문제 추가 계획을 검토 중입니다.”

병원 안에 윤리가 투영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구영모 교수는

지금처럼 학생들을 가르치고 병원 윤리를 위해 평생을 바치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다.

“뛰어난 의술을 가진 의사가 최고 의사다? 성품이 뛰어난 의사가 최고 의사다?

최고 의사에 대한 정의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지만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뭐래도 뛰어난 의술입니다. 그리고 이 의술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의료윤리입니다. 의술과 의료윤리는 함께 가야 더욱 빛이 나는 법이니까요. 환자들이

엄지손가락을 추켜드는 최고 의사가 더 많아질 수 있도록 저처럼 의료윤리 가르치는

사람들이 더욱 잘 해야겠지요.”

 

 

 

 

    조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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