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선으로 그림도 그린다”

연대 의대 영상의학과 정태섭 교수

1895년 뢴트겐이 발견한 X선. 이것을 이용해 병을 진단할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미술작품을 만드는 의사가 있다. 영동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정태섭 교수는 방사선으로

그림을 만드는 ‘화가’다.  

“처음엔 아내와 자녀들의 모습을 기념으로 남기려고 X선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머리에 떠오른 이미지를 연출해 필름에 옮기고 그 위에 색을 입혀봤는데 그걸

본 사람들이 ‘작품’이라고 말해주더라고요.”

2007년 3월과 5월 이미 두 번의 합동전시회에 출품한 적이 있는 정 교수는 오는

19일~2월 10일까지 경기도 양평의 닥터박갤러리에서 첫 개인전 ‘X-선 영상으로 보는

또 다른 내면의 예술세계’를 열 예정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Big Bang of Flower’,

‘New Heart’ 등 정교수의 작품 8점을 선보인다.

‘X선영상’은 빛의 투과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 두꺼운 부분은 불투명하고

얇은 곳은 투명하게 표현돼 특유의 실루엣영상이 나오게 된다. 미국에서도 X선으로

꽃이나 사물을 촬영해 작품 활동을 한 의사가 있었지만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통한

합성영상을 시도한 것은 정 교수가 처음이다.

New Heart

‘Big Bang of Flower(사진)’는 흑백으로만 나타나는 보통 X선 사진에서 볼 수

없던 진보라색의 꽃송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New Heart(사진)’는 보통 X선 사진에서

볼 수 없던 피부와 근육의 형태를 보여준다. 정 교수는 X선 영상 특유의 혐오감을

없애기 위해 포토샵으로 색깔도 입히고 근육과 피부의 형태가 회색으로 나타나도록

여러 번 촬영해 합성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해바라기, 장미, 국화 등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꽃들은 직접 새벽시장에

가서 꼼꼼히 살펴보고 고른 것”이라며 “작품의 ‘사람모델’은 대부분 나 자신인데

선이 가는 손, 얼굴의 형태가 필요할 때는 여성 후배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해 찍었다”고

말했다.  

 

Big Bang of Flower

이번 전시회를 열기위해 화랑을 찾아다닐 땐 퇴짜도 많이 맞았다. 정교수가 당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의사가 왜 미술을 하려하느냐?’였다.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방사선에 대해 갖고 있는 어두운 느낌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특히 의사는 외부와 단절 돼 병원에서 치료와 연구만 하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이 싫어 그런 고정관념도 깨고 싶었죠.”  

정 교수는 미술작품을 만들면서 사물의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동시에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던 ‘열정’도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 교수의 어린 환자에 대한 애정은 작품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각별하다. 영상의학과

특성상 환자와 직접 만날 기회가 적은 것이 아쉬운 정교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병동으로

어린 환자들을 찾아가 풍선을 만들어주며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정 교수는 어린 환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명품넥타이가 아닌 고양이나

풍경이 그려진 알록달록한 ‘아트넥타이’를 맨다. 어린 환자들과 지역주민들을 위해

10여년 전부터 병원 강당에서 ‘별보기 교실’을 열어오기도 했다.

“하얀 가운을 보고 무서워하던 아이들도 함께 별을 보고 풍선도 만들어주면 눈빛이

달라져요. 동네 아저씨처럼 편하게 생각하고 직접 쓴 편지를 들고 연구실에 놀러오는

아이들을 만날 땐 너무 기쁩니다.”

정 교수는 환자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의대교육과정에서 ‘문화수업’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거지에서부터 대통령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의사야말로

가장 인간적이고 종합적인 사고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05년 정 교수는 연세대 의대본과의 ‘의학과 문화’라는 교양과목 강의를 하기도

했다. ‘의사들은 왜 의사들하고만 대화하는가?’,  ‘의사들은 왜 취미가 골프밖에

없을까?’ 와 같은 화두를 학생들에게 던지며 의사들이 주위의 벽을 허물어야 의학이

더 발전한다는 그의 신념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정 교수는 늘 의대생들에게 감성을 풍부하게 길러야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살리는

의사가 된다고 말한다.

“의사는 병 고치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어야 합니다. 환자도 그것을 원할 겁니다.

가장 위급한 상황의 사람들을 만나는 만큼 의사에게는 환자의 목숨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감성’을 갖는 것이 ‘의술’보다 더 중요합니다.”

 

 

    안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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