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죽음 밝혀내면 그게 보람”

서울법의학연구소 한길로 소장

서울법의학연구소

한길로 소장(46)은 친구와 약속을 어기기 일쑤다. 최근에는 개인적인 약속을 아예

하지도 않는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5분 대기조’ 생활을 한지 벌써

수년째다.

한 소장은 의료사고나 사건으로 죽은 사람들의 사망원인을 의학적으로 알아내는

일을 한다. 억울한 죽음을 풀어주는 일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해결사’라고

부른다.

보통 한해 동안 의료사고로 사망한 70여 명의 원한을 풀어주며, 교통사고·강력사건

등으로 죽은 800여 명의 사망원인을 밝혀낸다. 한 소장이 맡고 있는 경찰서는 서울시내

31개 중 6~7개다. 그의 사무실 벽은 각 경찰서에서 받은 위촉장과 감사장으로 도배돼있다.

한 소장은 최근 수술과정에서 의사가 실수해 환자가 죽은 의료사고를 맡아 사망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의사가 수술 중에 실수를 했는지 분석해 환자의 억울한 죽음을 추정한다.

또 교통사고나 살인사건 등으로 죽은 사람이 어떻게 죽었는지 원인을 찾고 있다.

매일 2~3건의 사망사건을 조사하기 때문에 한 달이면 보통 60~70건에 이른다.

한 소장은 사건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달려가 검안을 한다. 시신을 보고 타살

의혹이 있는지를 판단하고 나서 국과수에 검안서를 넘긴다. 이를테면 경찰과 국과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루에도 사건이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다 보니 일의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는 “24시간 일한다고 보면 됩니다. 새벽에도 사건이 발생하면 뛰어 나가니까요”라고

말했다.

한 소장의 가족들은 이제 이런 일에는 이력이 났다. 그의 아내는 “이제 그러려니

합니다. 이 생활이 뭐 한두 해인가요”라며 “언제 집에 들어왔는지도 기억이 않나요”라고

말했다.

국내엔 시체 검안과 검시를 하는 의사가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시체를 부검하는

전문의가 40명 정도인데 최소 200명은 필요하다고 한다.

힘들고 바쁜 생활이지만 그는 지치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사로 묻혔을 억울한

죽음을 밝혀낼 때 무엇보다 가장 보람이 있다”고 말한다.  

“1년에 한 두건 정도 자살로 위장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걸 밝혀낼 때가 가장

뿌듯하죠.” 얼마 전 서울시 금천구에서 발생했던 사건이 그랬다. 부인이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을 목 졸라 죽인 뒤 자살로 위장했던 것이다.

한 소장은 “가장 먼저 법의학 전공자들이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도가 제대로 만들어지면 법의학 전문의는 자연히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돈과 명예도 중요하지만 법의학 전문의들이 일할 곳이 교수나 국과수에 한정돼

있다 보니 공급이 적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법의학연구소를 연 것도 법의학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서다.

한 소장은 고대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고대의대 법의학교실 부교수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을 거쳐 현재 법의학연구소외에 연대의대 법의학교실 교수,

대한체질인류학회 상임이사, 경기도 소방학교 외래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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