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균 교수를 떠나보내며…

산부인과 큰 별의 영결식

북상하던 태풍 ‘크로사’도 몸을 움츠렸다. 먹구름 걷히고 조각구름이 낀,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 그 하늘은 이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박용균(朴容均)

전 고려대 의대 교수의 맑은 미소를 닮은 하늘이었다.

8일 오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의대 교정에서는 박용균 전 고려대 교수의 영결식이

의과대학장(醫科大學葬)으로 열렸다.

유족대표인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과 고려대 오동주 의무부총장, 정지태

의대학장, 김선행 산부인과 주임교수 등이 고인을 추모할 때 조문객 사이에서 긴

탄식이 흘러나왔다. 고려대 의대와 한국 산부인과학계의 큰 별은 그렇게 떠났다.

고 박용균 교수는 미국의사회와 미국산부인과학회 교육상을 받은, 큰 의학자였으며

환자들에게는 소탈하고 여유로운 의사였다. 가위를 거의 쓰지 않는 제왕절개술인

‘핑거 스트레치법’의 국내 1인자로 수많은 여성의 건강을 지킨 명의(名醫)이기도

했다.

고인은 1998년 박용현 이사장과 각각 서울대병원장과 고대구로병원장을 연거푸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석 달 차이인 사촌형제가 석 달 차이로 병원장 직에 올라

두 병원의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던 것이다.

박 이사장은 박두병(朴斗秉)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4남이고, 고인은 박 초대회장의

동생 박우병(朴玗秉) 씨의 차남. 영결식장에서 박 이사장이 밝혔듯,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 친구와도 같은 사이였다. 고인은 병원장 시절 불편, 불안, 불만 등 ‘팔불’(八不)과

무시, 부정, 무책임 등 ‘팔악’(八惡)의 추방 운동을 펴 고대구로병원의 경영지표를

급상승시켰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란 말이 틀림없는 것일까, 고인은 사치스러운 운동보다는

동료들과의 산행(山行)을 즐겼다. 늘 바쁜 삶이었지만 틈틈이 가족들에게 맛깔 나는

요리를 해주는 ‘따뜻한 가장’이기도 했다. 술자리를 좋아했지만 소주에 소박한

대화를 즐긴 ‘동네 아저씨’와도 같은 의사였다.

고인은 대장암 수술을 받고 병원에 복귀해 후학 교육과 산부인과학회 발전에 힘썼지만

갑자기 병이 재발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그는 특히 국내 최초의 산부인과 의사였던 외조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산부인과

의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집의 장식장에는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다양한 모양의 산부인과 의사 인형들이 가득했다.

고인은 늘 “나라가 튼튼하려면 가족이 건강해야 하고, 그 출발은 주부의 건강이다.

산부인과는 바로 나라를 튼튼히 하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병상에서도 왜곡된 의료체계로

인한 산부인과의 위축을 걱정했다.

이날 영결식장의 영정(影幀) 사진은 더없이 맑은 미소를 담고 있었다. 그 얼굴과

헤어지기 아쉬워서일까? 조문객들은 발인이 끝났는데도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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