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제약계에 양약이 될 수 있다.

마침내 두 나라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 일부 정치권과 노동자 농민 단체들은 나라가 절딴 난다고 경고를 거듭했지만, 한미 FTA는 체결됐다.

언론은 축산 농가, 감귤 산업과 함께 의약시장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고 보도했고, 이날 종합주가지수(KOSPI)가 0.48% 오른데 비해 의약품 분야는 0.9% 하락했다.

경향신문은 의약품 시장의 연간 피해액이 2조원이라고, 중앙일보는 오리지널 약값이 두 배 뛸 것으로 보도했다. 미국 제약회사의 자료 독점권과 특허기간 연장 때문에 국내 제약회사의 제네릭 의약품, 개량신약 시장이 축소된 결과라는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중소기업의 줄도산으로 9000여명이 실업자 신세가 되고 5조 원 가량의 피해가 따를 것으로 경고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보도가 사태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했고, 의약품 시장의 피해가 이처럼 크지는 않을 것으로 해명했다.

포지티브 방식의 약품 등재, 특허 만료 오리지널 의약품의 약가 20% 인하 등 ‘약제비 적정화’를 지켜냈고 신약최저가 보장, 약가 물가 연동제, 제네릭 의약품의 약가협상 제도 등 미국의 거센 공격을 방어한 ‘성공한 수비’라는 것이다.

게다가 의약품 GMP 및 제네릭 의약품의 상호인정이란 과실을 따냈으며, 비록 의회 소관이라는 점 때문에 취업 비자 쿼터를 논의조차 못했지만 전문직 인력 상호 인정 문제 협의체를 구성키로 해 미국에서 돈을 벌 단서도 만들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필자는 향후 의약품 시장이 복지부의 희망대로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복지부의 주장이 대체로 맞다고 본다.

물론 미국 제약회사의 힘은 엄청나다. 필자가 미국 머크의 11개 연구소 중 하나인 필라델피아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현대조선소 크기인 그 규모에 압도당했다. 또 화이자 본사를 방문했을 때에는 홍보 책임자가 미 상무부 차관보 출신임을 알고 놀랐다. 미국 제약회사의 협상력과 마케팅 파워는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기 때문에 현재의 협상 조건을 바탕으로 막대한 희생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FTA의 체결로 약값이 오른다는 것은 시장의 원리와 약가 산정 과정을 도외시한 지나친 비약이다. 게다가 미국 제약회사가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제약회사의 일부에 불과하기에 피해가 과장됐다. 그리고 미국 제약회사가 한국 정부와 처방권을 가진 의사들, 소비자를 힘으로 밀어붙이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무엇보다 한국 제약시장의 개방은 꼭 미국과의 FTA가 아니더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도하라운드, EU나 일본 등과의 FTA 등에서도 개방은 필연이다.

필자는 시장개방이 국내 제약산업이 그간의 영세성을 벗어나 업그레이드 될 절호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본다.

제약산업에 어느 정도 투자할지는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겠지만, 정부는 한미 FTA 보건산업 민관실무대책반을 꾸려 제약업 육성방안에 나선다고 한다.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지금까지 농업 분야의 시장개방만 하면 농가에 미봉책의 당근을 주던 전철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축산농가가 FTA에 극렬 반대하고 있지만, 이는 정부가 뿌린 업보다. 정부는 농촌을 장기적으로 살리는 구조조정을 하기보다는 여론 달래기에만 의존했고, 경쟁력 없는 축사와 사료공장이 오히려 농촌 환경을 죽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의약시장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간 의료계에서는 국내 제약회사의 영세성과 이로 인한 ‘밀가루 약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의사들이 대체조제를 인정하지 못하는 데에는 영세 제약회사의 약을 믿지 못한 점이 컸다. 이런 점들이 국내 대형 제약회사의 탄생 또는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의약분업 이후 원료 의약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지만, 국제적인 수준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의료계에서는 보건당국이 국민 보건보다는 제약업체와 일부 약사의 권익을 우선해왔기 때문에 제약업체의 경쟁력도 떨어뜨리고 국민건강도 손상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계속 됐다.

당분간 상당수 제약회사가 적지않은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 고통을 제대로 감내하고 성장통으로 바꾸는데 성공하면 큰 과실을 얻을 수 있다. 21세기에는 핵심 자리에 위치할 바이오산업의 토대가 돼 엄청난 국부를 거둘 수도 있다. 이를 위해 국내 제약업계도 신약개발의 능력을 높이고, 국제 수준의 GMP 시설을 갖춰야 한다.

사실 이번 FTA 체결로 상장 제약회사의 주가가 폭락하고 있지만, 냉정히 따지면 오히려 올라야 정상이다. 시장의 상품 경쟁이 이뤄진다면 지금까지 제품 개발에 투자해온 대형 제약회사는 오히려 이득을 볼 수 있다. 이들 제약회사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M&A를 통해 제약회사가 공장의 한 라인에서 수 십 가지의 약을 만드는 후진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제약회사들은 버릴 것은 버리고, 주력상품을 키우는 경제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일부 의사와 약사만 붙잡으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마인드에서 벗어나 진정 소비자의 건강을 지키는 제약회사로 거듭 나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누구나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지만 의, 약, 유통업계 등 관련 집단의 이해관계가 부딪쳐 추진하지 못한 제약산업 정상화가 현실화될 수 있다. 우리 제약회사가 ‘약장사’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국제적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미 FTA는 입에는 쓰지만 몸에는 좋은 양약(良藥)으로 기억될 것이다. 양약이 될지 독약이 될지는 정부와 제약업계의 개혁 의지와 실행력에 달렸다.

필자는 양약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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